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은 애초 약속대로 6월 12일에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실무회담에 착수했다. 취소 위기에 있던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본 궤도로 복귀했지만, '비핵화 시한'과 '후 보상'이라는 여전히 큰 합의 과제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소 편지 뒤 사흘도 안 걸려 '회담 복귀' 공식화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동부시각으로 26일 오후 백악관에서 2년여간 베네수엘라에 억류됐다 풀려난 조슈아 홀트씨를 만난 자리에서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발언했다.
정상회담 일시와 장소가 기존 합의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걸 밝힌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말한 대로 여기서 멀지 않은 어떤 장소에서 만남이 진행 중이며 많은 사람이 이를 위해 일하고 있다"라며 "그곳에 많은 호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북한측과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논의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한국시각 26일 오후 11시경)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의 정상회담 사전준비팀이 싱가포르로 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곧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6월 12일에 열리기 어렵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는 오보라고 트위터로 반박했다.
그간 일어난 일을 시간순으로 보면, '정상회담 취소 공개서한' 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유화적 담화'가 있었고,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따뜻하고 생산적"이라면서 "아주 좋은 소식"이라고 평가했다.(미국 동부 : 25일 오전 8시 14분, 한국 : 25일 오후 9시 14분).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오후 8시 37분(한국 : 26일 오전 9시 37분)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6월 12일이 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일정이 연장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트위터를 올렸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4차 남북정상회담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나타낸 반응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시각으로 26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이 결과는 다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결국 김계관 제1부상의 유화적 담화가 대화의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막았고, 이어 4차 남북정상회담 결과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돼 북·미가 다시 대화의 장으로 복귀하는 모양새가 됐다.
'비핵화 로드맵' 합의가 핵심... "쉽게 되지 않을 것"
하지만 여전히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본질적 문제'는 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 여부가 핵심적이다.
문 대통령은 27일 오전 이번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직접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비핵화에 대해서 (북한과 미국의) 뜻이 같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가라는 로드맵은 양국 간에 협의가 필요하고, 그런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비핵화 로드맵, 즉 '미국의 보상과 북한의 비핵화가 단계적으로 교환되는' 북한측의 로드맵과 '최대한 빠른 기간에 핵무기와 핵시설, 핵개발 프로그램의 폐기를 이룬 뒤에 미국이 보상하는' 로드맵 사이에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충 설명을 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게 쉽게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굉장히 압축된 시간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그 목표달성 과정에서 다소의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정부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개최될 것으로 믿고 있고 그 회담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큰 틀에서 북한과 미국의 의견이 미국측의 로드맵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하지만, 비핵화가 물리적으로도 단시간에 끝내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미국이 요구하는 '최대한 빠른 시일'이 얼마가 될 것인지가 6.12 북·미정상회담의 성공 여부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가 끝나는 2020년을 그 시점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보상' 의제 여부도 중요... 문 대통령 "서로 잘 알고 추진, 잘 될 것"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회담 의제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문 대통령은 "6월 12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북미간 실무협상이 곧 시작될 것으로 알고 있다. 실무협상 초기에는 의제에 관한 협상도 포함된다"며 "이 의제에 관한 실무협상이 얼마나 순탄하게 잘 맞춰지느냐에 북미정상회담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 합의와 체제안전보장을 동시에 교환하고 싶어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가 충분히 진행됐다고 판단됐을 때 체제안전보장 등의 보상을 내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건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 할 경우에 미국에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본다. 반면 (23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할 경우에 적대관계를 확실히 종식화시킬뿐 아니라 경제협력을 도울 확고한 의지도 있다고 피력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때 보상 의지'를,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에겐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시킨 걸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예를 들면 적대행위 금지라든지 상호불가침 약속을 다시 한다든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는 협상을 개시한다든지, 또는 4.27판문점 선언에 포함돼 있는 (남북미) 3국간 종전선언 등"이라며 "이런 여러가지 방법도 북한이 비핵화 추진 방안에 관한 북미 간의 합의가 이뤄지고, 또 그 합의를 북한이 어느 정도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난 다음에 검토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선 비핵화, 후 보상'의 형태로 갈 수밖에 없으며, 6.12 북미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비핵화에 대한 논의에 집중되고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는 실질적인 조치는 남북미 3국간의 회담 등 다른 형태로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북한은 미국의'선 비핵화 후 보상' 방안에 지속적으로 반발해 왔는데, 6.12 북·미정상회담 의제를 협의하면서 보상 문제가 소홀히 다뤄지는 데에 북한측이 다시 반발할 경우엔 회담이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저는 북·미 양국 간에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분명히 인식한 가운데 회담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실무협상에 이어 6.12회담도 잘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로 합의가 쉬운 부분과 어려운 부분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각자 합의 도출을 위한 복안을 갖고 있을 거란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