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 모옴은 <달과 6펜스>에서 '예술가는 작품에 숭고하고 아름다운 장식을 하여 우리의 심미감(審美感)을 만족시켜 주고 그 자신이라는 큰 선물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고 했다. 우아하고 매혹적인 몸의 언어, 춤을 선사하며 품격 있고 아름다운 나눔을 꿈꾸는 예술가를 만났다. 주미화(51) 안무가다.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그녀의 무용연습실을 찾은 것은 지난 17일, 자연은 가을을 향하고 있었다. 쪽빛하늘, 흰구름, 습기와 더위를 머금지 않은 엷은 바람, 고개를 숙이고 누렇게 익어가는 들녘의 이른 벼 등.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난한 폭염이 있었나 싶었다. 인터뷰는 넓은 유리창 너머로 하늘이 훤히 보이는 그녀의 무용연습실에서 진행됐다.
이천시 장호원이 고향인 주미화는 초등학생 때 수원으로 전학 가 4학년 때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발레를 처음 시작했다. 선생님은 발레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연습을 시켰고 여러 무용대회에 출전시켰다. 주미화는 초·중학교 시절 여러 무용대회에서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났다. 하지만 부모님한테 비밀로 했다.
"저의 부모님은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분이에요. 하지만 자녀가 무용을 하는 것은 원하지 않으셨죠. 근데 초등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을 떠나 오빠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몰래 무용하는 게 가능했어요. 부모님이 계신 장호원으로 다시 전학 오고 경기도 콩쿠르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셨고요. 부모님께 엄청 혼났죠. 하지만 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참가해 입상을 했습니다."고등학생 주미화는 평일 저녁에는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한 곳으로 모아놓은 뒤 빈 공간에서 연습했다. 여고생이 밤에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춤 연습을 한 것이다. 주말에는 아예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역시 춤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밤에 교실에서 연습을 끝내고 나가면 복도에 앉아 있는 분이 있었어요. 담임선생님이셨어요. 저를 기다리다가 복도 계단에서 졸고 있는 모습도 몇 번 봤는데 여학생 혼자 연습하고 있는 게 걱정스러워 지키고 계셨던 거죠.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려요."그녀는 대학에서 서양무용을 전공하고 영국의 무용전문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익혔다. 25세 때 '사람이 사람에게'라는 주제로 발레 초연을 했다. 30여 년 가까이 학생들에게 발레와 무용을 지도했다. 그동안 그녀는 주미화무용단을 창단하여 '가을비 가을바람 가을시', 경기무용제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천시 승격 기념공연 '닫힌 숨', 세계도자기 엑스포 개막 공연 등 다양한 공연을 안무 연출했다.
경기무용제전(현대무용부문 1등), 제24회 경기예술대상 <본상 (무용부문)>등 상과 표창장도 많이 받았다. 현재 한국예총 이천시지회 부회장인 주미화 안무가는 지난 7월 14일, '2018 설봉산 별빛축제' 개막공연 안무 연출을 맡고 이천무용협회 회원들과 함께 창작무용을 선보였다.
"행사 공연 안무는 작품뿐만 아니라 무대의 크기, 소품, 조명, 음악 선곡 등 섬세하게 신경써야할 게 많아요. 그 가운데 특히 행사 취지를 춤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는 가장 큰 숙제죠. 공연 장소와 관객의 연령, 취향 등을 고려하여 관객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춤을 이해하고 무용수와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기획하려고 하거든요. 지난 설봉산 별빛축제 개막 공연은 소금(악기) 소리로 이천 시민을 한 명씩 불러들인 후 시민들이 닫힌 마음을 활짝 열고 화합하자는 의미를 담았답니다."
그녀는,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은 마음과 감각을 열고 그 순간을 충분히 누리고 즐기기를 바란다고 했다. 불혹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그녀는, 골고루 먹되, 밤에 잠자기 10분~20분 전, 아침 잠에서 깬 5분 정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하는 스트레칭을 꼽았다. 이것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꼼꼼하게 한단다. 이때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스트레칭을 찾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따뜻한 나눔도 꿈꾸고 있다.
"제 연습실을 하우스콘서트 장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이 공간에서 음악, 미술, 문학 등 실력 있는 예술인들과 춤의 콜라보(협연), 수준 높은 공연을 구상하고 있어요. 수익금은 함께 공연한 예술가에게 돌아가도록 할 계획이고요. 각 분야에서 실력은 탁월하지만 어려운 예술 현실로 인해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예술가들이 많거든요."인터뷰를 하는 시종일관 그녀는 유쾌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하게 한 일은 없었다는 그녀의 말이 무색해 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40여 년 동안 어깨를 탈골하면서까지, 다른 발레 무용수에 비해 짧은 손가락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녀의 치열한 노력과 열정의 산물일 것이다.
자신의 신체에는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고 배움과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으며 쉼 없이 무용가의 길을 걸어온 그녀가 춤으로 전하는 선물일 것이다. 주미화 안무가의 우아한 비상이 기대된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일부는 이천시청에서 매달 발행하는 이천소식 9월호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