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서 하품을 하다가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하루는 더디고 사람은 어렵고
매일이 똑같다고 느껴져 지치면
그럼 난 조용히 악기를 들고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네
- 좋아서 하는 밴드 <여행의 시작> 노랫말 중에서
정상을 향해 등반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반납 날짜를 정해놓고 달려가는 캠핑카 여행도 아닌 도심을 유유자적 걷는 여행은 그야말로 한량이다. 걷다가 앉았다가 하품하다가 이런저런 생각 하다가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미국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피식 웃는다.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이 동그래지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도 자꾸 생긴다. 그래서 걷고 또 걷는다.
타박타박 걸어서 오늘 마지막 목적지인 센트럴 파크로 향한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아직도 사방은 환했다. 7월의 뉴욕은 밤 9시가 넘어야 어둑어둑해졌다. 지나는 길에 뉴욕커들의 소울 푸드라고 하는 할랄 가이즈가 있었고 저녁 때라서 그런지 늘 그런 건지 푸드 트럭을 향한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대체 할랄 가이즈가 뭐길래 뉴욕하면 항상 같이 나오는 건지 궁금했다. 노란 푸드 트럭을 향해 걷는데 트럭 뒤로 MoMA라고 적힌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여기에 있었구나. MoMA를 보자마자 할랄 가이즈는 그대로 잊혔다. 무슨 음식을 파는지 사진이라도 찍어볼 요량이었는데 그대로 지나쳤다는 걸 글을 쓰는 지금에야 깨달았다. 모마는
외관이 공사중이었는데 가림막조차 세련되어 보였다. 화살표가 저렇게 예쁠 수 있다니. 일체유심조라고, 좋다 좋다 하니까 가림막도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뉴욕은 대형 공사장의 가림막을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에 대한 합당한 대가도 물론 시 예산으로 지불한다고 했다. 덕분에 뉴욕 곳곳에 공공 예술품들이 가득했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같은 유명한 기념물도 있지만 공사장 가림막에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것도 뉴욕을 걷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뉴욕은 도시의 역사가 오래되었다 보니 여기저기 온통 공사판이었다.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또 새로운 빌딩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맨해튼의 마천루는 이런 식으로 1931년에 완공한 102층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시작해서(물론 그 전에도 고층 빌딩은 많이 있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의 세월을 쌓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5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미국은 고작 2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폄하만 할 것이 아니었다. 정치나 경제적인 면에서의 가치 평가는 둘째치고 그 200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맨해튼의 빌딩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홀린 듯이 MoMA를 향해 걸어가니 내가 간 곳은 뒤쪽 출구였다. 그리고 관람 시간은 끝나 있었다. 어차피 이 시간에 입장할 생각도 아니었다. 금요일 오후 4시에 무료 관람이 있기 때문에 그때 먼저 간단히 둘러보고 몇 번쯤 더 관람을 할지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길 건너편에 MoMA Design Store가 있었다. 여행 경비를 줄여 보겠다고 생수와 점심 도시락 그리고 고열량 초코쿠키까지 가방 속에 넣고 다니고 있었지만, 지갑 속에는 백 달러 지폐가 몇 장 있었다. 삼류 소설에 나오는 비루한 1인칭 주인공이 내적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내가 '아트 컬렉터'라니
나는 들어가기 싫은데 내 운동화가 자꾸 들어가자고 했다. 이건 내 운동화 때문이라고 변명을 하고 길을 건넜다. 환하게 불이 켜진 매장 안에 알록달록한 무엇가들이 빛나고 있었다. 밥을 굶어도 노트 한 권과 연필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고 힘차게 문을 열었는데 '덜컹'하고 잠겨 있었다. 미술관 폐관 시간에 맞춰서 함께 닫는 것 같았다. 그제야 'Closed'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분명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다. 외부귀인으로 지름신을 막을 수 있었다. 얼른 발걸음을 돌려 숲으로 향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면서 길을 걷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가 되어서야 센트럴 파크에 도착했다. 공원이 지도에 표시된 그 장소에 잘 있는지 그저 확인하러 온 것뿐이라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다. 공원 입구에 앉아서 땀에 젖어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말리면서 간식으로 지퍼팩에 담아 온 오레오 쿠키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때 웬 멋쟁이 뉴요커 아저씨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건넸다.
