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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노벨상 많이 받는데, 우리 한국은 왜...'라는 말은 매년 10월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한국의 학계·언론계가 짚는 원인의 허구성, 일본 현황, 그리고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11월 1일과 2일 이틀 4회에 걸쳐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이전 기사] 
①'한국이 노벨상 못받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환상
②노벨상 많은 일본, 왜냐면

앞선 기사에서 일본은 물론 그동안 노벨상을 가장 많이 배출했던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대규모 경제와 산업의 힘에 근거한 고등연구 클러스터의 건설, 그리고 이를 통한 과학연구 차원의 규모의 경제 실현을 들었다. 그리고 고등연구 클러스터를 산업경제와 단단히 연결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등연구 클러스터'를 만들어서 과학기술 연구의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는 것, 그리고 이것을 복수의 산업경제 기반과 결합시키는 것, 이 과제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전세계 많은 나라들이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대규모 국가들이 노벨상을 싹쓸이 하는 것은 이것이 뜻만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제의 달성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리고 이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일본의 노벨상 빅뱅이 제기하는 세 가지 수수께끼에 대해 답해 보자. 

[수수께끼 하나] 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국내파인가
 
 지난 2010년 노밸화학상을 수상한 아키라 스즈키(사진 맨 왼쪽)와 에이치 네기시(사진 가운데).
지난 2010년 노밸화학상을 수상한 아키라 스즈키(사진 맨 왼쪽)와 에이치 네기시(사진 가운데). ⓒ wiki commons
  
첫 번째로 일본의 노벨상 빅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수수께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부분 국내파이냐'는 것이다. 대학 학부도 일본에서 나오고, 박사도 일본에서 취득하고,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도 대부분 일본에서 이뤄낸 것이다. 대학교 교수라고 하면 대부분이 해외에서 공부하고 오는 것이 상례인 우리나라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것이 수수께끼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두 번째 기사에서 인용했던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들은 생애를 통틀어 여러 연구기관을 오가지만 나라는 잘 바꾸지 않는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는 1994년에서 2014년간 과학 계열 노벨상을 수상한 모든 수상자들의 박사 학위 취득 당시의 소속 기관,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을 산출했을 당시의 소속 기관, 그리고 노벨상을 받았을 당시의 소속 기관의 세 시점을 파악해서 이 세 시점의 소속 기관들이 같았는지 달랐는지를 검토해 봤다.

이 세 소속기관이 모두 같은 경우는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반면, 세 소속기관이 모두 다른 경우는 36%였다. 셋 중 하나라도 다른 경우가 54%였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연구 뿐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기관간 이동성을 조사한 다른 연구 결과들을 봐도 전반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은 소속 연구기관을 바꿔가며 연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연구자들의 이동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반대로 막스 플랑크 연구소 연구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라를 바꿔서 다른 연구기관으로 옮긴 사례를 확인해 보니 전체 수상자의 77%가 한 나라에서만 쭉 연구를 했다. 2015년에 나온 영국 브리티시 카운슬의 조사 결과를 봐도 1901년부터 2014년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860명 중 해외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조금이라도 수학했던, 즉 해외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은 131명, 대략 15%에 불과했다. 바꿔 말하자면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들은 주로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다른 연구 클러스터 간에 자리를 옮겨 다니며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 조사 결과는 창의적인 연구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서로 분리 독립된 연구 클러스터들은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시각과 연구자 양성 체계를 갖게 된다. 연구자가 한 연구 클러스터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그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론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같은 분야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시각과 방법론을 가진 사람들이 뒤섞일 때 뭔가 새로운 시각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의 추구는 국경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나라를 바꿔서 완전히 다른 문화권, 언어권으로 옮기게 될 경우에는 자칫 득보다 실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연구자들간 긴밀한 의사소통이 창의성의 중요한 기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둘] 왜 2000년대 들어 일본의 노벨상이 빅뱅했나

일본의 노벨상 빅뱅이 제기하는 두 번째 수수께끼는 왜 2000년대 이후에나 와서야 갑자기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가 폭증했냐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경제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고등연구 기관이 바로 생겨나고 과학적 업적을 쏟아내지는 않는다. 경제 규모가 과학 연구기관으로, 업적으로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

미국의 사례를 보자. 경제사가들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미국은 대략 19세기말에 산업생산 능력으로 세계 최대 국가가 된다(관련 자료).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를 전수 조사한 위르겐 슈미트후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누적 기준으로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에 도달하는 것은 1956년이다. 1956년은 노벨상 수상자의 수상 당시 국적을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이다.

출생지를 기준으로 미국인 수상자를 계산했을 때는 1965년이 돼야 비로소 전체 과학 분야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누적 총합이 독일을 넘어서게 된다. 미국 국적 노벨상 수상자의 상당수가 사실은 2차대전을 피해 유럽에서 건너온 유럽 출신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3년이나 돼서야 비로소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상 3개 개별 분야 모두에서 미국인 출신 노벨상 수상자 숫자가 각각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즉 전분야에서 미국이 1위가 되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국적 기준을 적용했을 때, 미국이 세계 최대 경제를 가진 국가가 되고 나서도 약 60년 후에야 세계 최대 노벨상 배출 국가가 됐고, 출생지 기준을 적용하면 70년이 걸렸다. 그리고 전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는 데는 무려 100년 정도가 걸린 것이다.

