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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범람하는 스릴러를 읽었다. 덕분에 이 여름에 서늘한 기운을 느꼈지만, 빨리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다. 옳거니, 이럴 땐 이기호다, 하며 그의 신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펼쳤다.

제목부터 이 얼마나 발랄한가. 역시 내 선택이 옳았다고 낄낄거리며 책을 읽다가, 이내 날 덮친 건 부끄러움이다. 잠시 잊었다. 맞다, 그랬다. 웃다 말고 돌아보면 나의 윤리에 대해 질문하는 작가, 이기호였다. 이번 책은 특히 그렇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책표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책표지 ⓒ 문학동네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모든 단편의 제목은 사람의 이름 석 자가 포함되어 있다. 최미진, 나정만, 권순찬, 박창수 등. 성은 달라도 하나같이 내 주변에 있는 이름이다. 굳이 그들을 떠올리진 않았지만, 정확하게 호명된 이름들 덕분에 소설이 내게 더욱 바짝 다가온 기분이다.

첫 번째 실린 <최미진은 어디로>는 경계심일랑 없이 이 소설집에 빠져들게 만든다. 화자는 이기호, 소설가다. 그는 중고나라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소설이 염가에 판매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심지어 다른 책 다섯 권을 구매하면 무료 증정되는 것이 자신의 책이다. 판매자의 설명은 가관이다. "꼴에 저자 사인본"(p10). 작가라면 스릴러 못지않은 오싹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선 웃음이 터질 수밖에. 급기야 이기호는 직거래를 빌미로 판매자를 만나기로 한다. 자신이 왜 모욕을 느끼는지 알지 못한 채. 염가에 팔리고 있는 책의 작가와 그 책의 판매자 '제임스 셔터내려'가 만난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p33)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은 용산 참사를 이야기 한다. 한 소설가가 사건 당일에 갑자기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경찰이 작전 계획을 바꾸게 한 크레인 기사를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기사는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는지부터, 업무의 애로사항, 크레인의 배차 과정 등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쩌다 그 현장에 가지 않게 되었는지도. 그는 인터뷰어인 소설가에게 말한다.

"아까는 나한테 뭐 죄책감을 느끼네 마네 떠들어대더니…… 당신은 그 얘길 왜 쓰려고 하는데? 당신은 죄책감을 느껴? 당신이 뭘 안다고? 당신이 뭘 쓸 수 있다고…… 똥폼은 젠장……"(p59)
"형씨도……그러니까 형씨도 나랑 비슷한 거 아니냐구요.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 아니냐구요. 네? 내 말이 틀렸어요?"(p67)


작가로서의 고민은 특정인의 것이겠지만, 인간의 윤리는 모두의 것일 테다. 함부로 말할 수도 없지만, 함부로 잊어서는 더 안 될 일.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6명이 사망했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분노와 모멸감을 말한다. 권순찬은 억울하게 떼인 돈을 받기 위해 아파트 앞에서 노숙 시위를 한다. 딱한 사정을 들은 동네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권순찬에게 전달하나 거부 당한다. 권순찬은 돈을 가져간 사람에게 되받고 싶을 뿐이건만, 그에게 향했던 연민은 싸늘해지고 호의는 적의로 바뀐다.

"나는 왜 자꾸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가? 나는 왜 자꾸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려 하는가?"(p75)


표제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때로는 생각 없는 호의가 방향을 찾지 못한 분노만큼이나 무책임할 수 있음을 말한다. 친절한 그 오빠는 끝내 뭐가 잘못된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한정희와 나>에서 '나'의 아내는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어머니의 친구 내외 슬하에서 보냈다. 그녀 인생에서 가장 많이 웃고, 가장 많은 사랑을 받으며. 아내가 집으로 돌아가자 '마석 엄마·아빠'는 아내와 닮지 않은 아이, 재경을 입양한다. 재경이 감옥을 드나들고 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자, 초등학교 6학년인 한정희는 '나'의 집으로 오게 되고, 뜻밖의 상황에 부딪힌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p265)
    
연작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와 <오래전 김숙희는>는 환대에 대하여 더욱 깊이 파고든다. 열아홉 살의 김숙희는 서른 살의 착하고 성실한 남자를 만나 그 덕분에 대학을 졸업하고 그와 결혼한다. 좋은 남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지만, 김숙희는 어쩐지 수치심을 느낀다. 이야기는 파국으로 향한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김숙희는 그의 환대가 불편하다. 차라리 생각할 틈이 없도록,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제대로 쉴 수도 없게 만드는 남자가 편할 정도다. 그렇다면 사람을 버겁게 하는 그의 환대란 옳은 것인가. 옳지 못한 것인가. 선의는 나를 위한 것인가, 타인을 위한 것인가.

웃으며 읽다가 몇 번이나 얼어붙었다. 작중 화자들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허물어버리고 어느 새 나는 무장해제도 모자라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속없이 웃다 말고 알량한 내 윤리를 돌아보게 하는 이 소설들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대개의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한다. 선의와 방향이 다른 사랑과 제각각의 이해관계가 얽혀 세계가 복잡해졌을 뿐. 이곳을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의 윤리를 돌아보는 것밖엔 방법이 없으리라. 결국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p313, '이기호의 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문학동네(2018)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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