"Are you the art collector?" (아트 컬렉터세요?)"Pardon me?" (네?)"Are you the art collector?" (아트 컬렉터로 일하시나요?)"No, I'm just traveler." (아뇨. 전 여행자예요.)마지막에 'Thank you'라고 붙일 뻔했다. 미국에 입국할 때 노란 머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소문을 들어서(물론 농담이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머리 색깔을 노랗게 바꿨다. 마치 앤디 워홀처럼. 다만 눈썹까지 노랗게 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내가 봐도 내가 무서울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아트 컬렉터라니. 만약 내가 YES라고 했다면 그 다음 대화는 뭐였을까? 잠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습을 하고 보니 혼자 오레오 쿠키를 오물거리며 별의별 상상을 다하고 있었다.
센트럴 파크 5번 애비뉴 입구로 들어서자 거기에는 정말로 숲이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봤고 사진으로도 봤지만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맨해튼 빌딩 숲 한가운데에 진짜 나무가 있는 숲이라니. 그리고 그 나무들 너머로 빌딩들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굉장히 이질적이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순식간에 도시에서 자연으로 나의 배경이 바꾸었다. 항공 사진을 봐도 칼로 그어 놓은 것처럼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직접 걸어서 들어오니 그 경계를 보다 확연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뉴욕도 센트럴 파크도 처음인 내가 입을 헤 벌리고 숲길을 걸을 때 뉴욕 시민들은 잔디 밭에 앉아 지는 해를 즐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도심 속에 있다는 것이 정말 부러웠다. 뉴욕의 도시 계획을 맡았던 로버트 모지스에게 시인 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가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똑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고, 뉴욕시는 정말로 이 곳에 거대한 공원을 만든 것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브라이언트의 말이 과장이라 생각했으나 온종일 맨해튼 도심을 헤매고 나니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집과 직장이 맨해튼에 있어서 1년 내내 이 빌딩 숲속에 갇혀서 살아야 한다면 정말로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나를 붙잡은 야경센트럴 파크 초입에서 어정거리는 사이에 어둠이 깔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NYC Ferry는 지하철과 달리 24시간 운행이 아니었다. 해가 늦게 져서 밤 9시가 훌쩍 넘었는지도 모르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지하철까지 거리가 꽤 멀었고, 아직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 본 적이 없어서 밤중에 환승까지 해가며 돌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아직 지하철 패스권을 사지도 않은 터였다.
페리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난데없는 뜀박질이 시작됐다. 걸어 올 때는 몰랐는데 지도에 목적지를 찍고 보니 센트럴 파크에서 East 34번가 페리역까지는 무려 걸어서 40분을 가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10시가 막차였던가 9시 30분이 막차였던가... 일단 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하철을 그냥 타면 됐는데, 그때는 어설프게 지하철 역사에서 헤매다가 괜히 시간이 더 걸리면 곤란할 것 같아서 그냥 뛰었다.
정신없이 달리는 중에도 맨해튼의 야경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특히 크라이슬러 빌딩의 야경은 잠깐 넋을 놓게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낮과 밤이 참 많이 달랐다. 그리고 다른 건 풍경만이 아니었다. 해가 지자 낮에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인도에 걷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스트 강쪽으로 가면 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졌다. 대신 노숙자들이 구석마다 자리를 펼치고 있었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도 들려왔다.
낮부터 맨해튼을 걷는 내내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계속 이어졌었다. 뉴욕엔 항상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정말로 잊을 만하면 들리는 게 사이렌 소리였다. 누군가는 구급차가 많이 다녀서 위험한 도시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반대로 저 사이렌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구 800만의 거대도시에 매일매일 사건사고와 응급환자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그때마다 구급차든 경찰차든 달려와 준다는 것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사이렌 소리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닌 친구에게서 구급차 한번 타면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돈을 줘도 구급차가 안 온다면 그것도 문제 아닐까.
맨해튼의 야경을 뒤로하고 이스트 리버 페리역까지 달려서 도착하니 마지막 배가 남은 시간이었고, 나를 태운 페리는 다시 한번 맨해튼의 멋진 야경을 펼쳐 보이며 이스트 리버를 거슬러 올라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