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샤베트, 노란색 레모네이드, 시럽 없는 아이스 커피
두 조각 치즈 케잌에 하얀 우유 주세요
예쁜 오드리 또뚜 상큼한 오드리 또뚜
사랑에 꼭 빠지고 싶어 사랑을 찾아 나섰던 요정 오드리 또뚜
사랑은 너처럼 꼭 영화 속의 주인공들 처럼
- 포터블그루브나인 '아멜리에' 노랫말 중에서시원한 카페에 앉아서 시럽 없는 아이스 커피와 치즈 케이크를 먹고, 예쁜 노트를 펼쳐놓고 시를 필사하면서 포터블그루브나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주말이 내게도 있었다. 뉴욕에서 가장 트랜디하다는 첼시의 우아한 카페에 앉아서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는 커플의 모습을 땀에 푹 젖은 채로 창밖에서 쳐다보고 있으니 내 모습이 조금 서글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러고 다니는 걸까? 하지만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낯선 곳을 타박타박 걸을 것이다. 그게 더 즐거우니까.
뉴욕의 어디인들 예술과 관련 없는 곳이 있을까? 하이라인파크의 남쪽 끝은 휴스턴 미술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하늘공원에서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거리의 화가들이 그린 멋진 그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앤디 워홀의 얼굴에 꽃과 타이포그래피로 콜라주를 해놓은 작품이 눈에 띄었다.
팝아트가 예술의 전면에 등장하고 앤디 워홀이 현대 예술의 왕좌를 차지하면서 오히려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그림을 보기가 더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복잡하고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멋지다, 재미있다'라는 표현만 해도 충분해졌으니까. 비평가들이 기를 쓰고 작품 속에 있는 심오한 의미를 문장으로 풀어내면서 그들 직업의 존재 의미에 대해 피력하면 예술가들이 쿨하게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그린 거야'라며 겁을 먹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대중들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나저나 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이런 그림을 팔아서 생계는 유지할까? 이렇게 한 걸음씩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이 작가도 언젠가는 유명해질까? 휴스턴 미술관에 걸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대 미술 작품과 이 손수레 미술관의 재미있는 작품은 뭐가 다를까?
늘 답도 없는 질문을 혼자 던지고 혼자 답하고 혼자 반박하면서 길을 걷는다. 지금은 브루클린 뒷골목에서 그림을 그리며 꿈과 생활고를 함께 키워가는 어느 화가를 상상하고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일상이다. 부질없는 짓 같지만 뉴욕공공도서관에 가면 아인슈타인 할아버지가 서서 나에게 늘 힘을 북돋아준다. 멈추지 말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궁금해 하라고 말한다.
"The Important Thing Is Not To Stop Questioning."
첼시의 또 다른 명물은 바로 첼시 마켓이다. 하이라인파크가 버려진 기찻길을 공원으로 변신시킨 곳이라면 첼시 마켓은 버려진 과자 공장이 멋진 시장으로 변신한 곳이다. 지금도 배가 고플 때마다 가방에서 한 개씩 꺼내 먹는 오레오 쿠키를 만드는 나비스코(The National Biscuit Company)가 1900년에 세운 과자 공장이 바로 첼시 마켓의 전신이다.
나비스코가 공장을 확장하면서 뉴저지로 이동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있던 공장 건물을 다른 회사가 인수한 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첼시 마켓은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옛날에 과자 공장이었다고 해서 헨젤과 그레텔의 집을 떠올렸었다. 수도꼭지를 돌리면 초콜릿이 흘러 나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니었다. 그냥 첼시의 옛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오래된 공장 건물일 뿐이었다. 다만 건물 내부에는 다양한 액자들과 벽화들을 그려놓아 관광객들이 심시하지 않도록 예쁘게 꾸며 놓았고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과 배관들이 옛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천장이 낮고 길이 복잡해서 처음 들어갔을 때는 동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첼시 마켓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바닷가재 가게에 들어갔다. 첼시 마켓을 검색하면 열에 아홉은 이야기하는 바닷가재 맛집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해산물을 잘 안 먹는다고 하던데 가게는 손님으로 바글바글했다.
사실 미국에서 바닷가재는 18세기까지만 해도 바닷가재는 하인이나 노예들에게 먹이는 음식이었다. 매사추세츠에서는 하인과 노예들에게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바닷가재를 주는 가혹행위(?)를 못하게 하는 법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흔했던 바닷가재가 남들이 먹는 걸 옆에서 구경해야 하는 고급 음식이 되어버렸다.
