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확실한 것은 이들은(만화를 그린 분들은) 나에게, 인생에는 대학 가고 취직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 말고도 수많은 다른 길이 있다고, 통념을 의심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 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 힘으로 지옥 같던 십대를 무던히 살아낸 것 같다. (7쪽/머리말)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조영주, 파사주, 2018)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만화 작가 사전'이 아닌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입니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할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굳이 '한국 만화 작가' 아닌 '한국 순정만화 작가'로 했는지 말이지요.
글쓴이는 어릴 적에 새로운 길을 밝혀 준 벗님으로 만화를 꼽는데, 이 만화 가운데에서도 '순정만화'를 꼽아요. 그렇다고 '순정만화 작가 사전'으로만 쓸 생각은 없었지 싶어요. 그런데 남성 만화평론가들이 쓴 글이나 책을 살피면 순정만화는 으레 곁다리로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루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한국 만화 발자취에서 아예 없거나 대수롭지 않은 사람으로 몰린 순정만화인 터라, 따로 순정만화 작가 이야기를 꾸리려고 했대요.
그러나 인세를 제대로 못 받는 바람에 단행본 4권 이후 원고 작업을 중단했고, 그 상황에서 출판사가 IMF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으며 기왕의 책마저 절판되었다. (27쪽/권교정)
저작권 개념이 없는 출판사가 작가들에게 일본 유명 만화를 똑같이 베껴 그리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 김숙도 때로는 본명으로, 때로는 최진희·권소정·유나래 등의 가명으로 만화책을 '찍어내야' 했다. (46쪽/김숙)
순정만화 작가 아닌 그냥 만화 작가도 이녁 한삶을 살피기 만만하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만화가는 몇몇을 빼고 누구나 막대접이나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해방 뒤 군사독재 무렵 '청소년보호'를 빌미로 가위질이 흔했을 뿐 아니라, 언제나 '만화 = 유해도서'로 내몰았다고 합니다. 이 흐름은 1960년대를 비롯해 1970∼1980년대나 1990년대하고 2000년대로 넘어설 무렵까지 이어졌어요.
오늘날에는 좀 달라졌을까요?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만화잡지는 줄기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합니다. 그래도 인터넷이라는 자리에서 웹툰이 태어나서 살아갈 길을 새로 찾아요.
한국은 한때 일본만화를 슬그머니 훔치거나 베껴서 내기도 했고, '공장만화'를 끝없이 찍어내기도 했어요. 공장만화가 도마에 오르고서 이를 걷어내자는 바람이 조금씩 불었는데, 대여점이 엄청나게 생기면서 '만화책이 많이 읽혀도 만화를 그린 사람은 힘겨운 살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가 저물 즈음 그림삯을 못 받는 만화가가 수두룩하게 나오고, 그나마 만화잡지도 줄줄이 사라졌어요.
이 판결로 만화계가 입은 내상은 치명적이었다. 김진 정도의 스타 작가가 재판에서 졌다는 것은 창작물로서 만화가 고유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일뿐더러, 향후 비슷한 시비가 벌어질 경우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65쪽/김진)
1964년 12월 정부의 주도 아래 만화계와 출판계 원로들이 '한국아동만화자율회'를 세우고 모든 출판 만화를 사전심의하기 시작했다. 심의 기준은 '남자아이 만화'와 '여자아이 만화'가 각각 달랐는데, 여자아이 만화가 상대적으로 훨씬 까다로웠다. 시사를 반영하지 말 것, 사회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지 말 것, 권선징악이나 효도처럼 교훈적인 내용일 것 등 기본 수칙에 더해, 캐릭터들에게 무릎 위로 오는 치마를 입히지 말 것, 반지나 귀걸이 같은 장신구를 하지 말 것, 한 컷에 남녀 둘만 집어넣지 말 것, 남녀가 시선을 주고받지 말 것 등 세부 수칙을 적용받았다. (90쪽/민애니)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을 읽으면 강경옥, 김진, 황미나 같은 만화가가 표절이나 도용 때문에 힘겨이 싸워야 한 이야기도 흐릅니다. 방송 연속극에서 으레 만화 줄거리를 슬그머니 따서 쓰려 했다지요.
