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이자 민주화운동가 출신인 대통령과 변호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대통령이 만났다.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15년 만에 싱가포르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오전 10시 20분(현지 시각) 변호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인 할리마 야콥((Halimah Yacob, 64) 대통령이 주최한 공식환영식에 참석하고, 환영식이 끝난 뒤에는 30분간 할리마 대통령을 면담했다. 환영식은 대통령궁인 이스타나 대정원에서 열렸다.
할리마 대통령은 싱가포르의 첫 여성대통령이자 47년 만의 소수인종(말레이계) 출신 대통령이다.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싱가포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다인종국가인 싱가포르의 사회적 통합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할리마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할리마 대통령은 국회에 입성하기 전에는 변호사와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며 저임금 노동자, 여성과 아동의 권리 신장 등을 위해 헌신해왔다. 문 대통령도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노동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싱가포르국립대 법학과를 졸업한 할리마 대통령은 싱가포르노동조합연맹(NTUC) 법률전문가와 사무총장보를 지냈고, 지난 20001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3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동안 지역개발청소년체육부 국무장관과 사회가족개발부 국무장관, 국회의장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대통령으로 재직해왔다.
청와대는 "변호사이자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국무장관 재직중에도 HDB 아파트(국민주택)에 거주하는 등 검소한 생활로 존경받았다"라고 전했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싱가포르는 행정수반인 총리가 정치와 행정 등 국정을 전반적으로 운영하고,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주요 공직자 임명 동의권과 거부권, 국고 사용 동의권 등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국가통합의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할리마 대통령 "한-아세안 협력을 함께 증진하자"공식환영식이 끝난 뒤 할리마 대통령과 30분간 면담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양국이 1975년 수교 이래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 역내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협력과 심화.발전시켜왔다"라고 평가하면서 양국관계 발전 방안과 한-아세안(ASEAN) 협력 방안, 한반도 정세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2005년 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초로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싱가포르는 아세안 국가 중 우리의 2위 교역국이자 1위의 한국 투자국으로 양국 간 견실한 경제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수한 기술력과 인적자원을 잘 접목해 첨단제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핀테크, 바이오·의료 등의 첨단 분야에서 공동연구와 기술·경험 공유 등 협력을 확대하자"라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가 올해 아세안 의장국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싱가포르와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한-아세안 협력을 실질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할리마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신남방정책을 높이 평가하면서 "싱가포르가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 추진 중인 사업과 신남방정책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모색해 한-아세안 협력을 함께 증진해 가자"라고 화답했다.
할리마 대통령이 언급한 '싱가포르가 아세안 의장국으로 추진중인 사업'은 아세안 스마트시티 네트워크 구축사업과 아세안 사이버안보센터 구축사업을 가리킨다. 전자는 아세안 10개국 26개 도시와 역외국가를 엮어 각국이 해당도시의 스마티시티 구축을 지원하는 사업이고, 후자는 역외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아세안 국가의 정보보호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센터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가 한 달 전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향한 여정에 큰 공헌을 해주었다"라고 감사인사를 건넸고, 할리마 대통령은 "싱가포르가 앞으로도 계속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등) 한국 정부의 노력을 적극 지지하고 협조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