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들을 쏟아내고 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이 논의되었다는 사실은 국방부 내부 문건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뿐 아니라 기무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통화를 감청했고, 민간인 수백만 명을 사찰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이 폭로들이 사실이라면 기무사는 대북 방첩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등진 채 엉뚱한 이들을 적으로 간주한 셈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한 보도를 접하고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지난 7월 31일 오전 자유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이야기하는 시민단체 소장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저격했다(임태훈 소장은 지난 2000년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다).
심지어 김 원내대표는 임 소장이 화장을 많이 했다는 것을 문제거리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개인의 성 정체성이나 화장 여부는 군 개혁 문제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 '남성이 화장을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 역시 오랜 맨박스(남성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증거다. 남성이 화장을 할 수 있고,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칭 '애국보수' 정당의 민낯'메시지' 그 자체보다 '메신저'를 공격하는 태도, 즉 개혁을 시도하는 인물에게 흠집을 내서 개혁의 명분을 훼손하려는 시도 자체는 놀랍지 않다. 또한 자유한국당이 늘 사회적 소수자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는 것 역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모두의 예상을 넘어선 수준이다.
많은 국군 장병들이 보고 체계를 통해 해결하지 못 하는 답답함을 군인권센터에 호소해왔다. 군인권센터는 그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사건들을 세상에 알리고, 피해 장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 왔다. 제28사단 의무병 살인 사건(윤일병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박찬주 대장 부부의 갑질 사건을 세상에 알려 공관병을 폐지하는 데에 공헌한 것 역시 군인권센터다. 그러나 '애국 보수'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은 군 집단의 전근대성과 인권 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
더불어 성소수자를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자'로 뭉뚱그리고, '군 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는 2등 시민'으로 비하한 김성태 원내대표의 가치관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참고로, 주한 미8군 부사령관은 레즈비언 여성인 태미 스미스 준장이다. 미국 22대 육군 장관인 에릭 패닝은 커밍아웃한 게이로 유명하다. 이들이 LGBT(성소수자)에 해당한다고 해서 업무 수행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세계적인 추세를 준거점에 두고 보았을 때,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은 엄연한 혐오 발언에 해당한다.
김성태 원내대표의 발언 이후 각계에서 비난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대변인은 '터무니 없고 황당한 주장으로 본질을 흐리는 것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정의당 역시 정치적인 목적으로 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행태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사자인 임태훈 소장은 박주민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한국당이 내란범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강력하게 대응했다.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은 고개를 굽히지 않을 기세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김 원내대표의 발언을 '소신 발언'이라고 두둔하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홍지만 대변인은 "전쟁을 대비하는 위험에 가득찬 군대를 성 정체성과 관련된 시각으로 재단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홍 대변인의 이 논평 역시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의 눈치를 볼 줄 모른다면...
세상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영국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의 행보를 잘 살펴 보길 바란다. 보리스 존슨은 2000년대 초반 '동성 결혼이 허용된다면 사람 세 명과 개 한 마리가 결혼하는 것도 합법화되어야 한다'는 혐오 발언을 했던 바 있다. 그러나 보리스 존슨은 10년 후, 태도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깃발을 들었고, 소수자 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물론 보리스 존슨은 인종 차별, 성 차별적 발언으로 여러 차례 입방아에 오른 인물이다. '진정성 없이 말 바꾸기를 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존슨이 최소한 변화하는 시대의 눈치를 보았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어떤가. 담론의 확대는커녕 '혐오의 확대'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정치 집단은 자신들의 발화가 왜 문제가 되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있으며, 변화에 대한 의지 역시 없다. 시대와 발맞추는 일을 계속 거부한다면, 이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