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직후인 7월 초 경, 공주형무소에 수용된 정치범을 비롯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 600여 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된 뒤 충남 공주시 왕촌 살구쟁이에 암매장 사건이 발생했다. '왕촌 작은 살구쟁이'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은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고 넋을 위로하고 있다.
7일 오전 11시부터 충남 공주시 공주문화원에서 6.25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고인들의 넋을 달래는 13번째 위령제가 열렸다. (사)공주유족회와 공주민주단체협의회, 공주대학교 참여문화연구소 주최로 개최됐다.
'보수 텃밭' 공주시의 첫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인 김정섭 공주시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보도연맹 영상 상영 이후 충남문화연대 윤혜영 외 8명의 진혼굿이 식전 행사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곽정근 공주유족회장을 비롯해 박병수 공주시의회 의장, 이창선 부의장, 이상표 의원, 김동일 충남도의원, 박남식 우금티기념사업회 이사장, 최운주 공주농민회 회장, 지수걸 공주대학교 참여문화연구소 교수, 신경미·정선원 공주민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원효사 혜월 스님과 전국 유족회, 태안, 경북, 대전, 홍성, 청주, 청주, 충주, 충남, 임실, 해남, 창원, 아산 등 유족회장 및 유족들이 참석했다.
곽정근 공주 유족회장은 "1950년 7월 9일 그날도 오늘처럼 강물은 무심히 흘렀고 초여름의 녹음이 짙어만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이 우리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의 날이었다. 혈육이 생사로 갈리는 운명을 안고서도 언제 어디에서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55년이란 세월을 허망하게 살아왔다. 68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면서 유년기에 비운을 맞은 유족 1세대는 70~80세의 노인이 되었다. 공주 유족회는 위령비(탑) 건립을 위해 공주시와 시민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김정섭 공주시장은 "6.25 힘든 시기에 400여 명이 넘은 민간인이 공권력에 의해서 살구쟁이에서 온종일 집단 학살되었다. 죄에 유무를 판정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것을 저는 잘 기억하겠다. 68년 전에 이런 아픔들이 벌어진 것을 잊지 말고 앞으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리고, 중·미, 미·북 정상 회담이 열리면서 북에 있는 미군 유해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주시의회에서는 '공주시 6.25전쟁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저는 시장으로서 법에 근거해서 앞으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기념사업을 벌여나가는데 성의를 다하겠다. 공주시장으로서 민족사회기 비극으로 돌아가신 영령들을 진심으로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빈다"고 안타까워했다.
강병현 전국 유족회장은 "국가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신 영령들께 백만 유족을 대신해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공주유족회는 곽정근 회장을 중심으로 전국 어느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힘을 모으고 실천하고 있다. 공주지역 많은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함께 민간인 희생자의 뜻을 기리는 활동을 하여 충남 NGO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정섭 공주시장이 어려운 자리에 참석하여 유족들에게 용기를 주신 것에 대해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최운주 공주농민회장은 "시민들의 촛불 혁명 이후 민주주의는 한층 더 발전하고, 판문점 선언 등으로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 전쟁 없는 통일로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그 유족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은 올바른 진실 규명과 역사적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왕촌살구쟁이 희생지에 평화공원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추도사를 했다.
공주 왕촌 민간인학살은?
한국전쟁 직후인 7월 초 경, 공주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을 비롯하여 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 600여 명이 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된 뒤 왕촌 살구쟁이에 암매장됐다. 보도연맹이란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고안해 낸 좌익 포섭단체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다. 조직 결성의 대외적인 명목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좌익세력에게 전향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고 조직의 이름도 "보호하여 지도한다"는 뜻의 보도연맹으로 했다.
국민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절대지지, 북괴 정권 절대 반대, 공산주의 배격 봉쇄, 남북로당 폭로 봉쇄 등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다. 외견상 민간단체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실질상 정부기관이었고, 창설목적 역시 좌익세력의 보도라기보다는 민족진영과 같은 반정부세력을 단속, 통제하는데 있었음이 드러났다.
