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지난 24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되면서, 기대를 모았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도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역사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우리에게 어려움은 당연하지만,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부터 급격하게 전개된 한반도의 평화 국면을 경험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과 걱정이 공존한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날을 돌아보고, 당초 세운 계획을 재점검하라고 한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국가도 그럴 것이기에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 우리 정부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그동안 놓치고, 간과했던 사안들을 검토할 수 있다. 성숙한 미래 공동체를 구상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전략적 수단을 고민하는 것과 별개로 남과 북이 긴밀하게 교류·협력하고, 언젠가 하나가 됐을 때를 대비해 지금 해결해야 할 우리의 문제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가 되기 위한 과정만이 아니라 하나가 된 이후를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 향후 교류와 협력의 과정이 우리가 가진 경제·사회적 문제를 북한 사회에 전파하고, 이식하는 형태로 이뤄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남북 경제공동체를 위한 준비그동안 북미 관계의 중재자로 분주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 경색 국면에서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와 '통일경제특구' 구상을 밝혔다. 4·27 남북 정상회담,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남·북·미 관계가 안정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결과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앞당기는 지렛대로 삼고, 통일 후 공존의 모델을 미리 시험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경제·사회적 문제를 생각하면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의 작품이 그리 밝게만 그려지지 않는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 심각해진 비정규직 문제,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 청년 실업, 소득 양극화 등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북한과 함께 우리의 경제 지도를 넓혀가는 건 또 하나의 '아픈' 공간을 창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아파하는 요인을 다른 곳에, 북한 땅에도 전달해서는 안 된다. 그곳은 모두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제특구나 공동체가 어디에서 무엇을 만들어낼지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이 어떻게 작동될지 고민해야 한다. 일하는 노동자의 처우 문제부터 발생하는 이익의 분배와 참여하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까지, 우리 사회에서 악랄하다고 손 가락질 받는 대기업의 불합리한 행태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도 연구해야 한다. 그곳에서 지상낙원을 구현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모범적으로 평가하는 경제 질서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미리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재 우리가 가진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외적인 성장뿐만이 아니라 성숙한 기업 문화와 대기업, 중소기업 등 경제 주체 간의 상생, 공정 경쟁 등 우리 사회의 체질과 구조, 의식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만능과 무한경쟁을 핵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시대를 지나오면서 파괴된 경제·사회 영역의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것도 과제다. 손님을 맞이하기 전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집주인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