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중한 빛을 얻었습니다."
필리핀 바박 종합학교(Babag Integrated School) 교사 미아(Mia) 선생이 지난 5일 메일을 보냈다. 그는 "태양광 에너지란 무엇이며,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교육할 수 있게 됐다"라며 "한국 학생들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태양광 에너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었다"라고 전했다. 지난 9월 한국 대학생들이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한국 대학생 30명은 9월 7일부터 한국전력공사(KEPCO)가 주최하고 에코피스 아시아(Ecopeace Asia)가 주관한 6박 8일 필리핀 KEPCO 대학생 환경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현지 사전 조사 등은 공정여행 단체인 공감만세 (Fair Travel Korea)가 협력했다. 바박 종합학교는 필리핀 세부(Cebu) 국제공항에서 산간고속도로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바박 산(Mt. Babag) 중턱 바박 바랑가이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랑가이'는 우리로 치면 읍, 면, 동에 해당한다.
세부섬은 필리핀 대표 관광지답게 스페인 대성당과 고대 사원,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름다운 섬들로 유명한 곳이다. 그에 따라 중심부 세부시는 24시간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반면 산 중턱 바박 마을의 전력 사정은 많이 부족하다. 이곳 주민들은 산지를 개간해 꽃을 키워 도시로 납품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 저소득층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시설이 낙후돼도 이러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 바박 종합학교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이 있으며, 21개 교실에서 743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교실이 턱없이 부족해 2부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그나마도 유치원과 초등학교 2, 3학년이 함께 쓰는 교실은 너무 낡아 대나무로 된 벽면에서 빗물이 새어 들고 군데군데 구멍마저 나 있었다.
바박 종합학교 글레세리아 봉하노이(Gleceria Bonghanoy) 교장 선생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급식을 해 주고 싶어도 재정이 안 된다"라며 "점심시간에는 학생들이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와야 한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산간에 흩어진 마을이라 보통 걸어서 1시간 걸려 통학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밥 먹고 오다 배 꺼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필리핀에서 학생 한 명당 밥과 반찬 하나 나오는 급식에 대략 16페소(우리 돈 350원) 정도 든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 비용을 낼 여력이 안 되고, 학교 측은 전기요금 등을 내야해 재정적으로 여의치 않다. 에코피스 아시아 이태일 사무처장은 "필리핀 세부섬 학생들과 주민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에너지 소외계층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필리핀 환경봉사 활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태양광 패널 등을 조립해 시간당 900W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했다. 30W LED 전등 30개를 밝힐 수 있는 전기를 만들어 내는 용량이다. 태양광 발전 장비는 내구성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 갔다. 이 때문에 통관에 애를 먹기도 한다.
태양광 패널 등을 현지에서 구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대부분 중국 등에서 수입한 저가 시설로 효율이 높지 않고, 또 장비별로 규격이 달라 설치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한 학생들은 교실 안팎과 화장실에 LED 전등을 설치했다. 축전지를 통해 낮에 생산된 전기를 보관했다가 해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는 시설이다.
330㎡ 넓이 운동장에도 태양광 투광등을 달아 야간에도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빗물이 새고 벽에 구멍이 난 유치원 교실은 벽을 콘크리트로 포장하고 페인트칠도 해서 아예 새로 만들었다. 또 바박 종합학교 학생들 대상으로는 에너지 키트를 활용한 친환경 에너지 교육, 에코백을 활용한 환경교육, 팬플룻을 이용한 음악교육 등을 실시했다.
태양광 발전기 및 교실 준공식에서 글레세리아 교장은 "세부지역에서 태양광 발전기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학교는 우리 학교가 유일하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앞으로 이 시설이 우리 학교에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전기요금을 줄여서 아이들 급식을 챙겨 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현지 환경봉사 활동에 참여한 임진관 학생은 "우리 스스로 계획하고 모든 작업을 다 했다"라며 "힘들었지만, 빛으로 가득한 학교 모습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범수 학생은 "고마워하는 아이들과 선생들의 진심이 우리에게 전해졌기에 말도 잘 안 통하고 힘들어도 이 모든 일을 기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