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세력은 그 속성상 평소 진보세력보다 '젠틀'하지만, 기득권을 뺏길 위기에 처하면 때때로 맞지 않는 주장을 내뱉으며 생존을 도모하기도 한다. 간혹 과도기 체제 속에서 보수세력은 혹세무민을 선도하기도 한다.
송나라(북송) 신종 황제가 개혁파 왕안석(1021~1086년)을 내세워 서민주의 개혁을 추진할 때였다. <자치통감>의 저자로도 유명한 사마광 같은 보수세력이 기득권을 지키고자 내뱉은 막말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들은 평소의 점잖음을 내버리고 혹세무민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신종과 왕안석이 추진한 개혁 중 하나가 청묘법이다. 봄이나 가을에 저리로 쌀을 빌려준 다음, 가을이나 이듬해 봄에 되돌려 받는 제도다. 정부에 비축된 쌀을 빌려주는 것이므로 정부가 내주는 쌀은 당연히 묵은 쌀이고, 농민이 수확을 마친 뒤에 갚게 되므로 정부가 받는 쌀은 당연히 새 쌀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사마광은 '정부가 묵은 쌀을 주고 새 쌀을 받는다'며 비판했다. 송나라 역사서 <송사>의 경제 파트인 '식화지'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청묘법은 강제로 빌려주고 무겁게 거두는 제도로서, 묵은 쌀을 빌려주고 햅쌀을 받는 제도다."
복지정책 확산을 저지할 목적으로 보수세력은 이렇게까지 혹세무민을 했던 셈이다. 보수세력은 이렇게 기득권이 위험해지면 엉뚱해지기도 한다.
보수세력의 현실 보여준 황당한 기사
한국 보수세력도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김민석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의 '김민석의 Mr.밀리터리| 기무사 문건과 국방개력... 군 불신 속에 어디까지 추락하나' (인터넷판 제목 : 참모 무시한 히틀러, 군대 못믿는 문 정부...결과는 추락뿐이다) 8월 3일자 <중앙일보> 기사다.
이 기사는 관련 없는 역사적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국방 개혁과 기무사 계엄령 문건 처리 과정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기득권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보수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사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국방부 대변인(2010-2016)을 지낸 김민석 논설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군대에 대한 불신과 국론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청나라와 독일의 패전을 지금의 한국 상황에 빗대었다.
국방부 대변인이 되기 전에 군사전문기자였던 그는 이 기사에서 "나라의 운명은 목숨을 던진 군인의 희생으로 구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군인 정신이 투철하지 않거나 군대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나라를 망가뜨린 역사도 있다"면서 "우리 군이 요즘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군대에 대한 불신이 커서다"라고 말한 뒤,1894년 청일전쟁 때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 전투에서 패한 청나라군 지휘관 예즈차오는 압도적인 승리로 포장해 허위 보고한 뒤 평양으로 철수했다. 청나라군은 9월 중순 평양에서 다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청나라의 근간이었던 팔기군의 군기가 와해되고 부패한 결과다. ······ 청나라군 지휘관들의 허위보고, 잘못된 판단, 전투의지 결여로 청나라는 망국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김민석 논설위원은 청나라가 군대기강 문란 때문에 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독자들이 이것을 문재인 정부의 운명과 연관 지을 수 있도록 하고자, 기사 끝부분에서 "군의 사기를 꺾고 군비를 소홀히 하는 것은 유사시 국민의 자유와 생명의 희생을 예약하는 것"이라는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의 말을 인용한 뒤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 군이 19세기말 청나라군이나 히틀러 시대 독일군처럼 추락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 논설위원은 청일전쟁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길하다'는 엄청난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는 데 있다. 제시된 근거가 주제와 맞지도 않을 뿐더러,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부주의나 고의에 의한 오류가 보인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한 진짜 이유 청일전쟁의 승부는 두 나라가 오랫동안 양성한 최정예 해군간의 대결에 의해 판가름 났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군대의 주력은 육군이었다. 그러다가 서양열강이 해군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아프리카를 침략하는 걸 보면서, 청나라와 일본은 서구식 해군 개혁에 착수했다.
그 국방개혁의 성적표가 바로 청일전쟁 결과다. 어느 쪽의 해군 개혁이 더 철저했느냐에 의해 승부가 판가름 났다. 상대적으로 우세한 일본 해군이 청나라 정예해군인 북양해군을 궤멸시키면서 이 전쟁은 막을 내렸다. 김지훈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발표문과 이창순·김민배·문창극·남재희·이성춘·이종식·신용석·도준호의 토론 내용을 함께 수록한 '중국에서 본 청일전쟁'이란 글은 이렇게 말한다.
"청나라는 지속적으로 해군 건설에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됩니다. ······ 일본이 1874년 대만에 개입하자, 청나라가 자극받아 북양해군을 건설한 것입니다. ······ 일본도 북양해군에 대응하는 해군 군비 증강을 하게 됩니다. 반면 북양해군은 더 증강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새로운 군함 구입이 중단되었고 이것이 청일전쟁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2012년 9월 발행된 <관훈저널> 중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 승부를 결정하는 최대 요인은 화력(火力)이다. 이 화력을 갖추기 위한 대결에서 청나라는 일본에 졌다. 해군력이 곧 군대의 역량이 된 19세기 후반에 청나라는 해군력 증강을 위한 국방개혁에서 일본에 뒤쳐졌다. 그것이 청일전쟁의 결과로 나타났다.