김기진의 책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에 따르면 보련 가입이 거의 강제적이었고 지역별 할당제가 있어 사상범이 아닌 경우에도 등록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연맹원 모집은 주로 좌파경험이 있는 자들이나 사상범(양심수)을 대상으로 했지만, 실제로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쌀, 식량 등의 배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상에 관계없이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등록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2009년도에 학살지 발굴 작업이 벌어지면서 덮어졌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왕촌에서 2009년과 2013년 2회에 걸쳐 397구의 유해 발견됐다. 왕촌에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600여 명의 영혼에 대한 유해발굴작업이 2009년 6월 '왕촌 작은 살구쟁이'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공주유족회, 공주민주단체협의회가 공동으로 '2009 왕촌위령제 및 개토제' 발대식에 이어 유해 발굴 설명회, 추모시, 천도제, 바라춤, 위령제, 개토제, 왕촌 발굴현장 시삽 등을 진행하였다. 왕촌 현장은 2001년 지면으로부터 약 30㎝ 내에서 일부 유골과 탄피가 발견되었고 2006년에도 시민단체들이 첫 위령제를 개최했다. 그리고 2009년 6월부터 발굴 작업에 착수해 8월에 마무리하였다.
발굴 작업 현장에서 진실화해위원회 박선주 충북대 박물관 팀 책임연구원 교수는 "두 손이 머리 뒤쪽 혹은 허리 뒤쪽으로 묶인 채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머리에 총탄을 맞고 죽은 걸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두개골과 뼈들이 구덩이 양쪽으로 질서정연하게 발굴된 점으로 미루어 "저항하지 못하도록 완벽히 제압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두 번 죽여 본 솜씨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이 정도 깊이는 결코 깊지 않으며 추측컨대 시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흙을 덮어놓은 것 같다"고 말해 현장에 있던 교수와 학생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어 유족들과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례를 지냈다. 그리고 대전충남작가회의와 충남민예총은 공주 문화원 입구에서 '우리는 살구쟁이를 알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화전을 가졌다. 다음은 참석한 작가와 제목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김석영, '망월 묘지' 조성국, '시월 열전3' 이중기, '한라의 띠 풀' 이애자, '견 벽 청 야' 울력(공동창작), '대가리' 고희림, '가창골' 송광근, '독수리에게' 김광렬, '꽃그늘로 오시는 임' 김영호, '칠백 열 아홉' 표성배, '악순환' 김규성, '벌초' 김희정, '건너가는 하루' 장자순, '그때나 지금 이나' 김석교, '박산 골짜기' 이규석, '금남로 사랑' 김준태, '양파' 김영란, '편지' 박관서, '노근리 모자 상' 송진권, '그해 봄은' 이태흠, '울컥, 피는 바다' 신기훈, '대전에서' 김경훈, '1950.7. 나비가 되어' 김홍정 작가.
다음은 '다시 살구꽃 피는 마을' 살구쟁이 잠드신 넋을 기리며라는 류지남 대전충남작가회의 전 회장의 글이다.
크낙한 살구나무 근리에 모여 앉아 따수운 마음들 오순도순 나누며 살던 착하고 아음다운 마음이 있었지요 너나 가릴 것 없이 함께 가간했으나 둥글둥글 살아가는 곰강마을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여름 날, 날벼락이 치듯 군인, 경찰, 미군들 승냥이처럼 몰려와 총으로, 군홧발로 으깨어 땅에 묻었지요 노인도 여인도 아이도 어둠에 묻었지요
그러나 어찌 진실을 땅에 묻을 수 있나요 살구씨처럼 세월 견디신 넋들 다시 살아나 총소리에 쇠사슬에 쫓겨 줄행랑을 놓았던 열네 살 벌거숭이처럼 부끄러운 마음들 오늘, 이렇게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나니
저, 질긴 휴전선 철조망도 훌훌 걷어내고 더 이상 미움도 죽임도 없는 싸움도 없는 화해와 상생과 용서가 살구꽃처럼 피어나는 아름답고 황홀한 꿈 상 차려 올리나니 아프고 고운 님들이시어 부디 흠향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