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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라빠빠 빠빠바암~!'

경쾌한 맥도날드 로고송에 내 몸도 들썩거려야 마땅하지만 나도 모르게 '하아~' 한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배달 주문 들어오는 소리다. 점심 때가 되자 로고송이 미친 듯이 울렸다. 중과부적이다. 배달이 지연되면 모니터의 색깔이 누렇게 떴다가 급기야 빨간색으로 변한다. 마치 화가 난 듯하다. 정신없이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이자, 패닉상태에 빠진 매니저의 얼굴, 배달을 기다리는 손님의 얼굴이리라.

부처님 오시는 날인데, 자비가 없다. 부처님이 오든 예수님이 오든, 우리에겐 똑같은 하루다. 무지하게 바쁜 날, 빨간 날이다. 집에서 쉬는 사람들이 배달음식을 찾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더 기운이 없다. 남들 쉴 때 일하는 날, 그래서 일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더 힘들고, 배달 주문이 더 많은 날은 인간적으로 추가 수당을 줘야 마땅하지만 우리에겐 똑같이 최저임금만 주어진다.

햄버거까지 빼앗아가는 건 아니겠지?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 햄버거까지 빼앗아 가는 건 아니겠죠?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 햄버거까지 빼앗아 가는 건 아니겠죠? ⓒ pixabay

그런데 국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과 식대 등을 포함하는 것을 두고 싸우느라 난리라는 소식을 들었다. 산입이라니 뭘 넣어서 계산한다는 건가? 최저임금 외에 받는 돈이 있어야 화라도 낼 텐데 최저임금 외에는 도통 받는 게 없으니 한강 넘어 국회의사당에서나 오가는 소리 같다. 하기야 올해 들어 사라진 돈이 있긴 했다.

지난해 맥도날드 라이더들은 최저임금 6470원보다 50원이 높은 6520원을 받았다. 일종의 생명수당이다.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오르면서 이 50원도 사라졌다. 그 외에 상여금은커녕 명절 보너스도 받지 못했다. 지난해 추석에는 시그니처 버거를 먹을 수 있었고, 올해 설에는 김 하나 받은 게 다다.

1년에 한 번쯤, 1만 원짜리 쿠폰이나 빅맥교환권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설마 이런 것들을 최저임금에 넣겠다는 소리는 아닐 거다. 깎으려야 깎을 게 없는 사람들에게 뭘 더 가져가려고 그러나 싶다. 그런데 '식비'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매장에서는 식사로 햄버거를 무료로 준다. 황당한 소리겠지만 직급에 따라 차별이 있다. 난 빅맥과 상하이버거 정도를 먹을 수 있는데 늘 내 마음속 요구사항은 햄버거 대신 식대를 달라는 것이었다.

몸에 좋지도 않은 햄버거를 매일같이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메뉴도 한정되어 있으니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만약 최저임금에 식대가 들어가면 햄버거 대신 식대를 달라는 요구는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요구가 된다. 맥도날드가 정책을 바꾸어 햄버거 대신 6000원을 식대로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이 6000원을 최저임금에 산입해 버리면, 그나마 있던 햄버거마저 뺏기게 된다. 만약 시간당 임금이 1만 원이고 6시간 일하기로 했다면 하루 일당으로 6만 원을 받아야 하는데, 일당 54000원+식대 6000원으로 줘도 상관없는 것이다.

식대가 산입되면 배달 한 번 갈 때마다 받는 400원짜리 배달수당도 산입대상이 될 수도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야 매니저가 한 번 와서 우리에게 사인 받아가면 그만이다.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서 누가 이의제기를 하겠는가. 이렇게 무원칙으로 하나하나 산입하면 끝도 없다. 물론 세계적 기업인 맥도날드가 이런 치졸한 짓을 할리는 없다고 믿는다.  

