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좀 봐봐."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평양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모란봉공원에서 휴대전화로 손자를 찍는 할아버지, 을밀대 앞에서 현판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던 가족, 결혼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터트리는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 모두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기자 출신 재미 언론인 진천규씨가 쓴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에 등장한 평양은 서울과 다를 게 없었다. 굳이 다른 모습을 꼽자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대신 책을 읽으며 거리를 지나던 학생 정도였다. 우산이 두 개인데 굳이 하나는 손에 들고 나머지 하나를 나누어 쓰며 과자를 나눠 먹던 소녀들도 진씨의 마음에 남았다. 폭우 속에서 어찌나 꼭 붙어 다니는지 소녀들을 한 참이나 바라봤다.
17년 만의 방북진씨는 자칭 타칭 평양순회 특파원으로 불린다. 2010년 5·4 조치 이후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단독 방북취재를 했다.
"로켓맨이 자살 임무 중", "늙다리 미치광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설전을 펼치던 지난해 10월에도 그는 평양을 찾았다. 2000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취재차 방문한 지 17년 만 이었다. 이후 올해 7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평양, 원산 등을 방문했다. 미국 영주권자이기에 가능했던 방북이었다.
지난 8일 서울에서 만난 진씨는 "(지난해 10월 트럼프와 김정은이 설전을 벌이는 시기) 평양은 고요했다"라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식이었다는 것. 전 세계가 '남북 전쟁이 일어나는 거 아니냐'며 두려움과 걱정이 뒤섞인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봐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핵 대신 경제건설
"우리랑 같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침이면 지하철,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저녁이면 대동강 맥주를 한 잔씩 하기도 하고요. 밖에서는 우리나라에 전쟁 난다고 떠들었지만, 우리는 별 신경 안 썼잖아요? 똑같아요. 평양도."진씨는 "똑같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가 보고 듣고 느낀 평양은 서울의 일상과 다를 게 없었다는 뜻이다. 그가 평양에서 들은 말은 "모른다"라는 거였다. 남쪽 사람들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거였다. '우리는 북한을 모르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진씨가 속으로 되뇌인 말이다.
물론 변화도 있었다. 지난해 10월에는 '핵은 핵으로 맞선다'는 구호가 평양 여기저기에 나부꼈지만 올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건설 매진하자'는 구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지난 4월 방북했을 당시 구호를 교체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는 미화도 왜곡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평양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씨가 책을 낸 이유다. 그의 바람을 담은 책은 미처 생각지 못한 일을 계기를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며 그의 책을 읽었던 것.
지난 3일인 금요일,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는 걸 그 역시 뉴스를 통해 알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책의 판매는 전과 비교해 160% 이상 상승했다. 대형문고는 앞다투어 '문재인 대통령이 읽은 책' 코너를 마련했다. 진씨는 얼떨떨했고 동시에 기뻤다. '이제 사람들이 조금 더 북한의 현실을 알 수 있겠지' 설렜다.
불그죽죽한 놈?
"나는 최근에 북한을 다녀온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한 참 전에 북한에 살았던 사람들이 북한이 이렇다 저렇다 떠드는 게 참... 종편에서 탈북민들로 프로그램 만드는 것도 그렇고. 태영호 같은 사람도 그래요. 탈북한 사람들이야 당연히 북한을 비난하지 않겠어요. 자기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그렇고요. 오래 전 북한이 싫어 떠나온 사람들이 말하는 게 과연 진실일까요?"진씨가 의자를 당겨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설명을 이어갔다. 고개를 저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보수세력은 늘 그래요. 거짓말하지 말라고. 북한 체제선전 하지 말라고요. 제가 강의하는 곳까지 태극기를 든 노인들이 찾아와 그래요. 너 그러면 북한 가서 살라는 댓글도 달리고. 불그죽죽한 놈이라고도 하고."빨갱이, 반공 분자, 들을 수 있는 말은 다 들었다. 그가 찍은 평양을 사진으로 보여주면 "하나 만알고 둘은 모르는 것 아니냐"는 화살이 돌아왔다. 평양과 지역의 차이는 클 텐데, 잘 사는 평양만 보고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우리는 서울과 지역의 차이가 없나요? 서울과 전라도, 서울과 경상도의 도시 상황이 똑같다고 할 수 있나요?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미국과 영국도 그래요. 수도와 지역은 어느 나라든 달라요. 그게 당연한 건데, 유독 북한에만 상식 밖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죠."
평양의 일상
그는 평양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겪으려 애썼다. 평양대극장 앞 광장, 거리선전대가 북을 치며 출근하는 이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고 지하철과 택시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창전거리 1층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도 만났다. 카드로 계산을 하며 휴대전화로 "요즘 재미 좀 보냐"라고 통화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했다.
북한에서 최초로 진씨에게만 촬영을 허락한 곳도 있었다. 평양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외지인 최초로 시내 야경촬영을 할 수 있었고, 옥류관과 청류관의 주방은 남쪽 사람에겐 처음 공개된 모습이었다.
"식당 주방은 원래 위생과 육수의 비밀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제게는 촬영이 허락됐죠. 신발을 갈아신고 위생복을 입고 마스크를 끼고 볼 수 있었어요. 물론 육수 만드는 건 볼 수 없었어요. 당연하잖아요, 업계 비밀일텐데."
우리는 인권 국가일까?
평양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도 봤다. 그중에는 2016년 집단 탈북한 종업원의 가족이 사는 집도 포함됐다.
"한 종업원의 어머니는 딸이 납치됐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를 붙잡고 '제 발로 갔다면 제 발로 올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죠. 제게도 가족이 있지 않냐며 '내가 딸을 어떻게 키웠는데' 한숨 쉬더라고요. 정말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탈북 종업원들이 원해서 서울로 갔다고 칩시다, 그럼 원할 때 돌아갈 수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한민국이 인권 국가라면 말이죠."진씨가 만난 평양 사람들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외려 당당했다. 70년간 단 하루도 제재받지 않은 날이 없었다며, 그 나름의 사는 방식을 터득한 것 같았다. 그들은 손안에 든 쥐도 독배를 든 미치광이 수령을 모시고 있는 이들도 아니었다.
"체제가 다르잖아요. 그 나라의 체제는 다른 나라에서 찬성하고 반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와 다른 체제라고 비난받을 일이 아니죠. 그 나름의 체제, 방식을 두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잣대로 누군가를 평가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그는 또 한 번의 방북을 준비하고 있다. 8월 15일 방북해 북한이 그가 준비하는 <통일 TV>에 북한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도록 계약할 생각이다. <통일 TV>는 북한의 역사·자연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역사드라마를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이다. 다름을 보이기도 하고 같은 역사를 지닌 민족을 드러내기도 하는 콘텐츠가 방송될 예정이다. 그가 프로그램을 통해 묻고 싶은 건 딱 하나다. 우리는 무엇이 비슷하고 무엇이 다르냐고. 있는 그대로의 북한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물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