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구세군(김필수 사령관)이 개전 11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영국에 본부를 둔 구세군은 군대식 편제를 사용하는 개신교 교단으로, 군대를 방불케 하는 독특한 용어를 사용한다. '개전'은 선교를 지칭하는 구세군식 표현이고 사관은 개신교 목회자, 가톨릭 사제에 해당한다.
한국구세군 개전 110주년에 발맞춰 구세군 최고 지도자인 안드레 콕스 대장 부부가 지난 22일 방한했다. 콕스 대장의 아내인 실비아 콕스 역시 구세군 사관으로 세계여성사역 총재를 맡고 있다.
콕스 대장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방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콕스 대장은 먼저 "한국구세군은 복음 전파라는 구세군 창립 본연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고 사관들도 열정적이다. 이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칭찬했다.
이어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는데 대해 '큰 희망'을 갖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콕스 대장은 "당장 내일 남북간 장벽이 허물어지면 북한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콕스 대장의 말이다.
"현재 한반도에서 큰 희망을 본다. 난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지녔다. 한국전쟁 이전에 구세군은 북한에서 더 활발히 활동했다. 한편으로는 감동 받았지만 마음이 아팠다. 또 한국인은 아니지만 남북이 분단된 데 마음이 저며오는 아픔을 느낀다. 이런 이유로 최근 남북 긴장완화와 평화무드가 조성되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가졌다. 물론 단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즉각적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대화한다면, 손을 맞잡고 행동해 나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남북은 가까운 미래에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고, 전세계에도 유익을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철의 장막도 걷혔다. 휴전선도 무너질 것"콕스 대장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콕스 대장은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고 털어 놓았다.
"오래 전 내 조국 스위스에서는 오래전부터 북한에 요구르트 공장을 지어준 적이 있었다. (콕스 대장은 영국인 아버지와 스위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짐바브웨에서 태어났다 - 글쓴이) 북한에선 염소젖으로 요구르트를 만드는데 품질이 아주 좋다. 난 요구르트 공장 설립을 위해 두 차례 북한을 찾았다. 북한 아이들의 영양상태는 무척 심각하다. 요구르트 공장을 지어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시 여러모로 제약이 가해졌지만 구세군 사관 제복을 입고 북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북측 인사들은 구세군을 잘 알고 있다. 또 북한에서 많은 구호단체들이 구호활동을 벌이는 광경도 목격했다."
콕스 대장은 특히 북한 지원 활동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콕스 대장은 언제든 북한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을 당부했다.
"한국을 방문해 이곳 구세군 지도자와 만약 북한이 열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 한국구세군, 더 나아가 한국 개신교 교회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강점이 무엇인지 발견해 내는 건 중요하다. 또 한국구세군, 더 나아가 한국교회가 북한과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비롯해 구호단체나 비정부기구(NGO) 등은 언제든 북한에 들어가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를 철저히 하기 바란다. 이건 이념전쟁이 아니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북한을 도울 영역이 수없이 많다. 교회가 바로 이런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만약 한국 구세군이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정말 절실히 필요하는 것을 제공하면서 삶과 행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콕스 대장은 이어 전세계 구세군이 북한을 돕기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하면서 한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만약 북한에서 활동이 가능하다면 한국구세군은 국제구세군의 중심에 서서 북한을 돕는 사역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구세군은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구세군의 자원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 반드시 북한이 열릴 날이 올 것이다. 난 내 생애 유럽에서 철의 장막이 절대 걷히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이처럼 휴전선도 무너져 내리리라 확신한다."회견을 마무리하면서 콕스 대장은 창설 이후 지금까지 구세군이 군대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는 아주 실용적(pragmatic)인 사람이었다. 다만 민주적인 사람은 아니었고, 내가 그와 동시대에 살았다면 그와 일하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윌리엄 부스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는데 교회가 시노드(고위 성직자들의 회의)나 예배로 시간을 낭비하는 걸 원치 않았다. 또 하나의 교단 창설을 목표로 하지도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교회가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파할 것인가 였다. 현재 구세군은 전세계 130개국에서 활동 중인데, 창립자 부스가 이를 보면 놀랄 것이다. 난 사람들이 구세군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엔 관심이 없다. 구세군이 교회인가? 그렇다. 사회복지 기구인가? 그렇다. 비정부 기구인가? 역시 그렇다. 구세군은 사람들이 그 정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할 때 가장 일을 잘 해냈다." 콕스 대장은 기자회견에 앞서 한국개신교 교단 고위직에 있는 인사들과 오찬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유영희 회장, 이홍정 총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이경호 주교, 기독교한국루터회 진영석 총회장, 한국기독교장로회 이재천 총무 등이 참석했다.
이홍정 NCCK 총무는 환영사를 통해 "구세군이 하느님의 평화의 군대로, 한반도의 평화를 경작하는 하느님의 평화의 농부로 발벗고 나서 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콕스 대장은 29일 한국구세군 해외선교 사업지인 몽골과 캄보디아를 둘러보기 위해 현지로 떠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기독교 인터넷 신문 <베리타스>에 동시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