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러나 고맙기도 한 존재 태풍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시각, 온 매체가 태풍의 가공할 위력을 예보하기 바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살벌한 풍경이 연출된다. 태풍은 무서운 이미지로 부각되며 피해야 할 무엇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태풍은 매년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고온의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이라는 이 익숙한 자연현상은 많은 비와 바람을 끌고 와 미세먼지를 비롯한 그간 인간이 만든 온갖 쓰레기를 몰아내주기도 하고, 하천의 범람으로 주변을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강 주변으로 농경지가 발달한 이유도 결국 태풍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생활에 큰 피해가 없이 지나가면 태풍은 사실 고마운 존재다. 인간의 삶은 지난 수억 년 동안 그것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춰 살아왔다. 따라서 태풍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강 주변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4대강사업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강압적 지시와 어용학자들의 곡학아세가 빚은 창조물인 작금의 4대강은 기실 '물 고속도로'와도 같다.
원래 강과 그 주변은 모래와 습지, 범람원들이 있어 태풍이나 장마가 올 시 물의 속도와 그 힘을 받아 안아주는 완충재 구실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 4대강은 그런 완충제들을 완벽히 걷어내고 직선화시켜버렸다. 물의 고속도로가 생겨난 셈이다. 그 위에 덩그러니 어설픈 콘크리트 구조물을 16개나 들여놓은 것이 4대강의 진면목이다.
4대강은 '물폭탄'을 견딜 수 있을까거칠 것이 없어진 강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하천수리학에 따르면 강물의 유속이 2배 커지면 그 힘은 2의 6승배로 불어난다고 한다. 강의 유속이 2배 빨라지면 강물의 힘은 2배가 아니라 64배가 증가하는 것이다. 엄청난 힘이다. 물폭탄이란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이유다. 그 중에서도 낙동강을 제일 깊이 파고, 콘크리트 구조물인 보를 8개나 세웠다.
태풍이 이 물 고속도로를 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모양은 댐이지만 보 설계로 2년 만에 졸속으로 지어진 저 구조물이 가공할 위력을 가진 물폭탄을 견딜 수 있을까? 모래 위에 파이프를 박아 그 위에 얹어놓은 콘크리트 덩이에 불과한, 용도를 알 길이 없는 저 구조물은 과연 우리 인간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4대강 준공 이후 큰 비나 위력적인 태풍이 오지 않았지만, 그런 비에도 보 아래로 물이 새고, 보와 연결된 강바닥 침식을 방지하는 하상보호공이라는 구조물이 주저앉거나 붕괴도 했다. 그것이 우리가 지난날 목격해 온 4대강의 현실이다.
4대강 주변에서 농사짓고 사는 농민들이 정말로 걱정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농민들이 진짜 주장해야 하는 것은 "농사용 물이 아까우니 수문개방에 반대한다"가 아니라, "물폭탄 걱정되니 4대강 보 빨리 없애 달라"는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
태풍 솔릭 상륙 전날 합천창녕보의 남조류 수치보의 수문을 연다는 것은, 더 나아가 보를 철거하는 것은 강을 강답게 만들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강의 모래톱과 습지가 부활하면 그것이 물폭탄의 뇌관을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맹독성 조류가 증식하는 이른바 '독조라떼' 현상도 막을 수 있다.
8월 22일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상륙한 바로 전날 합천창녕보의 남조류 수치는 120만셀이 넘었다. 1cc의 강물에 120만 마리의 남조류가 바글바글대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 및 재난관리법>에 따르면 국가재난사태를 즉시 발령해야 할 상황이다.
치수는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아 인간이 강을 조절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오만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심각한 부작용만 남길 뿐이다.
다행히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언론의 호들갑처럼 가공할 피해를 끼치지 않고 지나갔다. 그러나 또 다른 태풍이 언제 4대강 물 고속도로를 타고 물폭탄을 터트리게 될지, 그것이 정말 두렵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0년 동안 낙동강에서 자행된 4대강사실상을 폭로해왔습니다. 이 글은 28일자 한겨레 왜냐면에도 함께 실린 글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