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학교와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면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선생님을 진심으로 따르고 꿈을 키워나가는 제자들이 만들어 가는 교실 속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과 교직 생활 동안 경험한 교실 속 작은 희망의 이야기들을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기자 말돌쟁이 아기가 조용하면 뭔가 일이 생긴다고 했던가? 아빠의 책과 학교 관련 물품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더니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한참을 집중해서 뭔가를 꼬깃꼬깃 접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제자가 몇년 전에 색종이로 접어준 종이거북이다.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세 종류의 색종이를 이용했고, 풀로 종이들을 붙인 자국, 가위로 섬세하게 거북이의 모양을 다듬은 흔적들을 보니 새삼 자타공인 '종천(종이접기 천재)'으로 불리웠던 제자가 떠오른다.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데 많은 부담을 느꼈던 수줍은 아이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능동적이고 활발반 신체활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성격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반면에 다소 집중력이 부족하거나 소근육을 활용한 섬세한 조작활동에는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성향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준우(가명)의 첫 이미지는 내가 알고 있는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들의 성향과 많이 달랐다. 정말 점잖고 섬세한 것에서 강점을 보이는 차분한 아이였다. 공부시간에도 조용히 책을 보고, 쉬는 시간에는 집중해서 종이접기를 하곤 했다. 준우는 그런 자신만의 장점도 가지고 있었지만 다소 내성적이고 친구들 앞에서 말을 할 때 긴장을 많이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친구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순서가 되어 교단 앞에 나오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발표하고자 하는 내용 또는 작품이 매우 훌륭함에도 수줍은 성격으로 제대로 표현을 못 했다. 그런 탓에 본인도 자신감이 떨어지고, 반 친구들과 교사인 나 역시 함께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 중에는 친구에게 말하는 것보다 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끼는 경우가 매우 많다. 물론, 교사와 학생간에 신뢰감이 조성되고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시간과 서로간의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준우와 나는 라포가 잘 형성되어 있어서 서로의 일상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였다. 몇 달 동안 준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목표가 하나 생겼다. 준우가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때까지 본인이 잘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준우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잘하는 게 뭔지 물어봐주세요.""그래. 준우야 너가 잘 하는 건 뭐야?"
"그건 바로 종이접기에요. 저한테 별명 하나만 만들어 주시겠어요?""선생님이 봤을 때 준우는 종이접기를 천재적으로 잘 해. 선생님은 몇 시간 동안 노력해도 못 하는 걸 준우는 금방 했잖아. 그럼 종이접기 천재! 줄여서 '종천' 어때?"준우는 처음에는 그 별명이 유치하다면서 웃었지만, 기분이 썩 좋았나보다. 친한 친구한테도 이야기하고, 집에 가서도 부모님께 신나게 자신을 '종천'으로 어필한 것이다. 왠지 이런 준우의 고무된 기분을 잘만 맞춘다면 자신감 형성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준우에게 제안했다.
"준우야, 다음주 창체(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우리반 종이접기 수업을 하려고 하거든. 준우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거를 골라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는 건 어때?"우리반의 특색 중 하나는 창체 일일 선생님이었다. 교사 재량으로 수업구성이 가능한 창체시간에 아이들 본인이 일일 교사가 되어 잘하는 것을 직접 가르쳐 보는 경험을 함으로써 다양한 교육적 효과를 기를 수 있었다.
여태껏 준우는 일일교사는 상상도 해보지 않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나의 제안에 많이 고민이 되었는지 바로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아주 밝은 얼굴로 종이 거북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다고 나에게 인사를 대신했다.
학생의 장점을 발견하고 격려해주기
드디어 수업 당일 아침이 밝았고, 준우는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했는지 입으로 하고 싶은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수업 시작 전까지도 열심히 종이접기책을 들여다 보곤했다. 수업이 시작되고, 준우는 차분히 실물화상기를 이용해서 종이를 접었다. 어려워 하는 아이에게 다가가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는 여유를 보였다. 아이들은 본인들끼리 속닥속닥거렸다.
"야, 준우 말 잘한다.""뭐냐, 다른 애 같아! 종이접기 진짜 잘한다."준우는 긴장을 하긴 했지만 교사인 내가 봐도 놀랄 정도로 자신감 있게 종이를 접고 자신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종이접기의 특성상 아이들의 속도 차이가 많고, 쉽게 포기하고 집중하지 않는 친구들이 생기면서 준우의 분노가 폭발(?)하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단계를 밟아 자신의 수업을 마치는 준우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진이 빠졌는지 준우의 볼이 새빨개졌다. 땀도 많이 흘렸지만, 표정은 꽤나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 이후로 준우의 내성적인 태도가 갑작스레 바뀌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발표를 할 때의 긴장감이 줄어들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또, 2학기가 되어서는 자신이 퀴즈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풀게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하여 또 한번 일일교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준우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걸 표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들이 잘 하는 것을 발견하고 칭찬하고 격려할 줄 아는 것은 교육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또, 이러한 노력으로 학생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교사의 가장 큰 보람이기도 한 것이다. 중학생이 되었을 준우가 어떤 아이로 성장하고 있을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