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난 너를 기억해니가 지워버린 날들을 난 지울 수 없었고니가 잊어버린 우리를 난 잊지 못했어나의 몫으로 남겨진 넌 무거운 짐이었지그래도 널 기억하려 해니가 떠나버린 날들을 난 떠날 수 없었고니가 닫아버린 마음을 난 닫지 못했어- 네스티요나, '폭설' 노랫말 중에서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2001년 9월 11일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잔뜩 취한 채 다같이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르며 친구의 하숙집으로 갔다. 잔뜩 취한 건 언제나 그랬지만 왜 그날 내 기숙사가 아닌 친구네 하숙집으로 몰려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래서 더욱 분명하게 18년 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거다. 그 집에는 다른 하숙생들도 많이 살고 있었고, 2층 주택의 계단을 올라가는데 티비였는지 컴퓨터 모니터였는지가 밖에 나와 있었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이었으니까.
내 눈앞에서 처음보는 미국의 고층 빌딩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나는 서울과 인천도 제대로 구별을 못하는 경상도 촌놈이었기 때문에 뉴욕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말고 다른 건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 세계무역센터가 뉴욕에 있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세계무역센터는 사라졌다. 그나저나 세계무역센터는 왜 뉴욕에 있었던 걸까? 세계금융센터도 뉴욕에 있고, 국제연합(UN) 본부도 뉴욕에 있고, 왜 모두 뉴욕에 있는 걸까? 다들 뉴욕을 참 좋아하나보다. 나도 지금 뉴욕에 있으니까.
수많은 '-ism'을 함축한 상징이 부질없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나는 문명의 충돌을 떠올렸다. 헌팅턴이 맞았구나. 그리고 그 선생님이 맞았구나. 고등학교 때 머리가 벗겨지고 키가 작았던, 선택 과목이라 업드려 자는 학생이 더 많았던, 슬픈 일인극 같던 수업을 매번 가득 차게 하고 나가시던 사회문화 선생님은(선생님 성함을 잊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개 밖에 없던 문과반 학생들에게 일년 내내 수업시간마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어서 '책을 읽기는커녕 아무도 듣지 않는 이야기를 매번 왜 하는 걸까?'를 궁금해 했다. 시선은 창밖으로 둔 채 귀로만 들었던 책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다. 그 책을 왜 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두꺼운 하드커버 책이라 갖고 있으면 멋져 보일 것 같아서 샀을 테다.
9.11 메모리얼 파크에 섰을 때 20년이 지난 그때의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른 건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추모공원 폭포 난간 앞에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두 명이 눈물을 훔치며 무어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날의 슬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폭포를 따라 천천히 걷는데 다른 편에서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V가 승리를 상징하는 'Victory'를 의미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을 나이들이었다. 정치나 종교적인 어떤 의미가 아니라 그저 서로 다른 두 개의 다른 장면 때문에 9.11과 관련한 내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상징을 무너뜨리기 위해 실제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를 의미하는 공원이 조성되었다. 그날은 그날로 끝이 났을까? 추모 공원 뒤에는 새로운 세계무역센터가 다시 우뚝 섰다. 프리덤 타워라고도 불리는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1WTC)'가 바로 그것이다.
