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트위터에서 탈출했다. 홀가분했다. 아직까지도 당시 나의 사유를 점령하고 있던 온갖 사악한 언어의 찌꺼기들이 머릿속에 어른거리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지워질 것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서 내가 트위터에 왜 가입했는지, 그곳에서 어떤 발언에 중심을 뒀는지 그리고 어떤 주제로 이전투구를 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또한 트위터라는 공간에 대한 심층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함구하겠다.
이번 선거, 트위터 세계는 예전과 달랐다항상 그렇듯, 선거철이 되면 유독 트위터는 오일장 서듯 북적거린다. 평상시에는 자신의 취미나 사회정치적 성향에 맞는 기사를 리트윗하고, 문득 머리를 스치는 문장이 떠오르면 무슨 그럴듯한 아포리즘이라도 발견한 듯 일필휘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선거철에 돌입하면 모두들 '포악한 야수'로 돌변한다. 평화의 시대는 가고 중원에는 살벌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각처에 은둔해 있던, 자칭 '한가닥한다'는 논객들이 흙먼지 휘날리며 몰려든다.
나름 내공을 가진 고수들 중심으로 각자의 전선을 구축하고 상대편에 공격을 가한다. 물론 지금은 여론조작이니 매크로니 하면서 가공적인 여론이 만들어졌다고 밝혀졌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소부대와 각개전투로 적들과 치열하게 싸운다. 나처럼 홀로 외롭게 싸우는 논객들도 있고 수만 명 이상을 거느린 장수급 고수들도 있다.
간결한 문장으로 인해 호흡이 짧은 트위터는 순발력이 대단해 온라인 게임처럼 공격과 방어는 박진감이 넘친다. 전선을 넘나들며 적군의 동태를 파악하고 일침을 가해 적진을 파괴하기도 하고, 때로는 후방에서 지원 포격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문장은 과격해지기 마련이다. 서로의 약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자극적인 문장을 만들어야 하고, 때로는 풍자와 조롱 등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기도 한다.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공방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오프라인 세상은 평화롭지만 온라인은 뜨겁다.
어제의 동지가 서로 저격하는 진흙탕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다. 공방의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군끼리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내전이었다. 어제까지 트친으로 정치적 공감대를 갖고 우호적이었던 트위터리안과 적대적 관계가 형성됐다. 그 원인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논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의 타임라인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모든 현안에 대해서 팬덤 형식의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사에 하나의 방향으로 가지는 못하는 법이다. 개인은 하나의 고유한 사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배는 함께 타고 가지만 그 안에서는 서로 간에 의견 충돌로 다툴 수 있다. 당연한 현장이다.
그것을 전제로, 수 년간 안정된 전선을 구축하고 있던 중원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내부의 적들에 의해 포위됐다. 처음엔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완강했다. 그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처음의 나의 멘션도 시간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완고해질수록 나도 완고해졌다. 확증편향이란 단어를 들이대며 사고의 경직성이 불러오는 폐단을 설파했다. '사람을 미워하면 좋은 것은 보이지 않고, 미움은 미움을 낳고, 종국에 루비콘 강을 건너 돌아올 수 없게 된다'고 그들을 회유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네거티브가 난무하게 되고 나의 손끝은 점점 날이 세워졌다. 내 의견과 다른 트친의 말을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나는 감정이 격해져 그들을 명부에서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인원이 어림잡아 수백 명이 넘었다. 그들의 논리는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미움으로 가득 찬 궤변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터무니없는 문장을 읽고 논박해야 하는 나는 무엇이며 그것이 정말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 때로는 그런 내게 분노가 치밀었다.
사실 어제의 아군과 이렇게 극렬하게 논쟁을 벌이는 현상은 내겐 익숙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도 그런 것을 느꼈겠지만, 아군까리 싸우면 마음의 상처가 더 크고 따라서 분노의 수치도 높아져 양상은 더울 혼탁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전쟁을 상기하면 공감할 것이다. 적군과 싸우면 최소한 마음은 아프지 않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돼야 한다'는 논리그렇게 선거가 다가올수록 트위터를 여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렇다고 그 횟수만큼 트윗을 올리진 않았다. 하루에 3개 정도는 올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지켜지는 건 며칠에 한 번 꼴이었다. 트윗을 하지 않더라도 중원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시간이 나면 수시로 출입했다. 어느 때는 잠 못 이루는 새벽에도 여론이 궁금해 트위터에 들어가곤 했다. 중원은 점점 진흙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 대선 때는 확실한 전선이 구축된 관계로 강력한 트윗을 쏘아대고, 나는 내심 카타르시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그런 기분을 전혀 들지 않았다. 트윗의 내용들을 볼 때 어제의 아군을 향해 화살을 쏜 횟수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나의 정치적 관심은 내부의 적이었다. 전선 밖의 적군은 저 멀리 있었고 바로 지척인 내부의 적과 나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뭔가. 이런 나를 발견하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전의 상처가 더 깊은 법이라고 누가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 무렵, 트위터에 팔로워 100만 명을 거느린 '동방불패 천하의 고수'가 등장했다. 한동안 은거하고 있던 그 고수는 네거티브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무렵 '진실'이라는 그만의 마공을 품고 나타나 피바람을 예고했다. 숨이 막혔다.
그리고 나는 트위터를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트위터는 더욱 더 혼탁해지라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인간의 정치적 욕망이 난무하는 그곳은 더 이상 나의 정치적 안식처가 아니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버거운 그곳은 인간의 정치적 이견들이 충돌하고, 그것이 확대·재생산되면서 하나의 거대한 아수라장을 만들고 있었다. 결국엔 스스로의 바닥을 보여주고, 사악함까지 끄집어내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 나를 상상해보고, 치를 떨었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돼야 한다는 논리에 나는 두손을 들었다. 그래, 떠나자. 중간계 같은 이 소굴을 떠나자.
트위터를 탈퇴하고 이제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 주위에는 언제나 나의 가족이 있었고, 회사 동료들이 있었고, 친구들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를 하고, 동네 아주머니가 항상 그렇듯 인사를 한다. 이제는 그곳으로 다시는 돌아갈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 공간이 없더라도 나의 일상은 변함이 없을 것이고 어떠한 영향도 없으리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