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엘 다녀오는 길에 잠시 전주에 들렀다. 전주는 내가 나고 자란 남도 땅과 가까운 도시인데도 늘 지나치기만 했을 뿐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었다. 전주에 사는 양 형의 안내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경기전(慶基殿)과 전동성당 등 유서 깊은 역사유적들을 돌아본 후 그 유명하다는 전주 막걸리를 맛보기 위해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상 가득 푸짐하게 차려진 술상을 대하고 보니 가난한 중생이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흐뭇한 감정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올랐다. 막걸리가 한 순배 돌고 다들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안내를 맡은 양 형이 불쑥 전주비빔밥보다 더 맛있는 비빔밥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던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리는 순간, 그는 전주 막걸리처럼 약간은 싱거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하따, 이 번 주 비빔밥이랑게요!"
전주 사람 특유의 넉살인지 풍류인지 그 대답 한 마디에 일순간 좌중이 빵 터졌다. 고층 건물이 많지 않은 데다 건물들은 대개 낮고 오래된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초라하거나 궁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전주의 첫 느낌, 그것은 비록 낡기는 했지만 날마다 쓸고 닦아 윤이 반짝반짝 하던, 소탈하면서도 정갈한 고향집 대청마루 같은 것이었다.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고 때 이른 무더위에도 사람들의 걸음걸이에는 여유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史庫)를 보존한 이야기며,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한옥마을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까닭 등, 양 형의 구수한 입담과 함께 흘러나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다보니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몇 통을 비웠는지 막걸리 주전자도 동이 난 즈음이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양 형이 불쑥 부채 하나를 내밀었다.
"전주에서는 부채가 없으면 행세하기 힘들지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가 건네준 부채를 펼쳐보니 직접 쓴 <명심보감> 권학편의 글귀들이 멋스럽게 적혀있다.
"사람이 배우지 않는 것은 높은 곳에 오르는데 사다리가 없는 것과 같고, 배워서 지혜가 심원한 것은 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으며 높은 산에 올라 사해(四海)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멋진 글귀보다도 양 형의 따뜻한 마음이 먼저 가슴에 와 닿았다. 조선 후기 문신 이유원(李裕元)은 부채를 일컬어 맑은 바람을 일으켜 주는 덕, 습기를 제거해 주는 덕, 깔고 자게 해 주는 덕, 값이 저렴한 덕, 만들기 쉬운 덕, 비를 피하게 해 주는 덕, 볕을 가려 주는 덕, 옹기를 덮어 주는 덕 등 팔덕선(八德扇)이라 했는데 더불어 사람의 따뜻한 마음까지 전할 수 있으니 양 형의 부채는 아홉 가지 공덕을 지닌 구덕선이 아닐까 한다.
날씨가 점점 무더워진다.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한 채 이번 여름에는 전주에 가서 시원한 부채 바람과 함께 전주인의 멋과 풍류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