뉴욕은 9.11 테러를 딛고 일어나 지상 108층, 높이 541미터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세운 것이다. 541미터는 1776피트로 미국이 독립한 해를 의미한다. 이 빌딩을 세우기 위해 32억 달러(약 4조원)가 들어 갔단다. 1WTC는 가장 높은 빌딩이면서도 동시에 최신 재난 방재 기술이 총 동원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빌딩이라고 한다. 그 기술이 어떤 것들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으니 다시는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유의 여신상과 마주하고 있는 1TWC는 별칭 그대로 자유와 승리의 상징이다. 고층 빌딩이 공격받는 테러를 받은 바로 그 자리에 예전의 그것보다 더 높은 빌딩을 세웠으니까. 그리고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자리에 몰려와서 그날을 기억하고 떠올리고 눈물을 흘리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9.11 메모리얼 파크에는 모든 역사와 모든 철학과 모든 감정이 어설프게 하나로 뭉뚱그려지지 않고 각자 자기 모습을 처절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외치는 모든 소리만은 분당 11,400리터의 물을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폭포 소리에 묻혀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모든 외침을 다 받아내고 묵묵히 흘려 보내는 것이 추모 공원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뉴욕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모 공연 주변으로 여전히 많은 빌딩들이 건축 중이었고 건축 현장의 가림막은 늘 그렇듯 눈길을 사로 잡는 예술 작품들이 프린팅 되어 있었다. 'Everyone's different and everyone's the same.' 알록달록 예쁜 그림들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9.11 메모리얼 파크는 서로 다름이 갈등이 되어 이 세계의 한 장면을 찢어버린 곳에서 서로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 모여서 그날을 생각하고 있는 곳이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전세계를 구할 기세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또 다른 자유의 상징이자 뉴욕과 동의어인 그녀, 자유의 여신을 만나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오 나의 여신님을 만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스태튼 아일랜드로 가는 페리를 타고 조금 멀리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는 것이었다. 뉴욕 남쪽에 있는 스태튼 아일랜드 주민들이 맨해튼을 편하게 오갈 수 있도록 무료 페리가 운항 중인데 그걸 타면 자유의 여신상을 스쳐 지나간다. 많은 관광객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이다.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그렇듯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대상이 가진 진짜 아름다움을 다 볼 수 없다. 부산 광안대교가 얼마나 예쁜지 보기 위해서는 광안대교와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야 한다. 차를 타고 광안대교를 지나가면 광안대교를 볼 수 없는게 세상의 이치다. 페리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은 딱 그만큼의 거리였다.
그녀와 나의 거리는 조금 애틋할 만큼만 딱 떨어져 있어서 그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횃불을 든 강철의 여신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그랬다. 신께서 온갖 악행과 불행이 가득한 인간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 이유는 신이 계시는 곳이 하늘에서 내려다 봤을 때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딱 아름답게 보이는 높이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잊혔지만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 말이 자주 마음에 와 닿는다.
스태튼 아일랜드를 타박타박 헤매고 다닐 만한 매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남들이 그렇게 하듯이 하선 후 그대로 돌아서 반대편 배로 승선했다. 남들이 그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걸 테다.
배를 타고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오며 자유의 여신에게 인사하고 뉴욕에 온 지 사흘 만에 지하철을 탔다. 이만하면 충분히 걸었다 싶었고, 머릿속에 있는 뉴욕 지도에 내 위치가 대강 그려지고 안 보고 싶어도 보이는 랜드마크들 덕분에 동서남북의 방향감각도 어느 정도 익힌 다음이었다.
뉴욕과 관련된 글마다 뉴욕 지하철이 얼마나 더러운지 다양한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묘사하고 있었기에 지하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더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파리 지하철도 뉴욕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갔을 때 파리는 마침 파리 지하철의 오명을 벗기 위해 시 당국과 온 시민이 나서서 정비를 한 다음이라 특별히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은근히 기대도 했는데 막상 너무 멀쩡해서 살짝 아쉬웠던 기억도 났다. 두려움은 설렘과 언제나 궤를 같이 하는 말이다. 뉴욕 지하철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자동판매기에서 1주일 무제한 메트로 패스를 사서 선로로 내려왔지만 조금 덥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고약한 냄새가 난다거나 무시무시한 왕쥐가 다니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계에서 지하철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세련된 내부 시설이 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맨해튼 중심부나 브룩클린, 아스토리아에서도 악명 높은 뉴욕 지하철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었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작년에 뉴욕 지하철에 대해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0억 달러를 투자하여 지하철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1년 만에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지하철 뿐만 아니라 시내버스와 페리 등 모든 대중교통은 충분히 쾌적하니까 뉴욕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은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겠다.
물론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은 지옥철로 바뀌는데 그것은 사람 탓이지 지하철 탓은 아니다. 분명히 지하철 선로에서 왕쥐를 봤다면 기겁을 하고 도망갔을 텐데 영화 속에 나오는 무서운 뉴욕 지하철을 이제 탈 수 없다고 하니 살짝 아쉬웠다. 물론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는 소리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