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사람, 특히 여성과 소수자는 때로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이대로 좁은 원룸에서 평생을 살아갈 생각을 하면 답답하고, 임대주택 청약 조건마다 '신혼부부'가 우대 조건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볼 때 절망합니다. 왜 주거정책은 모든 사람을 4인 정상가족의 (예비) 일원으로 취급할까요? 현재 주거정책의 사각지대는 어디인지, 평등하고 안전한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위한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청년들의 시각에서 알아봅니다. -기자말"샤워라도 하고 있어 벨소리를 못들었다면... 끔찍"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원룸에서 자취를 하는 대학생 A씨는 요즘 불안하다. 집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가 왔는데 집주인이 세를 올린다고 해서 새롭게 방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계약 만기일까지는 두 달이나 넘게 남았지만 집주인은 지금이 성수기라서 부동산에 빨리 방을 내놓아야 한다며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별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고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 뒤로 A씨는 집에 있는 동안 항상 불안하다고 한다. 집주인과 부동산이 집 비밀번호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나의 집에 들어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관문에는 이중 잠금장치도 없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밤마다 비밀번호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도 했다.
A씨는 "어느 날은 아침에 늦잠을 자고 있었는데 초인종 소리가 났다. 잠결에 일어나 누구냐고 했더니 집을 보러 왔다고 했다. 방은 미처 정리하지 못했고 속옷도 널브러져 있는 상황이었다"라며 곤혹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샤워라도 하고 있었으면 벨 소리를 듣지 못했을 거고, (낯선 사람들이)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다"라고 밝혔다.
누군가가 나의 집 비밀번호를 알고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다면 불안해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전적으로 관계자들을 신뢰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외국에도 집 보러 오는 문화가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일어날까. 다른 나라의 부동산 거래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외국에서 집을 구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보기로 했다. 일본에서 6년째 살고 있는 한국출신 유학생 J씨와 독일에서 집을 구해본 경험이 있는 독일인 M씨와 인터뷰를 해 보았다.
- 안녕하세요, 여성가족부 청년정책참여단입니다. 외국에서 방을 구할 때와 부동산의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한국에서는 계약 만기 전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비밀번호를 집주인과 부동산에 알려주거나, 직접 집 안을 보러옵니다.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그러나요? J씨 : "일본에서 그런 경험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 다음 세입자는 어디까지나 집주인 혹은 부동산이 관리할 사항이고, 계약 기간을 초과하지 않는 이상 그러한 요구는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M씨 :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으므로,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나간 후에 방을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허락한다면, 그 사람이 있을 때 함께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 보통 계약이 만료되기 전 집을 나와야 한다면 그다음 세입자가 들어와야 방을 뺄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나요?J씨 : "일본의 경우, 계약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2년 계약 시 입주 6개월 후부터는 약 2개월 전에 미리 집주인 혹은 부동산에 통보 시 언제든지 계약을 중도해지하고 퇴실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부동산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고, 단지 퇴실 절차의 하나인 청소 비용 등이 보증금에서 차감되는 경우는 있습니다."
M씨 : "독일도 같습니다만, 사는 기간의 최저 기간이 없는 유형의 계약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보통 이사하기 3개월 전에 집주인에게 연락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집을 구할 때 내부 실물을 볼 수 없지 않나요?J씨 : "아니오, 비어있는 집을 보고 판단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일본의 경우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의 방을 예약하는 식의 임대차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무조건 전 임대인이 나가고 청소 작업 후, 공실 상태에서 다음 임대인이 방을 둘러보고 계약할 수 있게끔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집주인의 경우 공실 기간 동안 약간의 손해는 감수하게 되어 있고, 만일 공실 기간을 최소화하고 싶다고 해도 어쨌든 빈방을 임대인에게 깨끗한 상태로 보여줄 의무는 지켜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M씨 : "빈방을 보거나 협의를 통해 보통 (내부 실물을 둘러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집주인이나 부동산에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J씨 : "저는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법률 조항을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만 굳이 외국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현재 계약 기간을 성실히 이행 중인 임차인의 집을, 계약 후 임대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타인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자 사회 문제이며, 좋지 못한 관습이라고 생각합니다."
M씨 : "저는 가족과 살던 집을 매각할 때 부동산에 열쇠를 맡기고, 모든 것을 일임했습니다만 그것은 그 집에 이제 아무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면, 제가 집에 있을 때 누구도 들어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반대합니다."
법과 동떨어진 현실, 이건 잘못됐습니다
J씨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문화가 있는 일본의 경우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안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이라도 시간을 두고 통보한다면 불편함 없이 방을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경우 살고 있는 사람과 협의를 통해 방을 볼 수 있는 등 비슷한 점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존 세입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형법 319조 1항·2항인 '주거침입죄·퇴거불응죄'에 의하면, 주거는 개인의 사생활 장소이기 때문에 헌법상으로 주거의 불가침을 보장받는다. 아무리 집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세입자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방을 들어오는 행위는 주거 침입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또 민법 제652조인 '임차인의 의사에 반하는 보존행위와 해지권'에 의하면, 임대인이 임차인의 의사에 반하여 보존행위를 하는 경우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따라서 집주인에게 비상열쇠의 반환을 요구했을 때, 반환을 거부하면 계약 해지와 동시에 이사 비용 등을 청구할 수 있고,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법에 의하면 집주인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줄 의무도 없고 들어오지 못하게 해도 상관이 없다. 찝찝하면서도 쉽게 비밀번호를 넘겨주는 임차인들이 많은 이유는 집주인이 '갑'인 사회적 통념 때문이다. 또, 사회초년생들의 경우에는 부동산거래에 익숙하지 않아서 '다음 세입자가 보려면 집 열쇠를 맡겨야 한다'고 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2015년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대학생 원룸 실태조사'에 의하면,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세입자 권리 확보를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이유로는 54.1%가 '알지 못해서', 16.5%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12.2%가 '귀찮아서'라고 응답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거나 커뮤니티에 유사 사례들을 찾아보면 임차인에게 '이기적이고 갑갑하게 군다', '통념상 그래왔으니 그냥 양해해 주는 게 서로 편하다', '집주인 입장이 되어봐라'라고 하는 댓글들이 많다. 다음 사람이 들어와야 보증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집주인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세입자가 협조해야 할 일은 아니다. 애초에 다음 세입자가 없으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처럼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내부 공개 없이 방을 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계약 만기가 다가온다고 해서 명시된 기간 동안의 자신의 주거 공간에 대한 독립권을 침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해를 구하고 협의를 한다고 해도 그 기준들이 모두 다르고 모호하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 또한 사회적 주거 문제로 고민해봐야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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