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도 별로 없어 휑한 조류 사육관이었다. 새들은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고요했고, 때때로 몸의 각도가 이상해 보였다. 몸에서 깃털도 군데군데 떨어진 게 일종의 털갈이인지, 건강이나 스트레스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는 마치 버려진 구역이라는 인상마저 주는 그 지저분한 철창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사람을 위해 전시된 이 동물들이 적어도 먹고 살 만한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의 마취 시도 후 사살된 퓨마
지난 9월 18일, 대전 오월드 동물원의 퓨마 한 마리가 탈출했다. 사육사의 실수로 우리의 문이 열려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상 퓨마는 탈출의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기보다, 문이 열려 있었기에 무심코 나간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안전을 위해 지역 주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권고했다. 경찰특공대와 소방대원 등 100여 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해 퓨마를 수색했다. 퓨마는 동물원을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배수지 근처에 웅크린 채로 발견됐다. 마취 총을 쏘아 포획하려 했으나, 마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사살 당했다.
동물원을 관리하는 대전도시공사 측은 "날이 어두워져 수색이 어려워지는 상황이었고, 퓨마가 인명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사살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탈출부터 수색, 포획, 마취, 그리고 사살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마취를 재시도하는 등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꼭 사살해야만 했느냐'는 의문과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 퓨마는 사람의 실수로 우리에서 나온 후 '고작 네 시간의 자유'를 누린 끝에 사람의 손에 사살 당했다. 그러나 아마 우리 밖에 있던 그 시간조차 퓨마에게는 자유가 아니었을 것이다. 낯선 환경과 냄새 속에서 방황하다 웅크리고 있었던 퓨마에게 그 시간은 오히려 공포였으리라.
동물에 대한 동물원의 책임
그 이후 '꼭 사살을 해야만 했느냐' 하는 지적부터 '애초에 동물원이 있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물원 안의 동물들이 머리를 부딪치거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등 이상 행동을 한다는 목격담은 이미 흔하다. 그럼에도 동물원의 환경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더 의아할 정도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더라도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동물의 기준에서 필요한 것을 갖춰주어야 한다. 높은 곳을 올라가는 습성, 발톱을 갈아 다듬는 습성, 야행성으로 활동하거나 때때로 사냥과 비슷한 놀이를 통해 에너지를 발산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습성 등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이 사람과 공존하는 선에서 본성대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는 것까지가 보호자들의 몫이다.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삶의 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을 '행동 풍부화'라고도 한다.
사람의 즐거움 혹은 교육적 목적으로 동물원을 만들었다면 적어도 인형처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물이 자신이 원래 있었어야 하는 곳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최대한 비슷한 행동을 하며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인도적인 차원의 배려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퓨마 사건처럼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에 있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시민들의 안전은 중요하고, 퓨마의 사살이 그 순간 최선의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탈출부터 사살까지 동물원 내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더 안타깝다. 아무리 맹수라 한들, 그 퓨마 역시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겁에 질려 있는 상태에서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고 포획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이는 수색대보다 동물원을 향해 묻고 싶다.
퓨마를 포획하기 위해 투입된 인원이 퓨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시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준 분들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동물 관리의 전문 인력이 부재하다는 의미다.
동물원 측에서 기존의 안전 교육을 토대로 퓨마의 습성을 고려하여 포획을 이끌었다면, 꼭 사살이 아니더라도 다시 마취를 시도하거나 움직임을 예상하여 덫을 놓는 등 포획하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수많은 동물을 관리하는 주체인 동물원에서 포획을 위한 마취조차 제대로 지휘할 수 없다면, 앞으로 또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동물원 안에 있는 맹수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위험하다. 하지만 사람이 일부러 데려다 보호하고 있다면 탈출 시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책임까지가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맹수라고 해서 사람을 보고 무조건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한 사냥 외에는 위협이 느껴졌을 때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공격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동물원은 동물을 단순히 '생존'시키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본능과 습성을 바탕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보호하는 장소여야 한다. 그러한 전문 인력이 갖춰져 있다면 그 다음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기 위해서, 그 퓨마는 정말 사살하는 방법밖에 없었는지. 어쩌면 그건 동물원이 위험한 전시품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책이 아니었는지 말이다.
동물원법은 있다, 하지만
2017년 5월 30일부터 처음으로 한국에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대한 법률(아래 동물원법)'이 시행되었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처음으로 이 동물원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기 전까지,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관리 규정이나 제도적인 장치조차 없었다.
동물원법 시행 이후 동물원과 수족관은 지자체에 등록하고 보유 생물종이나 반입, 반출, 증식 등의 관리 기록을 제출해야 한다. 적절한 사육사와 수의사를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애초에 발의된 동물원법은 '동물원에서 사육이 부적합한 동물을 지정하고, 각 동물 종을 위한 사육 환경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며, '동물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한 인위적인 훈련을 금지'하고, '수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동물은 즉시 치료'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여당 의원의 반대로 법안은 대폭 수정된 채로 통과됐다.
현재 동물원법은 적정한 서식환경 제공, 보유 생물 질병 관리 계획, 동물 학대 금지 등에 관해 최소한의 내용만 규정한다. 동물의 서식 환경을 바꾸도록 강제할 수 있는 내용 역시 빠져 있다. 위반 시 처벌 수준 역시 과태료 정도로 낮다는 점도 문제다. 즉, 동물원법은 아직 '국가가 동물 복지에 관심을 갖고 동물원을 관리한다'는 의의를 보이는 정도다. 그 탓에 사실상 이름뿐인 동물원법이라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때리거나 괴롭혀야만 학대가 아니다
예전과 달리 동물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져서, 동물원이 그저 동물의 재롱을 보고 즐거워하는 공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추운 지방에 살아야 하는 동물이 한국의 폭염에 고통 받는 모습을 교육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미 동물원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도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동물원에 대한 논란은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전 세계적으로 아직 동물원 자체를 폐지하는 결정을 내린 국가는 없다. 그러나 없앨 수 없다면 이제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낼 때다.
동물원이 꼭 전국 방방곡곡에 많을 필요도, 희귀한 동물을 보유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꼭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동물원이 아니어도 좋다. 한두 종의 동물이 있더라도 그 동물 자체가 아니라 동물이 살 수 있는 환경까지 보여주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꼭 때리거나 괴롭혀야만 학대가 아니다. 한국에서 키우기에 부적합한 동물은 아예 키우지 않는 편이 낫다. 굳이 북극과 남극의 동물을 한반도로 데려와 그들이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충분히 볼 수 있는 시대다. 당장 동물원의 존폐에 대해 논의하기 이전에, 이 생명들이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가 지켜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실수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른 퓨마, 우리가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다음의 똑같은 실수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을 전시품이 아닌 생명으로 대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동물원법'이 허울뿐인 법이 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다듬고 구체화시키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