김민석 논설위원은 군사전문기자와 국방부 대변인을 지냈다. 그런 전문가가 청일전쟁을 좌우한 핵심 요인이 해군력 증강 국방개혁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몰랐다면 처음부터 그런 기사를 쓰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이 되고, 알고도 그렇게 했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방 개혁을 저지하려는 조급함이 앞선 결과였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김민석 논설위원의 말대로, 개별 전투에서 나타나는 지휘관의 잘잘못이 승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지휘관의 허위보고나 기강 문란은 패전국뿐 아니라 승전국 군대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기원전 109년에 한나라 무제(한무제)는 위만 고조선을 침공하여 1년 만에 항복을 받았다. 전쟁 중에 한나라군 진영은 적전 분열을 보였다. 순체 장군은 공격을 서두르고, 양복 장군은 협상에 미련을 뒀다. 이 상태에서 한무제가 특사 공손수를 파견했다. 현장 지휘관들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체는 공손수와 손잡고 양복을 구금했다. 이를 문제 삼아 한무제는 양복·순체뿐 아니라 공손수에 대해서도 사형을 선고했다. 양복의 경우에는 속죄금을 내고 사면을 받았다.
이처럼 전승국인 한나라군 진영에서도 지휘관들이 분열을 일으키고 황제가 지휘관들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김민석 위원의 말대로라면 이런 군대는 필패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이처럼 승전국 내부에도 기강문란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김 위원은 청나라군의 기강 해이를 청일전쟁 패배로 곧바로 연결했다. 해군 개혁의 부진이 최대 패인이었다는 사실은 몰랐거나 숨긴 듯하다. 군대 개혁의 부진이 최대 원인이란 사실을 일부러 숨긴 거라면, 숨긴 동기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군대 개혁 부진이 패인이었다는 결론이 도출되면, 국방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하기 때문 아닐까?
히틀러의 군대 운명과 대한민국 군대 운명이 같다? 김민석 논설위원은 청나라 사례에 이어 독일 사례를 거론했다. 히틀러의 독일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을 이렇게 정리했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참모부 의견을 묵살하고 기갑부대를 제때 투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허용했고 전세는 독일에 크게 불리하게 기울어졌다."
1944년 6월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제2차 대전 승부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이 패배한 것은 히틀러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기보다는 전반적인 군사 전력의 열세 때문이었다. 당시 전력을 비교하면, 영국군과 미군만으로도 독일군을 압도하고 있었다. 영·미군이 이런 전력을 갖고도 독일군을 좀더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다.
류한수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의 논문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군과 영미군의 작전 수행방식의 비교'는 "영미군은 1944년 여름에 적군인 독일군을 압도하는 전력을 갖추고도 그 엄청난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따라서 유럽의 서부전선에서 전쟁을 빠르게 끝낼 좋은 기회를 놓치고 교착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렸다"고 말한 뒤, 노르망디 작전 당시 연합군의 문제점을 이렇게 정리했다.
"노르망디에 상륙한 영미군은 프랑스 내륙으로 전진하는 데 7주를 소요했고, 팔레즈에서는 독일군 주력을 섬멸하지 못해서 연말까지 교착상태에 빠졌다."-<역사문화연구> 제65집에 실린 논문.
이처럼 독일군뿐 아니라 연합군에도 문제점이 있었다. 양쪽 다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독일이 패배한 것은, 위 논문의 지적처럼 독일군의 전력이 영·미보다 열세였기 때문이다.
김민석 논설위원은 이런 알려진 사실을 감추고 군부에 대한 히틀러의 불신만을 끄집어내고, 기무사 개혁을 포함한 국방개혁을 추진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참모부의 전문적인 의견을 무시한 히틀러와 연결했다. 그런 뒤 대한민국 군대의 운명과 히틀러 독일 군대의 운명을 오버랩시켰다.
개혁은 불신에서 출발한다 사실, 위 논문들에 언급된 수준의 지식을 군사전문가인 김 논설위원이 몰랐다고는 보기 힘들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체제 과도기에는 보수세력이 혹세무민을 선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글을 보면서 그런 경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논설위원은 국방개혁이 군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며 이것이 청나라·독일처럼 망국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개혁의 본질을 외면한 말이다. 개혁은 본질적으로 불신에서 출발한다. 현 상황에 대한 불신이 있기에 이를 개선하고자 개혁에 착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신 자체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불신이 개혁을 통해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쓸 때 의심하지 않으며, 의심이 드는 사람은 쓰지 않는다(用人不疑 疑人不用)'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랫사람을 무조건 믿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의심이 사라질 때까지 철저히 검증하고, 검증을 끝내고 기용을 결심한 후에는 전폭적 신임을 표시하라는 의미다.
계엄령 문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무사는 스스로 불신을 초래할 만한 일을 저질렀다. 그렇기 때문에 군통수권자로서는 기무사를 불신할 수밖에 없고, 불신했다면 개혁에 착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군대를 분열시키는 일이 아니다. 기무사의 문제점을 묵인하는 게 더 나쁜 일 아닐까? 기무사 개혁은 군의 문제점을 제거하고 더 강한 군대를 만드는 길이다. 따라서 청나라 및 독일의 망국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기무사에 대한 국민들의 의심과 불신이 제거될 때까지 기무사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의심이 걷히면, 그때는 과감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면 된다. 지금 그 과정으로 가고 있는데, 엉뚱한 역사적 사례를 거론하며 딴지를 거는 것은 맞지 않다.
이는 보수세력이 그만큼 위기에 빠졌음을 방증하는 현상 아닐까? 기득권 사수를 위해 눈을 불을 켜고 있는 보수세력의 위기가 국방부 대변인 출신이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