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사무실 앞.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무리지어 길을 건너더니 한 인도에 모였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길을 건너 온 이들이다. '담배 연기에 숨 쉴 수가 없어요'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매케한 담배 연기가 코를 찌르고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호소 현수막에도, 경고문에도 아랑곳 않고 '뻑뻑'
한 남성은 담배 꽁초를 버릴 곳을 찾더니 슬그머니 바닥에 떨어뜨리고 사라졌다. 무단 투기 시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붙어 있지만 경고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기 저기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
이들이 서 있는 인도와 직선 거리로 10여m 거리에 ㅈ아파트가 있다. 비슷한 시각, 아파트 복도에 들어서니 담배 냄새가 느껴졌다.
1층에 사는 50대 박아무개씨는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담배 냄새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고 말했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30대 최아무개씨 역시 "점심 시간이 끝나가는 오후 1시쯤엔 5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담배를 피운다"며 "냄새 때문에 에어컨조차 켜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흡연자들도 불만은 있었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던 30대 남성은 "회사에 흡연 부스가 있지만 좁고 답답해서 직원들 대부분 밖에서 흡연하고 싶어 한다"며 "아파트 주민과 보행자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근처가 모두 금연 거리라 이곳 밖에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대충 설치해놓은 흡연실, 외면 받을 수밖에"
금연 구역이 늘고 흡연자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이처럼 '거리 흡연'이 문제가 되고 있다. 흡연자들이 금연 구역을 피해 주변 이면 도로나 골목길로 모여 들면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
서울시가 금연 구역으로 지정한 곳은 올해 1월 기준으로 26만 5113곳으로 자치구들이 조례로 지정한 금연 구역까지 합치면 서울 면적의 3분의1 가량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흡연실은 약 1만 곳으로 부족하다. 실내 흡연은 크게 줄었지만 되레 거리 흡연이 늘어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공공장소 간접 흡연율은 20%를 웃돈다.
정치권도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6일 보행자의 간접 흡연 피해를 줄이고 흡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하기 위해 흡연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흡연실 설치 의무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 40대 남성은 "이곳(송파구 잠실동) 건물에는 대부분의 흡연실이 있다"며 "공간이 비좁아 다닥다닥 붙어 담배를 피워야 하니까 자꾸 밖으로 나오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남성은 "흡연자 수를 고려해서 흡연실 규격이 정해져야 하는데 대충 설치만 해놓다 보니 외면받는 것"이라며 "흡연실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송파구 보건소 관계자는 8일 "민원이 계속되고 있는 ㅈ아파트 앞 인도를 금연 거리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금연 거리가 되면 주변의 이면 도로로 흡연자가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