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지 못하던 삶이 가장 후회스러웠습니다."사이판의 한 리조트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다. 모인 사람은 지역에서 여행업을 하는 한인들과 가족들. 이들의 중심에 괌과 사이판에서 재활용 사업을 하는 차재윤 FSM 사장이 있다. '형님' '동생' 하는 호칭이 오가며 쉴 새 없이 고기가 구워져 나오고 웃음꽃이 핀다.
차 사장은 재활용 사업으로 괌과 사이판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 꼽힌다. 이 사업은 그가 일곱 번의 실패를 딛고 쌓아온 보물이다.
실패 주저앉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17년 동안 무려 일곱 번의 부도. 보통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삶이다. 차재윤 사장은 개인 사정으로 일찌감치 사업을 시작했다. 서비스, 유통, 제조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하지만 사업은 만만치 않았고 장애물에 자꾸 걸려 넘어졌다. 처음 부도를 맞았을 때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낚시터에서 소주 3병을 마시고 긴 끈을 하나 구해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주섬주섬 앉아 생각하니 갑자기 죽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차 사장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다잡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정말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오히려 채권자들이 도움을 많이 줬다고 한다. 그럼에도 차 사장은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재활용 사업에 눈을 떴다.
"일곱 번의 부도를 맞으면서 다음에는 썩지 않는 제품으로 남들 일할 때 같이 일할 수 있고 외상없는 사업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다. 고민하던 결과 생각해 낸 것이 '고철업'이었다. 차 사장은 다만 고철업이라도 단순 고철 장사가 아닌 기업형의 운영을 꾀했다. 앞으로 고철 사업에는 장비 운영이 필수라는 생각에 무작정 배우러 달려갔다.
장비를 배우며 깨달은 인생17년간 '사장' 칭호만 들었던 차 사장이 장비를 배우기 위해 간 곳에서 처음 들은 말은 '차 기사'였다. "당시에는 자존심 때문에 뒤통수가 뜨끔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내 그러한 감정들은 행복감으로 바뀌었다.
"난 거기서 인생을 배웠다. 내가 하찮게 봤던 노인이 장비 부분에서는 나보다 더 뛰어나더라. 거기서 나는 단순한 초보자일 뿐이었다. 점점 지적을 받는 것이 즐거웠다. 난 그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7개월 만에 장비를 다 배우고 재기를 꿈꿨다. 자금이 문제였다. 하지만 돈 문제도 결국 사람이 해결해 줬다. 장비 수업이 마무리될 때쯤 길에서 우연히 예전 거래처 차장을 만났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도와줄 일은 없나"라는 말을 들었다.
차 사장은 "5000만 원만 있으면 재기할 수 있다"라고 했다. 결국, 그 차장은 다음날 동업 조건을 내걸고 돈을 가져왔다. 그 돈으로 지게차를 사고 고철을 쌓아둘 땅을 구했다. 땅 역시 예전에 사업을 하면서 땅과 관련해 도움을 줬던 사람에게 쉽게 구했다. 결국, 사람의 힘으로 1년 만에 재기에 성공했다.
이국땅에서 또 한 번 좌절, 하지만재기에 성공하며 재활용에 관해서는 안 되는 일 없이 다 할 수 있다고 소문이 났다. 그러다 괌에 태풍이 불어 고철이 많이 나왔는데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3년 무작정 괌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쉽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같이 일을 하기로 한 사람과 뜻이 맞지 않아 투자받은 금액을 다 날렸다. 괌으로 들어오면서 투자해준 친구와 후배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러다 당진에 있던 또 다른 후배의 도움으로 1억 원을 다시 확보했다. 그 돈으로 다시 시작했다. 5~6개월 만에 고철 4000톤을 모았다. 70만 달러가 다시 모였다. 빌린 돈은 모두 갚았다.
차 시장은 이후 괌 지역 시장들을 모두 만나 폐차 처리 허가를 받았다. 당시 괌 정부는 폐차를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 무료로 처리해주겠다니 모두 쉽게 허가를 내줬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차 사장 혼자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수천 대를 모았다. 재활용 사업도 기업형으로 시스템화해서 원가를 최대한 낮췄다. 다른 업체에서 전부 적자를 봐도 차 사장은 항상 흑자였다. 그렇게 괌에서 사업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고 사이판까지 사업을 늘릴 수 있었다. 연매출은 20억~30억 원가량이라고.
사람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업차 사장은 젊은 시절 가장 후회하는 것이 베풀지 못한 삶이라고 했다. 그는 "돈이 있을 때 식구, 친구에게 너무 못 해줬다"라며 "당시에는 그럴 머리도, 마음도 부족했다"라고 후회했다. 그것을 깨닫고는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 "내가 힘들어도 베풀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베풀자"라는 철학으로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 없이 모든 것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사업 성공비결을 묻자 차 사장은 "남의 것 빼앗지 않고, 내가 노력해 신의를 지킨 것밖에 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직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차 사장은 월급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도와줬다. 그런 노력의 결과 직원들은 "내가 차 사장님을 도와주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회사 직원에게도 신뢰를 얻었다는 증거다.
차 사장은 현재 사이판 근방에 있는 티니안섬을 오가는 보급선 사업도 겸하고 있다. 티니안섬에는 한국인 교포 3·4세가 살고 있다. "보급선 사업은 티니안 사람의 도움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최대한 교포들에게 쌀 한 포대씩이라도 나눠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내에서도 성공하는 사업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 어려움이 몇 배는 더할 것이다. 차재윤 대표의 성공 철학을 간단명료하다. 항상 사람을 우선하고 관계를 소중히 하는 자세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사람이 우선입니다. 교포들과 더불어 잘사는 것이 저의 작은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