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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 표지 (2016년 출간)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책 표지 (2016년 출간) ⓒ 현대문학


통로

소설 작품과 작가의 상관성은 어느 정도일까. 아니,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작가를 아는 일은 그 작가가 쓴 문학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일까. 필요하다면 얼마 만큼일까.

정답이야 사람마다 제각각일 테다. 그리고 그 정답은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작품을 읽은 뒤 작가가 궁금해져서 작가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그의 작품(들)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작가를 알게 되어도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본인에 대해 쓴 책은 한편으로는 호기(好期)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한 행위이다. 작가의 자서전은 분명히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통로(path)를 열어주지만, 그 통로는 꽃길일수도 험지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독자 스스로 통로를 아예 폐쇄할 수도 있다.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자기소개

이 소제목은 이 책 중에서 제7장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불현듯 느낀 전반적인 정서를 표현하라면, 정말 이 말이 딱 맞을 듯싶다.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술회.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없이 개인적인" 자신만의 사연을 꾸역꾸역 진득하게 한 챕터씩 늘어놓는다. 하루키가 이토록 철저하리만큼 자기 속내를 "피지컬"하게 펼쳐놓은 경우가 예전에 또 있었을까 새삼스러울 정도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자서전이지만 내용물과 그 순서에 있어서 제법 체계가 있다. 소설가라 불리는 인간들의 전형성, 왜 소설을 쓰기 시작하게 됐는지, 문학상들에 관한 소견, 본인의 작품들이 과연 걸작(originality)이 될 수 있을지 여부, 소설을 어떤 방식으로 구상하고 써 내려가는지, 그 작법들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를 위해 본인이 어떤 훈련들을 하고 나아가 학교에서는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외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경원(敬遠)했던 이를 추모하는 짧은 글 등등, 마치 소설처럼 서사를 따라 술술 읽는 기분이다.

그리고 끝내 이런 생각을 한다. '아! 이 자는 좋은 사람, 아니 진실한 사람이구나.' 한 장씩 꾸역꾸역 진득하게 이어지는 진솔한 고백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추상(抽象)을 하나의 엄연한 물리적인 형체로 만들어 준다고나 할까.(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를 한번 흉내내봤다.)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글쓰기

끊임없이 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 2009년에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 소개 중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무라카미 하루키2009년에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 소개 중에서 ⓒ 문학사상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도 본문에서 밝힌 바이지만, 자칫 너무 성실하여 소시민 같아 보이는 그의 세계관을 읽고 있노라면 그간 그가 보여줬던 작품들의 크고 작은 파격과 생경함이 별 일 아닌 듯 밋밋하게 보일 우려는 있다. 그렇다, 매 작품마다 세련된 문체를 선보이고 종종 재즈가 취향이라 공언하던 그를, 독자는 적어도 이 책 안에서 찾기 힘들다. 이 자서전 속의 그는 그만큼 담백하다.

그러나 그러한 담백함 너머로 혹은 다른 차원으로 그에게 존경심이 생겨버리고 만다. 앞서 말했듯 한줄 한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의 진실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시간에 쫓겨, 사회 이슈에 쫓겨, 팬들의 성화에 쫓겨, 또 자신이 만든 욕심과 조바심에 쫓겨서는 결코 글을 쓰지 않는다는 그의 고백 때문이다. 소위 일본 특유의 가치관으로 알려진 모노즈크리(もの造り), 즉 장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사무라이 같은 결기와 혼(soul)도 겹쳐 보인다.

그는 책 도중에 왕왕 "내면의 소리를 따라" 글을 쓴다는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본인을 속여서 글을 쓰느니 차라리 절필을 하겠다는 다짐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작가의 절필은 무사의 할복(割腹)이나 진배없을 테니, 곰곰이 되씹어보면 꽤 무서운 발언이다.


하루키라는 공장 견학

문인들의 창작물을 보다보면 문득 그것이 만들어진 공장이 궁금할 때가 생긴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를 선보이며 우리에게 손짓한다. 거기에서 계속 기웃거리지만 말고 편하게 들어와서 구경을 하라고 말이다. 견학 후에 본인을 더 좋아하게 될지 아닐지 그는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수필 안에서 허심탄회하게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그가 궁금하다면 당신도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아보자. 필자는 이제 갓 다녀온 길이다. 그리고 그가 더 좋아져버렸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2016)


#직업으로서의소설가#에세이#서평#리뷰#무라카미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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