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경찰은 고양 저유시설 화재 발생 이틀 만에 화재 원인을 풍등이라고 규정하면서 풍등을 날린 피의자 A씨(27, 스리랑카)를 전격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언론 또한 이를 받아 보도하면서 평소 듣도 보도 못한 '풍등'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고 있는 형국이다.
다음날인 10일, 검찰(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이로써 A씨는 긴급체포된 지 48시간 만에 풀려났다.
하나 하나 따져보자
저유시설의 탱크 폭발이 풍등 때문이라는 경찰의 발표는 화재 원인의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의구심을 낳고 있다. 풍등이 불씨가 됐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이미 제작 판매돼 어린이 놀이기구로 활용되고 있는 풍등을 재미삼아 날렸다고 하여 형법상 중실화죄의 성립요건이 성립 가능한지 우선 의문이다.
이번 수사 결과 발표에 있어 더 큰 문제는 화재 원인을 불씨로 한정한 데 있다.
화재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요인의 화학적 반응에 의해 발생한다. 타는 물질(가연성)이 있고 불씨(점화원)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공기(산소)가 있어야 한다. 경찰이 지목한 불씨가 풍등이라고 가정하자. 자연 대기 중이라 공기 또한 존재한다. 나머지는 타는 물질인데 위험물이 폭발한 걸로 보아 유증기 또한 존재 했음이 분명하다.
알고 보면 불씨를 제공한 풍등과 산소를 함유한 공기 그리고 유증기를 내뿜는 위험물 등이 모두 화재의 원인이 된다. 이 세 가지 요인이 반응해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재 원인 조사의 타당성은 화재 인자 중 어느 것을 포함하고 배제해야 하는가 선택의 정당성에 달려 있다. 여기서 선택의 가늠자는 인자가 작위인가 부작위인가, 즉 자연적인가 인위적인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이 기준에 대비해 보면 첫째, 불씨의 제공은 인위적이다. 따라서 화재의 원인 인자로 보아 타당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공기의 존재는 자연의 상태에 속하므로 배제하는 것이 온당하다. 나머지는 가연성 물질인 유증기의 판단이다.
유증기는 위험물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질이긴 하지만 그로 인한 위험물질이기 때문에 소방관계법 중 위험물 안전관리법에 의거해 철저히 통제되고 안전하게 관리 유지돼야 한다. 따라서 인위적 인자에 속한다.
이 두 가지가 화재의 원인으로 검토됐어야 한다. 그런데 경찰은 성급하게 '불씨'만을 원인으로 지목해 발표했다. 이 또한 형법상 중실화죄가 구성되려면 300미터 인근에 저유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유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저유시설에는 유증기가 발생하고 있고 상시 발생하는 유증기는 안전하게 관리 유지되지 않으며, 거리 또는 날씨와 상관 없이 누구라도 불씨의 행위만으로 화재 폭발이 있을 것으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그것까지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검찰은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경찰의 일방주의 화재 조사권을 경계한다
경찰이 발표한 화재 원인은 또 다른 면에서 문제가 있다. 발표 형식에 있어서 소방을 배제하고 일방으로 공표했기 때문이다.
화재를 전문으로 하는 소방과 조사 결과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은 화재 조사와 수사를 소방이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다만, 범죄와 연관이 있는 화재는 경찰과 공조해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모든 사고조사에 있어 사법권이 개입하고 있다. 사법권 만능주의가 아닐 수 없다. 시급한 개선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주환씨는 소방공무원으로 33년을 근무하고 서울소방학교 부설 소방과학연구소 소장직을 마지막으로 2014년 정년퇴직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