각국 정부는 바닷가재 대중화를 위해 타임머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18세기의 사람들은 바닷가재보다 밀로 만든 따뜻한 빵이 훨씬 더 좋은 음식이라고 했으니까 나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믿기로 했다.
첼시 마켓을 먼저 다녀간 여행객들의 글에서 여기는 혼자 와도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기 좋은 곳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서 메뉴판을 보니 '간단하게'라고 말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쌌다. 간단하다는 말에 대한 의미가 나와는 달랐던 것 같다. 물론 내쪽에서 오해를 한 것이다. 첼시 마켓에서는 간단하게 식사할 수 없었다.
역시 배낭여행자에게는 바닷가재보다 길거리 음식이 더 어울리는 법이다. 첼시 마켓을 나와서 구글 지도를 열고 플리마켓을 검색했다. 오전에 갔었던 헬스키친의 플리마켓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뉴욕의 모든 플리마켓이 검색되었다.
이제 두꺼운 가이드북은 구글 지도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 구글 지도에는 여행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많은 플리마켓 중에서 사람들의 평가가 가장 좋은 유니온 스퀘어 플리마켓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내일 여행 계획도 함께 세웠다. 뉴욕의 모든 플리마켓에 다 가보기. 여행 계획은 이렇게 세우면 된다.
유니언 스퀘어의 플리마켓은 중고 상품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라 주로 농산물들을 현지와 직거래하는 커다란 시장이었다. 정식 명칭은 '유니온스퀘어 그린마켓'. 우리나라 5일장 같은 개념이었다. 매주 월, 수, 금, 토요일 오전 8시부터 6시까지 시장이 열린다고 했다. 유니온 스퀘어에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식품 할인점인 홀푸드마켓 매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우리나라는 대형마트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은 존폐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의외의 풍경이었다.
그린마켓에는 각 부스마다 해당 농산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농장의 이름과 위치가 적혀 있었다. 오직 지역 농산물만 유통되는 곳이었다. 뉴욕의 일류 요리사들도 이 곳에서 식자재를 사서 요리를 한다고 했다. 웰빙에 대해서는 전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격하게 사랑하는 뉴요커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홀푸드 마켓이나 트레이더스 조 같은 대형 할인 마트 사이에서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유니온 스퀘어가 마약 거래로 유명한 악명 높은 공원이었는데 1976년부터 12명의 상인이 모여 농산물을 직거래 할 수 있는 장터를 열었다고 한다. 마약 대신 싱싱한 농산물이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뉴욕에는 이런 그린마켓이 45개나 있다고 했다. 뉴욕 그린 마켓의 시작이 바로 유니온 스퀘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푸드 마일리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이런 재래시장을 열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지도에서 플리마켓으로 검색이 된 이유는 추수감사절 이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이곳에 다양한 선물용품을 사고파는 '홀리데이마켓'이 서기 때문이었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들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지만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라벤더였다. 라벤더 색깔이 진짜 영롱한 보라색이었다. 내가 라벤더를 실제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말 뭔가 비현실적인 색깔이었다. 보라색은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참 이질적이었다.
예로부터 보라색은 사회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나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점술가들이 주로 입던 옷의 색깔이다. 실제로 라벤더를 보니 왜 그런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라벤더의 색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향도 정말 좋았다. 라벤더 향기 역시 지금까지 실내용 방향제의 향만 맡아봤는데, 실제로 라벤더의 꽃향기를 맡아보니... 내가 맡았던 방향제의 향과 완전 똑같았다! 내가 맡았던 그 향이 정말 라벤더 향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대 기술은 경이롭다.
그린 마켓을 돌아보니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이자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도시인 뉴욕에서도 이렇게 다들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만들고 있구나 싶었다. 물론 이들 간에도 아름다운 상생만 있겠냐마는 대형 할인점만 보다가 뉴욕식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나니 뉴욕에서 좀 더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차가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도 이런 제도적인 장치와 개인들의 연대를 통해 거대 자본에 잠식되지 않는 따뜻한 시장경제가 유지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출출해서 1달러짜리 컵떡볶이라도 팔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당연히 없었다. 혹시... 좋은 사업 아이템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타박타박 아홉걸음(http://ninesteps.tistory.com)'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