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아침 일찍 출근한 내 모습을 떠올렸다. 옷은 제대로 갖춰 입었는지, 머리카락은 잘 말랐는지 모르겠다. 허둥지둥,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삶을 일만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해야 할 목록들만 뻐꾸기 알람처럼 울렸다. 그렇다보니 노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놀아 본 사람이 놀 줄 안다. 어쩌다 친한 친구를 만나면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다음날은 숙취로 제대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다. 그러나 같은 패턴은 반복 됐다. 제대로 쉬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1만 시간 꾸준히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스트레스와 과로는 미덕이었다. 성실하다는 방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설득력 강한 1만이라는 시간 속에 포기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 첫 번째가 건강이었다. 그 뒤로 효율적인 일처리 방식에도 삐걱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 그만 쉬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그 목소리는 계속 들렸음에도 일상에 쫓긴 나는 줄곧 그것을 무시하며 살았다.
나, 제대로 살고 있을까? 무너진 것은 육체만이 아니었다. 허물어지는 정신. 무거운 공기가 집에 오면 가슴을 압박할 정도로 내려앉았다. 번아웃(burn-out)의 징조가 조금씩 보였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을러졌다는 생각에 나를 좀 더 다그쳐 보기도 했다. 일에 염증이 나고, 대인관계는 꼬이기 시작했다.
으름장을 놓으며 1만 2500시간은 휴식을 취하라고 말하는 책이 있다. 레스트풀컴퍼니의 설립자이자 스탠퍼드대 객원 연구원인 알렉스 수정 김 방이 쓴 <일만 하지 않습니다>였다. 책은 휴식에 관한 책이라고 정의 내려졌다. 저자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골몰하는 사람은 많지만 더 잘 쉬는데 관심을 가지는 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휴식과 여가를 사치품마냥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휴식과 일은 양분되어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자는 휴식은 단순히 일의 반대 개념은 아니라고 한다. 휴식은 내일에 살아갈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달래는 일이다. 지금 잠깐 걷지 말고 숨 한번 돌리자 하는 것처럼 느리게 사는 방법이기도 했다.
퇴근 후 나는 집에 돌아오면 가능한 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 책을 읽은 후 다짐한 일이었다. 그 외에 업무 연장선처럼 느껴졌던 일들을 과감히 가지치기를 했다. 오로지 내가 힐링 할 수 있는 무언가만 찾았다. 나는 그것을 에너지 충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치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면 코드를 꽂고 충전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하루 일과 후에 나는 잔류량이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와 같은 처지 아니겠는가.
정말 급한 일이라면 문자가 왔다. 대개 그런 일은 흔하지 않았다. 주로 전화를 거는 사람은 술친구가 흔했다. 내 삶에서는 매우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기분을 다 맞춰주기에 내 에너지량은 충분치 않았다. 그들이 술자리에 불러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지만 나는 절대로 오늘만 살다 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 전화기를 엎어뒀다. 가급적 손 닿지 않는 곳에 말이다.
쉴 때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다. 글을 쓰기도 했다. 때론 저녁이나 아침 일찍 동네 산책을 하기도 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일을 하는데 지치지도 않았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서 요즘 잘 웃고 다닌다는 소리도 들었다. 과체중이 걱정될 정도로 밥도 맛있었다. 피곤에 찌든 삶에서 해방이었다.
책에서 나온 것 중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산책 회의다.
"스티브 잡스 역시 팔로 알토의 낙엽 쌓인 거리를 걸으며 산책회의를 하기로 유명했다. 링크트인 직원들 역시 본사 건물에서 나가면 바로 있는 쇼라인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곤 한다. 마운틴 뷰에 있는 구글 지사에는 회사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캘리포니아 주 멘로 파크에 본사를 둔 페이스북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건물을 디자인 했으며 2015년 초 건물 내부의 벽을 최소화한 건축물이 완공됐다. 이 건물 옥상에는 3만 6,000㎡에 달하는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정원에는 800m 길이의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몇몇 기업들은 회사 건물 주위에 30~50분 가량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조성하고 회사 일정에 아예 산책 회의 시간을 정해 직원들이 산책 회의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37쪽)
넓고 길쭉한 회의실 탁자에 상사의 말을 받아 적기 하는 모습, 무엇인지도 모를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우고 중언부언 회의 시간만 길어지는 좁은 회의실, 허리는 시큰해지고 머리는 멍해지고, 힘에 부치는 마라톤 회의. 그만 하자는 말도 하지 못한다. 불편함에 사로잡힌 회의 시간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책은 노동과 휴식의 균형이 곧 격이 높은 삶을 산다고 했다.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술은 단순히 쉰다고 마음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하다. 어떤 연습을 해야 할까?
마음을 단련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걷기와 같은 가벼운 운동을 매일 하는 사람은 일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저자의 논리를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반추해 보면 이것은 간단치 않다.
휴식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는 방식에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이것은 일은 왜 하는가? 일이 정말 삶에서 중요한 것인가는 질문을 낳았다. 잇단 질문에 답을 한 위인들의 말도 책에는 실려 있었다. 바로 <유혹하는 글쓰기>를 쓴 스티븐 킹의 말이었다.
"규칙적인 일상은 깨어있는 정신을 단련해 창조적으로 잠을 자면서 생생한 상상의 꿈을 꾸게 해준다. 그것이 바로 좋은 소설이 된다."(132쪽)
누구에게나 휴식은 중요하다. 쉬어야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영감에 옆구리를 쿡 찌르며 최고의 작품, 일이라면 최고의 성과를 얻을 수 없다. 몰입도가 떨어지는 일에 신선한 바람을 쐬는 것처럼 판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흐름을 끊고, 휴식을 취하라. 그 휴식은 게으름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고, 나태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휴식 후 머리를 말갛게 비우고 하루를 살아라. 쾌활하게, 쾌적하게 사는 것도 결국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이다. 저자가 책에서 팁 하나를 줬는데, 하루를 일찍 시작하라고 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오후 시간을 평범한 일을 하며 보내지만 그 일을 더 많이, 더 잘할 수 있다. 무작정 긴 시간 일을 하기보다는 규칙적인 일상과 집중적인 몰입, 의도적인 휴식을 적절히 활용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신체 서캐디안리듬(생물이 나타내는 여러 현상 중, 대개 24시간 주기로 되풀이하는 변화 -편집자말)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이른 아침에 뇌의 평가 체계의 영향력이 낮아지고, 억제력이 저하되며 창의력이 자극된다. 또한 하루를 일찍 시작하면 휴식을 취할 여유도 생긴다."(132쪽)
아침 일찍 일어나 휴식을 계획하라는 말. 그 휴식을 즐기라는 말.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쪼개어 보면, 우리가 하루를 살며 해야 할 일들이 좀 더 명확하게 떠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업무 일과 가사 일, 대인관계 등이 그렇다. 실체가 있는 귀중한 시간을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치를 적확한 시간에 집중하여 일을 끝내고 느긋하게 삶을 인식하며 사는 것, 그것이 꾸준히 자신의 일에 성과를 내는 지름길이라고 책에는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