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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세웅

의병의 날은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고자 2010년 5월 제정한 국가기념일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수군 재건을 위해 구례를 떠나 곡성으로 이동하신 후 8월 6일 구례 현감 이원춘은 남원으로 퇴각했고 8월 7일 구례는 왜군에 의해 함락됐습니다.

8월 16일 남원성이 함락되고 전주성도 함락되어 전라도 전역 왜군의 수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왜군에 의해 무자비한 약탈과 방화, 그리고 살육 행위가 자행됐습니다.

ⓒ 임세웅

왜군의 분탕질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구례의 왕득인은 의병을 일으켜 석주관에서 항쟁했으며, 왕득인과 구례 의병이 순절한 후 왕득인의 아들인 왕의성과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등 구례 의병과 153명의 화엄사 승병이 석주관에서 왜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왜군의 기지화한 상황에서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지원도 끊긴 절망적인 상태에서 전개된 처절한 항쟁이었습니다. 추위가 한창이던 때에 이루어진 악전고투한 매우 충격적인 의병 항쟁이었습니다.

전라도 53개 읍 가운데 읍세가 가장 약한 고을, 적세가 특히 강했던 고을, 주위의 읍에서 부역 행위로 보신책을 삼는 식자들이 적지 않았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구례 석주관 의병 항쟁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 임세웅

1597년 4월 26일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장군은 남원을 거쳐 구례에 입성하셨으며 몸과 마음이 지친 이순신 장군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이들은 손인필을 비롯한 구례 사람들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중 가장 힘이 되었던 인물이 바로 손인필이며 또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되어 구례에 다시 입성하셨을 때도 가장 먼저 맞이해준 이가 손인필과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 임세웅

8월 3일 [양력 9월 13일]<신해> 맑다.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가 뜻밖에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명령은 곧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이다.

(중략) 저물어서 구례현에 이르니, 일대가 온통 쓸쓸하다. 성 북문 밖에 전날의 주인집으로 가서 잤는데, 주인은 이미 산골로 피난 갔다고 했다. 손인필은 바로 와서 볼 겸 하여 곡식까지 가져 왔다. 손응남은 올감을 바쳤다. - 난중일기 중에서


의병의 날을 맞이해 꼭 기억해야 할 구례의 의병들입니다.

#의병의날 #석주관 #의병장고광순순절비 #구례의병 #손인필비각 #백의종군 #수군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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