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려 조선왕조궁중음식 보유자(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는 조선시대 궁중음식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황혜성 선생의 딸로서 그에게 궁중음식은 숙명과 같은 것이다.
자칫 사라질 뻔했던 궁중음식은 조선시대 마지막 주방 상궁 한희순(제1대 기능보유자, 1889~1971), 황혜성(제2대 기능보유자, 1920~2006)씨를 거쳐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드라마 대장금 등을 통해 궁중음식 보존과 계승에 앞장서온 한복려 이사장은 얼마 전 궁중음식 이수·전수자 20여 명과 함께 <수라일기>(전 2권)를 냈다.
'수라일기'는 1795년에 조선 22대 왕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벌이기 위해 화성에 다녀온 여드레 동안의 과정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권4 찬품 편 중 음식 부분을 정리한 책이다.
한 이사장은 "우리나라 의궤(儀軌 조선시대 국가 중요 행사를 그림을 첨부해 기록한 책)에 의하면 잔치음식에 대한 기록은 많은데 매일 먹는 일상음식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며 "그런데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보면 그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누군가가 한 번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의궤에서 혜경궁이 8일간 받았다고 나오는 315가지 음식을 모두 재현하고 조리법을 공개했다. 당시 가장 귀하고 비싼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의궤에는 각 음식을 만드는 비용도 함께 나오는데 가장 비싼 음식으로 약과를 소개하고 있다. 혜경궁의 화성 회갑연 찬안(饌案, 임금에게 바치던 음식 또는 그 음식상)에 보면 당시 약과 비용으로 30냥(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10만 원)이 들었다고 한다.
한 이사장은 "의궤를 보면 당시에 어떤 음식이 구하기 어려웠는지 알 수 있다"며 "약과의 경우 꿀을 발라 기름에 튀겨야 하는데 당시 기름이 귀했기 때문에 비쌌던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또 한 이사장은 올해 4월 궁중음식 연구의 토대를 정립하기 위해 궁중음식문화재단을 만들었다. 한평생 궁중음식과 함께해 온 한 이사장의 마지막 바람은 궁중食문화를 한곳에서 보고 즐길 수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궁중음식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7월 18일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 궁중음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저희 윗대에서 어머니 되시는 황혜성 선생님, 그 윗대에 한희순이라는 궁중의 상궁께서 계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공부하시면서 '궁중 음식이 우리나라의 최고의 음식이구나'라고 생각해서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기자 그것을 무형문화재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죠. 그 기능보유자로 조선왕조 마지막 상궁을 1대 기능보유자로 정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 스무 살 조금 넘었을 때였는데 저를 전수자로 지정해 그때부터 궁중음식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 궁중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어요. 남북교류가 단절되고 50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남쪽의 음식 중 무엇인가 북한에 선보여야 했는데 그때 궁중음식을 하기로 하고 20명 단원을 꾸려서 평양에 가서 그들에게 음식을 선보였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또 한류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대중적으로 궁중음식을 알릴 기회를 얻게 됐고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에 <수라일기>를 출간했는데 어떤 책인가요?"정조 시대인 1795년에 그 당시에 정조의 어머니(혜경궁 홍씨) 회갑을 맞아 아버지(사도세자)가 계신 묘소에 가서 어머니의 회갑상을 차려주기로 하고 8일의 일정으로 화성에 갔다 와요. 이때 매일같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먹었던 식단을 정리해 놓은 것이 있어요. 거기에는 상차림부터 음식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책으로 만들었어요. 이야깃거리로도 만들고 요리책처럼 만들었습니다.
- <수라일기>를 쓰게 된 이유가 있다면?"(조선시대 전통음식에 대해) 뭔가 지금 한번 정리를 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정통성을 가지고 끌고 왔던 음식문화가 앞으로 전통을 더 잘 지켜 나가려면 모델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이 <원행을묘정리의궤>라고 생각해 이 의궤를 중심으로 책을 쓰게 됐습니다."
- <수라일기>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돼 있나요?"혜경궁 홍씨의 수라상을 근본으로 했어요. 그 이유는 정조는 본인 것은 '줄여서 해라 줄여서 해라'라고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 것은 효의 정신으로 최대한 잘해 드렸습니다. 또 그 책(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갔던 사람의 신분에 따라서 춤추는 사람, 글 쓰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의 식사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신분별 상차림이 뚜렷이 나타나고 그것은 낮춰본다는 것보다 많은 사람의 식사를 어떻게 해야 편리하게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아랫사람의 경우는 밥상을 일일이 차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같이 먹게 하는 거죠. 열 사람이 한 동이에다 넣고 자기 그릇에 덜어 먹는 거죠. 음식의 경우도 빨리 먹을 수 있는 국밥같은 것을 했었죠. 그것도 안 되는 군인의 경우에는 밥을 못 주고 떡을 줬었죠.
이런 다양한 음식의 내용이 <수라일기>에 담겨 있습니다."
- <수라일기>가 기존 조선시대 음식을 다룬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우리나라 의궤 중에는 잔치에 대한 음식 기록은 많아요. 그런데 매일같이 반복해서 먹는 일상 음식에 대한 기록은 적단 말이죠. 요즘 시대가 바라는 것은 잔치보다는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밥상을 어떻게 먹느냐는 것이 중요해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중심으로 당시의 음식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요리법으로 만든 것이죠."
- 조선시대 음식의 특징이 있다면?"당시에는 지금처럼 조미료, 양념을 많이 넣고 화려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담백하게 장, 발효 음식 등을 이용한 요리가 많이 나타나고 또 하나하나의 음식보다는 식단 구성을 어떻게 했느냐. 한 상에서 이것이 완벽하게 건강을 위한 음식으로 만들어졌느냐에 대해서 조금 더 치중했다고 볼 수가 있어요."
- 내용 중 재미있는 것 하나만 소개한다면?"그 당시에 얼마만큼 비용을 썼을 때 무엇이 가장 돈이 많이 들었을까. 가격이 나온 것을 보면 어떤 재료가 구하기 어렵고 귀한 음식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잔칫상의 약과가 가장 비싼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기름에다가 꿀을 넣고 반죽을 해서 기름에다 튀기려면 (참)기름값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약과 값이 아주 비싸게 들었습니다."
- 궁중음식문화재단을 설립했는데 이유가 있다면?"제가 없어지면 궁중음식이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죠. 그래서 궁중음식의 기틀을 마련해 앞으로 한국 최고의 자랑이 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앞으로 재단을 중심으로 궁중음식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을 벌여갈 생각입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전문성을 가지고 궁중음식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이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궁박물관, 궁중박물관은 있지만 궁중食문화 쪽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크지 않아도 되거든요. 한국의 궁중음식은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장소가 궁 안에 혹은 궁 있는 동네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PN문화재TV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