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발에 난 무좀이 바라구처럼 극성이다. 겨울에는 피부 깊숙이 잠복해 있다가 날씨가 풀리고 외기온도가 상승하는 5월부터 벌써 꿈틀거리기 시작해 늦가을까지 성가시게 한다. 군복무 시절에 얻은 질병인데 3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내 몸에서 기생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암이나 다른 질병처럼 치명적이지 않다는 거다.
발바닥이나 발가락 사이가 가려워 긁으면 물집이 생긴다. 물집을 손톱깎이로 터뜨리고 그 자리에 무좀약을 바르는 응급조치를 해주면 이내 가려움증이 멈춘다. 대신 다른 취약한 자리로 이동해 잡초처럼 올라온다. 한 철 내 장소를 달리해 올라오는 놈들하고 사투를 벌이지만 늘 나의 패배다. 겨울만이 내 우군이다.
비단 무좀뿐이겠는가. 계절마다 다양한 형태의 바이러스로 찾아드는 감기도 그렇고, 꽃가루나 담배연기에 반응하는 알레르기도 그 중 하나다. 이것 말고도 알게 모르게 내 몸에서 기생하거나 잠깐 머물다 가는 놈들이 허다할 것이다. 하지만 위험한 수준으로 나를 괴롭히는 놈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지은이 백세희는 1990년생 미혼여성이다. 그는 다소 생소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가 평소 앓고 있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정신과의사와 나눈 대화를 채록하여 정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우울증을 견뎌나가는 자신의 마음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변덕스런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을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꾸밈없이 진솔하게 마음을 털어놓은 내용들이 공감이 간다.
그가 앓고 있는 병은 기분부전장애(氣分不全障礙, Dysthymic disorder)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병명이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기분부전장애는 주요우울장애와 증상이 비슷하되, 그 정도가 경하면서 2년 이상 지속되는 증상을 말한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런 것도 병이라는 이름으로 명칭 되어 전문의가 있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그런 증상 하나쯤은 갖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신열이나 두통처럼 말이다.
내가 무좀이나 계절적인 비염을 달고 살아가듯이 내 아내는 두통을 달고 산다. 물론 정신적인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두통도 일종의 스트레스성 질환이 아닌가싶다. 아내는 두통이 심해지면 입안에 알약 하나를 삼키는 것으로 끝이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는 아픈 것도 사치다. 죽을병이 아니면 대충 견디며 살아간다.
"자기가 지금 힘든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유 없는 허전함에 시달리면서."
힘들어도 힘들어할 줄 모르고, 아파도 아파할 줄도 모르면서 우리는 모두 무엇을 위해 이렇게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살아가는 걸까. 먹고 싶은 떡볶이도 먹고, 보고 싶은 사람도 보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나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의 아픔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소소한 삶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너무 지나치게 우울에 몰입하여 정신까지 피폐해져선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아픔을 방치하는 것도 자신을 학대하는 일일 것이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치유가 필요할 땐 치유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상처의 깊이를 헤아려 적당한 처방과 보살핌을 더하면 건강한 삶을 살아내는 힘이 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거?
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의심 없이 편안하게, 그뿐이다."
우울에도 순기능이 있듯이 아픔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픔을 이겨내고 자각하는 내 몸에서 사랑을 발산하고 흡수하는 작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터.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