식대꼼수

 맥도날드.
맥도날드. ⓒ pixabay

그런데 현실은 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최저임금과 알바 이야기를 하면 항상 등장하는 편의점을 보자. 편의점은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을 안 지키기로 유명한 사업장이라 임금체불 사건이 많다. '최저임금을 왜 안 줘요?'라고 알바노동자가 물으면 사장님이 꼭 이야기하는 게 '너 폐기(유통기한 지난 도시락) 먹었잖아'다.

어차피 버릴 음식을 자기 배에 버린 알바노동자들이 순간 도둑놈으로 몰리는 것이다. 얼마 전 충북에서는 알바노동자가 최저임금을 요구하자 사장이 봉투 값을 내지 않았다며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받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 일로 사장은 전국적인 지탄을 받았다.

최저임금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아마도 사장님은 절도로 신고해서 사회적 비난을 받을 필요가 없다. 식대까지 합쳐서 최저임금을 주고, 점심과 저녁은 폐기도시락을 사먹으라고 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편의점 알바노동자들은 가게를 비울 수 없어, 카운터 한쪽 구석에서 도시락을 까먹어야 한다.

언뜻 보면 상여금은커녕 식대조차 받지 못하는 알바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는 부러운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각종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우리나라 알바노동시장의 특성상 식대와 같은 비용이 최저임금에 산입되면 불법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롯데리아는 8천 원 이하의 햄버거를 식사로 제공받고, 스타벅스는 6만5천 원 KFC는 월 3-5만 원 정도의 식대를 받는다. 식대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돈들이 사라지게 생겼다.

물론, 국회의원들에게 노동시장 밑바닥에서 벌어지는 이 지루하고 처절한 몇 천원짜리 싸움이 눈에 들어올리 없을 거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의 문제다.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재벌과의 싸움, 부동산 보유세 등을 통한 투기꾼들에 대한 제재는 어렵고 무서운 싸움이다. 대신 쉬운 상대를 골라서 구조조정의 칼끝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있다.

국회에 외치자!

그들에게 오늘 배달하면서 만난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햄버거 배달을 갔는데 손님은 5만 원짜리만 들고 있었다. 라이더들은 거스름 돈을 항상 들고 다니지 않는다. 미리 말하지 않으면 거스름 돈이 없기 때문에 5만 원짜리는 결제를 해드릴 수 없었다. 그 순간 손님은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딸에게 대출을 신청했다.

"돈 좀 빌려 갈게. 엄마가 미안해."
"안돼!"

미안해라는 말에 당황해하고 있던 나는, 딸의 단호한 반응에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대한 엄마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분명 딸에게 화를 내며, 버르장머리 운운할 것 같았는데, 엄마는 화는커녕 협상을 시도했다.

"대신 이 5만 원짜리 너 줄게."

나의 성급한 판단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방심하지 않고 끝까지 확인하는 딸의 냉철한 판단이다.

"정확히 얼마 가져갔는데?"
"2만 원." 
"2만 원 가져가고 5만 원 주는 거야?"
"응응" 
"헤헤"

훈훈한 마무리다. 딸의 돈을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돈으로 인식하지 않은 엄마의 태도, 그리고 딸의 의사를 일일이 확인했던 엄마의 태도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 2만 원의 돈을 빌리는데도 이런 대화와 토론의 시간이 필요한데,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의 임금을 너무 쉽게 뺏앗아 가려고 한다.

이에 대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말도 있고,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빠지는 것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문제가 된 그 자리에서 그 순간 외치는 것이다. 사용자와 정부가 공조하면, 노동자위원들이 고립된다. 노사정위원회에 탈퇴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우회하는 협상카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일으킨 국회의원들이 깜짝 놀라도록, 그리고 온 국민이 문제적인 국회를 쳐다볼 수 있도록 크게 소리 지르는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 안돼!" 

덧붙이는 글 | 박정훈 기자는 현직 맥도날드 라이더입니다.



#최저임금#맥도날드#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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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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