일본이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2위 국가가 된 것이 1967년이다. 2000년 이후만을 계산했을 때 세계 2위의 과학 분야 노벨상 배출 국가는 일본이다(16명, 2016년 기준). 그러나 아직도 과학 계열 노벨상 역사 전체를 통틀어 총 누적 기준으로 세계 2위의 노벨상 배출 국가는 영국(103명)이다. 일본은 독일(89명), 프랑스(37명)보다 뒤지는 5위이다 (22명, 2016년 기준).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던 것이 벌써 51년 전이지만, 누적 기준으로 봤을 때, 일본은 아직도 자신의 경제규모에 걸맞는 노벨상 수상 규모 순위를 얻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서방 국가들이 지배했던 지난 120년간의 지식의 역사를 뒤집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일본이 산업경제 기반과 결합된 3개 고등연구 클러스터를 완성했고, 이들이 연구 업적을 산출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업적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이상, 앞으로 일본 경제의 세계 순위가 갑자기 폭락하거나 연구비가 중단되거나 이들 연구 클러스터들이 갑자기 기능 부전에 빠지는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일본의 노벨상 빅뱅은 앞으로도 계속돼 수십 년이 지나면 일부 서방 국가들을 따라잡게 될지 모른다.

[수수께끼 셋] 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국공립대에서만 나오나
 
 동경대.
동경대. ⓒ wiki coomons
 
일본의 노벨상 빅뱅이 제기하는 세 번째 수수께끼는 '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100%가 국공립대 출신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내부적으로도 의견들이 분분하다.

혹자는 국공립대가 학비가 싸서 가난한 인재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출신 고등학교를 보면, 절반 이상인 13명이 대도시 고등학교 출신들이 아니라 지방 소재 현립 고등학교 출신들이다(관련 자료). 한 마디로 시골에서 올라온 수재들인 것이다.

또 다른 어떤 교수는 국공립대 입시가 사립대 입시에 비해서 시험 과목이 많고 암기 과목도 많기 때문에 국공립대 학생들이 지식량이 많고 더 종합적인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국공립대의 저렴한 학비와 입시 과목의 복잡성이 노벨상 수상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사실 전후 일본이 고등 연구와 교육 기관을 재건하려고 할 때, 당시의 대학 행정을 책임졌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의외로 쉽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은 전국토가 미군의 철저한 폭격에 의해 만신창이가 됐다. 두 차례의 원자탄 공격과 그보다 훨씬 많은 대규모 소이탄 융단폭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일본 대도시들은 단 하나의 예외, 교토만을 제외하고 모두 잿더미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교토는 당시 미국의 전쟁장관 헨리 스팀슨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폭격 대상에서 제외).

전후 일본이 경제 재건에 나서면서 고등교육과 연구의 기관들도 재건돼야 했다. 당시 일본의 고등교육과 연구 행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지도자들은 연구기반의 재건을 위해 제한된 투자자원을 배분할 때 그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했을까? 당연히 투자효율이 가장 높은 곳에 투자 우선순위를 두었을 것이다.

전쟁 전에 일본은 고등교육과 학술 진흥을 위해 제국의 판도 안에 9개의 제국대학을 설립하고 이들 연구기관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중 7개가 일본 열도 안에, 그리고 2개가 일본 열도 밖(서울과 타이페이)에 있었다. 당시 제국대학은 일본 사회의 엘리트 코스의 상징이었으며, 교수진과 학생 모두 당시 일본 사회의 최고 엘리트들로 구성돼 있었다. 전쟁으로 고등교육과 연구의 기반이 파괴됐지만, 그 인적 자산과 명성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아주 당연하게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연구를 위한 인적 자산이 상대적으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전후의 복구 과정에서 인적·물적 투자가 집중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많이 배출한 도쿄대, 교토대, 나고야대는 모두가 구 제국대학들이다.

이들 전통 명문대학들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는 다시 기존의 명성을 재강화해 유능한 인재들을 더욱 더 국공립대로 끌어 당기는 효과를 낳았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국공립대에서만 나오고 있는 사정이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 다음 기사 '노벨상 못 받는 한국, 이렇게 바꿔야 한다'(http://omn.kr/1bx2x)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장부승 교수는 현재 일본 오사카시와 교토부 중간에 위치한 간사이외국어대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글쓴이가 2018년 10월 26일 내일신문에 기고한 칼럼, "일본의 노벨상 빅뱅의 미스터리"를 확대 보완한 것입니다.


#노벨상#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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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스탠포드대학교 쇼렌스틴 펠로우, 랜드연구소 스탠턴 펠로우를 거쳐 현재는 일본 오사카 소재 관서외국어대 교수 재직중. 일본 및 미국, 유럽,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을 상대로 정치학을 강의하고 있다.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booseung.chang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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