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만 강제로 모집했다. 군복 만드는 공장이라며 옷고름도 못 매는 애들을 끌고 갔다. 거부하면 살림 몰수하고 외국으로 추방한다고 해서 갔는데 그냥 공장이 아니라 남자들 공장이었다. 15살 때부터 부대가 옮길 때마다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끌려다니면서 몸이 엉망진창이 됐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말이다. 그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한국을 방문한 100여 명 앞에서 자신이 겪은 끔찍한 기억을 풀어놨다.
1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주제는 '73년의 기다림, 마침내 해방! 세계 무력분쟁 성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였다.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입은 피해만 증언한 게 아니다. 돌아온 한국 땅에서 겪은 아픔도 꺼내놨다. 김 할머니는 "시집 가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모든 걸 실토했다. 그때는 여자가 그런데 다녀오면 사람 취급 안 했고, 여자 취급도 안 해줬다"며 "어머니는 한숨만 쉬다가 화병을 얻었고 끝내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 엔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엉뚱하게 위로금만 받아왔다"며 "위안부 할매들 몸 팔아 받은 돈으로 지금 위안부의 '위'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내놓은 출연금 10억 엔(약 108억 원)으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14일 CBS 보도에 따르면 약 108억 원 중에 현재 49억 원이 사용됐다. 이중 5억 8천만 원은 인건비와 임대료 등 관리운영비였다.
일본 정부의 사과도 촉구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테니 용서해달라, 아이들을 똑바로 교육시키겠다고 하면 우리도 용서할 수 있다"라며 "간단한 문제인데 자꾸 아니라고 하니까... 60살 되던 해에 위안부 피해를 신고했는데 이때(93세)까지 살아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리 정부에도 쓴소리했다. 김 할머니는 "올해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있다. 대통령이 할머니들과 했던 약속을 못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날선 말만 쏟아낸 건 아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남겼다. 김 할머니는 "남북이 전쟁없는 평화의 날이 온다면 이산가족도 없고, 우리 후세들은 우리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 세계가 싸우지 말고 서로 평화롭게 오고가는 평화의 문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쏟아진 성폭력 증언
세계 무력 분쟁 성폭력 생존자들의 증언도 잇따라 나왔다. 타티아나 무카니레(Tatiana Mukanire) 콩고 민주공화국 생존자는 "콩고에서는 20년간 내전으로 인해 국가가 분열되었고 광물자원이 약탈당했다"며 "한국처럼 콩고는 잔혹한 피해를 겪었고, 수백만의 가족들이 가족과 친척들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일같이 여성과 여자아이들은 밭에 가고, 시장에 가고, 장작을 모으고, 물을 찾는 등 가족의 생계에 필수적인 활동을 하다가 성폭력을 당한다"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 무퀘게 박사의 추정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5년 사이 콩고의 판지 병원이라는 곳에서 4만 8842명의 성폭력 생존자들과 3만 7382명의 산부인과 질환을 겪는 여성들을 돌봤다"고 말했다.
바스피헤 블레어(Vasfije Blair) 코소보 생존자는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16살이라는 나이에 저는 고통을 겪었다. 세르비아 경찰에 납치되었던 저는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고 저의 마음 또한 산산조각 부서졌다. 어머니의 품에 있다가 납치되었는데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날 저녁 저는 한 경찰관과 민간인에게 강간을 당했다. 몇 시간 후에 그 사람들이 저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 주었을 때가 저의 어린 시절 집을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었다. 저희는 산 속에 있는 피신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그 곳에서 어머니와 막내 동생과 함께 두 달 동안 머물렀다"고 했다.
야지디족 살와 할라프 라쇼(Salwa Khalaf Rasho)는 "IS의 만행"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2014년, 저와 제 사촌 그리고 친척들이 IS 구성원들에게 잡혀 이라크 북부의 니네베(Nineveh) 지역 중심인 모술(Mosul)에 끌려갔다"며 "여기서 얼마 지나지 않아 IS가 550명의 여성과 소녀를 이슬람 남성들에게 팔았다. 제 친구는 성폭력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동맥을 끊고 자살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마을을 옮겨가며 여러 남자에게 팔렸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고통, 폭력의 시간을 보냈다. 강제로 결혼하고 매일같이 욕설을 듣고 매를 맞았다. 제가 겪은 일은 야지디족 여성이 겪은 성노예 생활의 일부일 뿐"이라며 "아직도 3000여 명 이상의 야지디족 여성이 행방불명이다. IS의 손아귀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간다에서 온 아칸 실비아(Acan Sylvia)는 전쟁의 참상을 증언했다. 그는 "제 어머니는 반군에 납치돼 행방을 모른다. 언니와 아버지는 반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며 "무엇보다 북부 우간다의 전쟁 생존자들이 매우 어려운 사회적, 경제적 여건 속에서 극빈층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나비 기금을 지원받아 전쟁 희생자를 돕고 있다"며 "이제야 전쟁 희생자들이 삶을 이어나갈 희망을 가졌다"고 했다.
윤미향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부인할 수 없는 반인도적 범죄이다. 전시 여성 폭력의 가장 집단적이고 극단적인 사례"라며 "일본 정부는 유엔총회 결의와 국제 인권 원칙에 견줘 피해자들에게 완전한 배상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자들의 가해사실 인정과 공식사죄, 배상을 통해 모든 무력분쟁 성폭력 생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회복돼야 한다"며 "현재와 미래세대들에게 재발 방지를 위한 역사교육이 이뤄지고 피해자에 대한 추모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 앞서 제1회 김복동 평화상 시상식이 열려 아칸 실비아 '골든위민 비전 인 우간다' 대표가 수상했다. 심포지엄 이후에 참석자들은 자리를 옮겨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 참여했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은 지난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날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지난 2014년 8월 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