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한옥의 공사 현장은 여전히 매우 더디게, 뜨거운 여름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나무 기둥은 제자리를 찾았고, 지붕의 구조와 기와까지 다 올라갔다.
집은 이제 슬슬 집으로서의 모양을 갖춰나가고 있었다. 얼마전까지 주변 가까운 분들이 간혹 공사 현장을 찾을 때만 해도 여기는 대문, 여기가 대청, 저기는 안방, 저쪽은 화장실 등등 위치를 설명해줘야 했는데 이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눈에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있을 만큼 공간의 구획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제 바야흐로 단장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단장의 나날이란 무슨 뜻인가. 그동안의 공사는 굳이 구분하자면 기초공사라 할 수 있다. 다 가려져 완성 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온통 눈에 보이는 공사다. 하다못해 목수 어르신들의 톱질, 대패질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러자니 일하는 분들의 손끝에 완성도가 좌우되고,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한 번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다.
단장의 단계에 접어들어 가장 큰 결단은 지붕, 아니 천장 마감을 둘러싼 순간에 이루어졌다. 애초에 이 집을 철거했을 당시 목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집을 지은 분은 눈썰미는 있으셨지만 돈은 없으셨던 듯하다."
그건 서까래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조의 모양은 예뻤지만, 서까래의 나무는 너무나 가냘퍼서 그대로 쓸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대부분을 바꿔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보와 기둥은 옛날 나무인데, 서까래만 무조건 새 나무를 가져다가 만들어 올릴 수는 없었다.
목수님은 거래하는 곳을 다 뒤져야 했다. 검색의 조건은 간단치 않았다. 우리집의 들보와 기둥에 어울릴 만한, 그렇다고 너무 두껍거나 가늘어서는 안 되는, 적당한 세월을 품고 있으면서 견고한 그런 서까래여야 했다.
드디어 시작된 단장의 나날들
지붕을 완성한 뒤 촘촘히 올라온 서까래의 향연은 바로 그런 결과물의 총합이었다.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나무의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그 천장 서까래의 질서가 나는 참 좋았다. 그런데 이 순간에 나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천장을 어떻게 할 것이냐. 서까래를 노출할 것인가, 일반 주택처럼 천장을 따로 만들 것인가. 경우에 따라 대청만 서까래를 노출하고, 주방이나 안방, 화장실 등은 천장을 따로 만들어 올리는 선택지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이 집의 아름다운 서까래를 살면서 즐기고 싶었다. 여러 우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뜻을 꺾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 집의 모든 천장에 서까래를 노출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즐거움에는 대가가 따른다.
서까래를 노출한다는 건 나무가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덥거나 추울 때, 습기가 차거나 난방으로 인해 인위적인 열이 가해질 때마다 나무는 영향을 받는다. 한옥은 자연과 더불어 숨쉬는 집이라고들 한다. 이건 달리 말하면 외부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습도에 매우 취약하고, 기후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멀쩡히 잘 열리던 문이 날씨에 따라 뻑뻑해지거나 딱 맞던 문이 헐거워진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휘어지고 틀어지고, 벌어진다는 말도 들었음은 물론이다. 살면서 습도와 온도에 매우 신경쓰지 않으면 천장의 나무가 상할 수도 있다니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특히 화장실 천장을 두고는 갑론을박이 한참 이어졌다. 다른 곳은 몰라도 늘 습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화장실의 서까래 노출은 조심스럽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나는 '화장실에 습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종의 선입견이라고 생각했다. 아파트의 화장실은 보통 집 안의 안쪽, 사방 창문이 하나도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햇빛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우리집의 화장실은 창문이 두 개나 있고, 한낮에는 대청을 거쳐 한줌이긴 하지만 햇빛도 들어온다. 습관적으로 나는 화장실을 쓰지 않을 때는 문을 열어두며 지낸다. 그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거슬리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건식으로 사용할 예정이라 전용 수건을 두고 샤워 후에는 물기를 한 번씩 닦고 나오는 습관만 들이면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화장실이 매우 작기 때문에 한 번씩 쓱, 닫고 나오는 게 그리 크게 힘들 것 같지는 않았다. 당연히 환풍기도 달아둘 테고. 여러 우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바닷가에 집을 짓는 사람들은 보통 바다 쪽으로 통창을 낸다. 바다를 마음껏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 살다보면 지겨워져 커튼으로 가리고 산다고 했던가. 서까래의 아름다움도 한두 번이지, 갈수록 식상해질 것이고, 불편함은 지속되어 결국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훗날 하게 될지 안 할지 모르는 후회의 가능성 때문에 오늘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까래의 물결, 우리를 눈멀게 했다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서까래를 노출하는 한옥 천장의 마감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다시 나뉜다. 개판이라는 나무판으로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를 막는 것이 하나고, 흙으로 치받이를 해서 회미장을 하는 방법이 또 하나다.
개판을 치면 천장은 온통 나무로 덮인다. 서까래 사이를 채운 흙을 나무로 한 번 덮는 셈이니 사용면에서도 그렇고, 관리면에서도 매우 편리한 장점이 있다.
치받이를 해서 회미장을 하면 천장에는 서까래가 단독 주연이다. 회미장은 거들 뿐. 어렵게 서까래를 노출하는 쪽으로 결정을 했는데, 서까래에 힘을 주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내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더 어렵게, 더 어렵게 공사를 해달라는 쪽으로 요구하는 셈이었다.
서까래 사이를 개판으로 막는 건 비교적 간단하다(일 자체가 쉽다는 뜻은 아니다. 치받이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일 뿐). 치받이를 해서 회미장을 하는 건 아주 다른 일이다. 일단 서까래 사이를 흙으로 채울 때부터 아주 신경을 써야 한다.
흙마감이 고스란히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릴 때와 작업 방식이 다르지 않다. 공사하는 분들이 목을 한껏 뒤로 꺾어 흙을 채워야 했다. 어디 흙뿐이랴. 흙을 다 바른 뒤에는 하얀색으로 회칠을 더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수축과 팽창은 나무만의 일이 아니다. 흙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천장의 흙이 조금씩 떨어질 거라고 했다. 물론 후두둑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간혹 먼지보다는 좀 큰 입자들이 자고 일어나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보게 될 거라고 했다.
먼지에 매우 민감하고, 우리집 청소를 도맡아 하고 있는 남편이 이 순간에 잠깐 멈칫, 했다. 멈칫, 하는 그를 보며 나도 잠깐 멈칫, 했다. 하지만 다시 올려다본 서까래의 물결은 우리를 눈멀게 했다.
그렇게 천장의 공사가 마무리 된 날. 나는 뒷날의 후회는 나중 일일뿐, 나의 선택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천장은 아름다웠다. 매우 정교하게, 섬세하게 마무리된 이 아름다운 천장을 이 집에서 누리며 살 걸 생각하니 그저 좋았다.
해가 뜰 때도, 질 때도 아름다울 것이다. 졸음에 겨워 잠이 드는 순간에도 이 천장을 바라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 처음 보는 것도 이 천장이 될 것이다. 도열한 서까래를 보고 있자니, 이 집에서 보내게 될 우리의 날들이 행복하기를, 이 집에서 만들어질 혜화1117의 책들이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한층 더 크고 깊어졌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