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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비혼, 돌아온 비혼, 자발적 비혼 등 비혼들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비혼’이라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조금 더 또렷하고 친절하게 비혼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친구는 점심 약속 장소에 김치통을 들고 나타났다. 나를 만나기 전, 문화센터 요리교실에서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를 실습한 거라고 했다. 김치통 같은 걸 들고 다닌 적이 없는 친구라 난 좀 뜨악했는데, 친구는 몹시 뿌듯한 얼굴이었다. 점심 첫술을 뜨자마자 친구는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나 이번 육아휴직 끝나면 회사 그만두려고."

마치 선언 같았다. 20년 넘게 다닌 회사라 고민을 많이 하더니, 복귀를 앞두고는 부담이 많이 됐던 모양이다.

"왜? 아이 때문에?"

종종 워킹맘의 고충에 대해 듣기도 했고, 어쩐지 친구의 경력이 아깝기도 해서 물었다.

"아이도 아이지만 첫째는 나 때문이야. 이제 새 업무에 적응할 자신이 없어. 그렇다고 경험과 연륜으로 일할 수 있는 필드는 제한적이고."

사실 친구는 마흔 한 살에 결혼해 마흔 두 살에 첫 아이를 낳고 바로 뇌종양에 걸린 전력이 있다. 출산을 하자마자 뇌종양 수술을 받았으니 혹독한 투병기간을 거쳐야 했다. 정신과 몸이 온전한 상태로 회복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꼬박 필요했고, 그동안 제대로 육아를 하기란 불가능했다.

20년 넘게 다닌 회사, 그만둔다는 친구

 친구의 퇴사 결심. 기왕 결심한 거, 훌훌 털고 그 길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했다.
친구의 퇴사 결심. 기왕 결심한 거, 훌훌 털고 그 길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했다. ⓒ Pixabay

육아휴직과 병가를 번갈아 내면서 1년 반 정도를 쉬었을까. 이제 나가도 되겠다 싶어서 복직을 신청했는데, 그 이후는 더 혹독했다. 휴직하기 전에 일하던 곳이 아닌 전혀 새로운 부서에 발령받는 바람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도 일도 낯선 상황에서 친구는 아무리 해도 머리가 예전처럼 안 돌아간다는 푸념을 종종 했다. 결국 속도가 느려지고, 그 느려진 속도를 메우려면 주말 근무까지 감수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선 버거운 상황일 수밖에.

그럼에도 나라를 구하겠다 싶은 수준의 맘 고생 몸 고생을 견디며 버티다가 결국 친구는 다시 육아휴직을 냈고, 곧 복귀를 앞둔 터였다. 또 죽어라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 머리도 체력도 열정도 예전 같지 않은 상태라는 걸,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일. 그래도 혹시나 싶어 질척거리며 떠보았다.

"그래도 아쉽지 않아?"
"당연히 아쉽지. 그래도 20대부터 청춘을 바친 곳인데."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겠어?"


내 질문에 친구는 쿨하게 대답한다.

"사실 하고 싶은 거 다 했어. 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고 놀기도 재밌게 놀았고. 이제 그만하면 됐다 싶어."

더 이상 미련도 여한도 없다는 친구의 말에 깨끗이 승복했다. 또 다시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 마음이 충분히 공감되서 그냥 "그래그래" 해주었다. 그동안 친구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왔는지 잘 안다. 친구지만 기꺼이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훌륭하게 자신의 몫을 잘해낸 친구.

그렇게 오랫동안 일군 것들을 접고 퇴장을 결심한 친구를 보자니 오래된 좋은 동료 하나를 잃은 것처럼 서운하고 속상했다. 한편으론, 베개에 머리만 대면 5초 안에 잠드는 친구가 며칠 밤을 샜다는 말에 그간의 고뇌가 헤아려져서, 김치통을 들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봐주었다. 기왕 결심한 거, 훌훌 털고 그 길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게 전과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건, 좀 고약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시간에 따른 변화에 순응하며 살고자 하지만, 결혼과 출산, 양육으로 인해 쌓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떠나는 여성 동료들을 보는 건 다른 결로 곤혹스럽다.

내 또래의 여성 동료들을 찾기 힘든 것에 익숙해졌는데, 친구와 헤어진 그날은 어쩐지 살아남아도 하나도 기쁘지 않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생존인 듯 생존 아닌 생존 같은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힘껏 응원합니다, 퇴장했거나 견디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

 드라마 공부를 하다가 라디오 작가 쪽은 처음 한다는 그녀의 말에 귀가 번쩍했다. 마흔 넘어서 뒤늦게 방송작가 계에 입문해 좌충우돌했던 경험이 세포마다 살아나서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드라마 공부를 하다가 라디오 작가 쪽은 처음 한다는 그녀의 말에 귀가 번쩍했다. 마흔 넘어서 뒤늦게 방송작가 계에 입문해 좌충우돌했던 경험이 세포마다 살아나서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 Pixabay

얼마 전, 새로 일하게 된 방송국에 일이 있어서 나갔다. 주말이라 텅텅 빈 사무실에서 한 작가가 혼자 일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알고 보니 함께 일했던 PD가 겹쳤다. 공통분모가 생기자 이야기가 술술 풀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애환이 쏟아진다.

드라마 공부를 하다가 라디오 작가 쪽은 처음 한다는 그녀의 말에 귀가 번쩍했다. 나 역시 마흔 넘어서 뒤늦게 방송작가 계에 입문해 좌충우돌했던 경험이 세포마다 살아나서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출발과 새로운 일에 대한 적응의 부담감 등등.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와 준 그녀가 소중하고 반가웠다.

그 이후로 우리는 주말이면 만나 수다를 떤다. 어쩌면 산다는 건, 이런 밀물과 썰물의 연속이구나 싶다. 하나둘씩 떠나는 여성 동료들을 보내는 마음은 쓸쓸하지만, 어느새 새롭게 다가오는 또 다른 동료를 만나는 기쁨도 존재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다짐한다. 비록 업데이트 속도가 느린 구형 핸드폰 같아도 나는 이 서바이벌 게임에서 오래오래 버티겠노라고. 그래서 누군가 이 자리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 누구 없소?" 하고 찾을 때 금세 찾아지고 돕는 동료가 되고 싶다.

지금 내가 절실하게 바라는 그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바로 내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되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힘껏 응원한다. 자기 몫을 다하다가 퇴장한 그녀들도, 또 지금도 잘 버텨주고 있는 나를 비롯한 또 다른 그녀들도.


#비혼일기#점점 사라지는 여성 동료#서바이벌 게임#비혼#워킹맘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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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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