만화를 사회를 북돋우는 문화나 예술로 여기는 일본은 한국하고 달라요. 일본에서는 만화를 연속극이나 영화로 기꺼이 새로 담아냅니다. 만화 원작에 기꺼이 값을 치르고, 서로 널리 알리면서 함께 피어나는 길을 가요.
여러모로 본다면, 한국은 만화를 하찮게 다루거나 낮게 바라보는 터라, 만화 줄거리를 훔쳐서 다른 곳에 쓰는 일이 흔히 불거졌지 싶습니다. 만화로 담아내는 새로운 생각이나 꿈이 얼마나 넓은가를 학교나 사회나 문화가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한국 만화는, 이 가운데 순정만화는 더더욱 찬밥이자 가시밭길이었지 싶습니다.
장례 직후 유족들은 송채성이 고료를 모아 만든 종잣돈 2300만 원을 발견했고, 논의 끝에 신인 만화가들을 대상으로 한 '송채성만화상'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2005년 시작된 시상식은 돈이 다 떨어지면서 4년 만에 끝났지만, 만화전문 출판사 거북이북스가 수상작 열한 편을 모아 작품집을 내기로 결정했다. (115쪽/송채성)
저는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을 읽는 동안 어릴 적부터 누린 온갖 만화를 새삼스레 떠올렸습니다. 새소년, 보물섬, 만화왕국 같은 만화잡지가 아니어도 여학생, 주니어 같은 잡지에도 만화가 실렸고, '여학생 잡지'에 실리는 만화는 '소년만화잡지'에 실리는 만화하고 결이 다르면서 줄거리가 튼튼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여학생 잡지에 실리는 순정만화는 수수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을 곧잘 다루었어요.
이를테면, 김수정 님은 <아기공룡 둘리> 같은 소년만화도 그렸지만, <오달자의 봄>이라든지 <소금자 블루스> 같은 순정만화도 그렸습니다. 이진주·이보배 부부 만화가는 처음에는 순정만화 갈래였다면, '소년소녀 만화'라고 해야 할 만한, 명랑이나 순정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만화를 그려서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반가운 이야기꽃을 베풀었어요.
더 헤아리면 이향원 님 만화도 명랑이나 순정 한쪽에만 걸치지 않는 '어린이·푸름이 만화'를 그렸다고 할 만해요. 그런데 이 사전에서는 김수정, 이진주, 이보배, 이향원 같은 이름이 빠집니다. 이 사전에 김동화 님 이름은 들어가는데, 여러모로 아쉽다 싶은 대목입니다.
귀농은 1982년, 데뷔 직후에 했다. 스물한 살에 포천 영중면에 정착해, 여태껏 농사와 만화를 함께 짓고 있다. 처음에는 '타인의 초상', '계곡의 파라다이스', '사랑은 UFO' 같은 연애물을 주로 그리다가, 1988년 《르네상스》에 농촌 아이들의 수수하고 자연친화적인 일상을 담은 '발바닥만큼 한 얘기'를 연재하며 자연주의 작가의 출현을 알렸다. 이 같은 정체성은 1992년 농사꾼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더욱 강화되어, '나비날개', '들꽃 이야기', '넝쿨이는 세 살 반', '엄마의 밥상' 등 고퀄리티 친환경 자연주의 아동 생활 만화로 이어진다. 2013년에는 어린이 눈높이의 식물도감 '식물, 어디까지 아니?'를 펴냈다. (100쪽/박연)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을 쓴 조영주 님은 모두 백열 사람을 다룹니다. 자료를 찾기 벅차서 빠뜨려야 한 순정만화 작가가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한창 순정만화를 담아낸 만화잡지사라도 남았다면 좋았을 테지만, 만화잡지사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만화가를 둘러싼 기록이 너무 없다시피 하지요. 만화를 사랑한 이들 스스로 만화책을 건사하지 않고서는 순정만화뿐 아니라 만화 발자국을 제대로 아우리기 어려운 한국 문화요, 사회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 순정만화 작가 사전>(조영주 / 파사주 / 2018.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