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5일, 1년에 60일. 일생 동안 쓰고 버려지는 생리대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여성의 월경권은 단연코 여성의 삶, 건강과 맞닿아있는 화두다. 지난 5월 17일, 월경페스티벌에서 만난 루나컵 팀은 몰려든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월경컵을 나눠주었다. 그것도 무료로! 국내산 첫 월경컵이 등장했지만 도리어 루나컵은 여성들의 절대적인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 오는 7월 출시 예정인 루나컵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싶다며 심윤미 대표가 인터뷰를 청해왔다.
캐나다 의료기기회사와 손잡고 개발심윤미 대표는 자신을 "루나컵의 대표 일개미, 평범한 아줌마"로 소개했다. 창업 1년차에 접어든 그는, 여성 4인으로 이뤄진 예비 사회적기업의 어엿한 대표이사다.
"얼마 전 출시된 타 브랜드 월경컵과 함께 회자되면서 갑자기 주목받아서 어리둥절한 심정입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아직 출시도 안 된 루나컵이 유명해졌더라고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무거운 책임감이 들어 SNS에서 거론되는 이야기에 정확한 정보를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루나컵은 국내 생산품이 아닌, 캐나다 의료기기 회사와 함께 개발한 제품입니다. 미국 FDA 승인을 획득했으며 국내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앞두고 있습니다."
루나컵은 수입 완제품이지만 제조사와 협의해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친 한국 브랜드라는 것이 '팩트'다. 프리랜서 애니메이터이던 평범한 40대 여성이 월경컵 회사를 만들기까지, 수십 년간 써온 생리대가 100년이나 썩지 않는다는 기사가 일종의 전환이 되었다. 일회용 생리대를 뒤로 하고 면생리대를 7년간 썼고 월경컵을 쓴 지는 3년인데, 새 세상이 열린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직구(해외 직접 구매)'가 아닌 국내 월경컵 브랜드의 필요성을 깨달은 심 대표가 해외 의료기기 업체들을 리스트업해서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 메일을 보냈고, 답메일을 보낸 캐나다 제조사와 협업하게 된 것이다. '맨 땅에 헤딩' 한다는 게 딱 이런 케이스 아닐까.
"월경컵은 경제성과 건강, 환경적 측면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창업했어요. 다만 부족한 자본과 기술을 채워줄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2017년 봄, 무작정 각국의 월경컵 회사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1년간 샘플을 주고받으며 제품을 개발한 끝에 결실을 맺게 되었어요."
캐나다 업체로서는 한국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셈이고 루나컵은 의료기술을 갖춘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게 되니 타협점을 찾기 어렵지 않았다.
"번역기 사용 노하우가 생길 정도로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리스닝이 안 돼서 통화는 힘들고 텍스트로 주고받아서 기록으로 남기고, 서로 두 번 세 번 확인하면서 진행했기에 착오가 없었어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소통하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첫발을 떼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식약처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생체 적합성을 입증한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동물실험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국내에서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캐나다 제조사가 진행한 것이 맞고, 이에 대해 루나컵 구성원들은 책임감과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앞으로 동물권을 위한 활동에도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다.
한 번도 사업에 뜻이 없었던 4인의 여성들은 심 대표와 포커페이스, 쿠폰요정, 원더우먼으로 일당백의 일꾼들이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을 알고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기도 하다. 창업을 준비하며 사회 문제를 기업의 형태로 해결하고자 하는 루나컵의 지향과도 잘 맞아 떨어져서 사회적기업 육성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업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월경컵이 여성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 거라는 확신으로 모험을 결심했습니다. 1년간 부족한 자본과 처음 겪는 일들로 좌절한 적도 많았지만, 저희를 아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받지 못한 응원과 관심을 받으면서 여성 스타트업의 성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느낍니다. 저희가 수혜를 받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고 보답해야죠."
법인 비용 3천만 원과 지금껏 8천만 원 정도의 자본금이 들어갔는데, 임상실험이라는 변수 앞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다행해 한 발 빠르게 수입과 제조업을 해온 이지앤모어의 페미사이클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임상실험의 관문을 넘었고, 업계 모두가 수혜를 받게 되었다.
월경컵의 대중화라는 목표를 위해
그간 심 대표가 직접 사용하고 비교해본 월경컵의 숫자만 20개에 달한다. 가장 한국여성에게 적합한 형태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입문용으로 적당한 루나컵이 탄생했다. 월경 페스티벌에서 진행한 증정 이벤트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고 유튜버 ''한국여자'의 솔직담백한 리뷰'(
영상 바로가기)는 5만 뷰와 500개의 댓글에서 찬양은 물론 갑론을박도 벌어졌다. 그리고 6월 21일 진행한 월경컵 워크숍은 공지가 나간 후 8분 만에 마감되었고 성황리에 이뤄졌다. 이 모든 일이 한 달 비롯한 기간에 일어난 셈이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월경컵을 체험하고 비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월경교육도 실시할 계획입니다. 월경은 지극히 사적인 일로 치부되지만 여성 모두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여성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월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이 모두가 함께 겪는 일이고, 오랜 세월 월경을 하면서도 내 몸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됩니다. 루나컵은 월경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감춰야할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
민낯으로 인터뷰에 응한 심 대표는, 여성 기업인의 스테레오 타입이 자신으로 인해 조금은 바뀌었으면 하고 바란다. 사업 미팅을 할 때 몇 번이고 대표가 맞는지 묻는 분들도 종종 있었다고. 여성기업 인증을 받으면 운영자금 대출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아직은 부양자가 없는 여성 가장임을 입증해야 해서 루나컵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루나컵 출시를 기다리는 여성들, 그리고 지금껏 함께 해온 4인의 동료가 가장 큰 자산이자 동력이다. 루나컵이 내놓은 업계 최초 '생산자 책임보험'과 '100% 환불정책(루나컵 사용에 실패한 고객이 컵을 가위로 잘라 보내면 전액 환불하는 정책)'은 믿고 써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사용자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생산자가 곧 소비자 입장이기에 가능한 마케팅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마케팅 정책 발표 이후 진심어린 걱정과 조언 역시 쇄도했습니다. 특히 악용될 소지가 있는 '100% 환불' 정책을 철회할 것을 제안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걱정 어린 이야기를 들으며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실천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올해 12월 31일까지 이 정책을 지켜서 더 많은 분들이 월경컵에 도전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직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열악한 상황이지만 성장함에 따라 함께 나누고, 여성이 살기 좋은 세상, 여성이 행복한 일터를 만들 것입니다."
루나컵은 더욱 성장해 캐나다가 아닌 국내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한국 여성에게 더 적합한 월경컵을 직접 생산할 계획도 갖고 있다.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월경에 대해 여성 개개인이 치르는 대가와 고통을 줄이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임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루나컵 홈페이지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