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비용추계서'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내년도 예상비용만 담겨 있는 비용추계를 두고 통일부가 의도적으로 예산을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비용을 축소했다는 비판, 국회와 야당을 압박하는 정치적 술수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이를 두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2일 "2019년분에 한해서 (비용추계서를) 공개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남북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느냐에 따라 비용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2019년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남북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굉장히 탄력적인 상황이라 비용을 추계하기 굉장히 어렵다"라며 "그래서 1년 치의 예상되는 부분 내에서 국회에 논의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9년 이후의 예산을 두고는 "결국 모든 비용은 국회 심사 과정을 거친다"라며 "그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당당하게 국회에 필요한 예산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예산 축소 아니야"
비용추계와 관련한 통일부의 설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날 통일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과 충분히 합의가 이뤄져야 사업 계획, 예산을 확실히 할 수 있는데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지 상황에 맞춰서 액수가 변할 수 있기에 내년도 계획만 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당국자는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철도·도로·산림 부분은 현지방문도 했고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라며 2019년도 비용 추계가 2986억 원이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10·4선언 후에도 많은 사업이 있었지만, 당시 가능한 사업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실태조사 등이어서 1948억 원만 비용추계 제출액에 반영했다"라며 "이번에 짠 예산이 축소되거나 구체화 되지 않은 게 아니다"라고 비용 축소 의혹을 반박했다.
당시 통일부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10·4선언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지 않았다. 다만, 10·4선언의 이행을 위해 열린 남북총리회담의 합의서에 대해 같은 해 11월 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했다.
이 당국자는 "2007년에도 지금도 정치적 고려는 없다. 국가의 중대한 재정적 의무에 대해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협의 수준에 따라 비용추계 달라"
정부가 제출한 1년 치 비용 추계서를 두고 전문가들은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원(북방경제협력위원회 민간위원)은 "남북 철도 구간만 보면 1200km에 달한다"라며 "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 현대화한다고 합의했지만, 현대화 수준에 대한 공동조사나 연구를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더욱 구체적인 합의안, 공동조사가 진행되어야만 금액을 확정할 수 있는데, 지금은 초창기 설계나 조사 비용밖에 알 수 없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 8월 말 남북은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을 공동 조사하려고 했지만, 유엔군사령부가 이를 불허한 바 있다.
안 선임연구원은 "공동조사와 공동연구가 끝나야 구체적인 액수가 나올 수 있다. 건설비를 지금 추계할 수 없다"라며 "지금 수준에서 (액수를) 알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철도·도로·산림은 남북 사이에 급진전 될 가능성이 높은 사업"이라며 "남북 합의 수준에 따라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액수는 신중할 수밖에 없기에 비용을 추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