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하얀 국화꽃을 손에 쥐고 빨간 우체통을 찾아다닌다. 이런 일을 하는 건,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꽃만 들고 가진 않는다. 그는 매번 똑같은 공개 편지를 우체통에 꽂는다. 수많은 사람이 편지를 읽어주길 바라며. 이렇게 지난해부터 그는 꽃과 편지를 챙겨 우체통을 찾아다녔다.
그는 이효열(33) 설치미술가다. 우체통에 꽃과 편지를 꽂는 건, 이 작가의 작품 활동이다. 이름은 '국화꽃 한 송이 부칩니다'이다. 집배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스스로 기록하고 홀로 펼치는 1인 캠페인이다. 이 작가는 지금까지 70여번 우체통에 국화꽃 한 송이를 부쳤다.
지난달 31일 이 작가를 만났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 있는 카페 '뜨거울 때 꽃이 핀다'에서다. 여긴 1년 전부터 이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작업실 겸 가게다.
우체통에 꽃과 공개편지 꽂는 이유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집배원이 (최근) 10년 동안 166명입니다."
이 작가는 숫자로 집배원들의 노동환경을 알게 됐단다. 이런 소식을 듣고는 얼굴이 화끈거렸단다. 택배가 조금만 늦어도 기분이 상하고 언짢았던 자신이 떠올라 부끄러웠단다. 그래서다. 이 작가는 자신이 하는 설치미술로 집배원들의 '스피커'가 되길 자처했단다.
"평소 우리 사회에 필요한 뉴스를 챙겨본다. 그러다가 우연히 집배원들이 많이 돌아가신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놀라웠다. 그제야 집배원들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게 됐다. 하지만 언론에선 잠깐 비치고 사라지는 이야기였다. 돕고 싶었다.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가 우연히 우체통을 발견하게 됐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마음으로 읽었으면 해서 쓴 공개 편지와 사망한 집배원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을 우체통에 꽂게 됐다."
이 작가는 사라져가는 우체통에서 죽어간 집배원들을 기억했다. 공개 편지엔 뉴스에서 본 내용을 적었단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호소하는 듯한 문구도 뺐단다. 단순한 사실을 전달하는 거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단다. 이렇게 완성한 편지글이다.
우체국 토요 택배로 인해 순직하신 집배원들에게 국화꽃 한 송이 부칩니다. 지난 5년간 70명의 집배원들이 과로사 및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그중 15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부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처음 국화꽃 한 송이를 부친 곳은 서울 광화문이었단다. 그때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에는 집배원들의 농성장이 있었고 거기엔 '집배원에게 주말근무는 살인이다, 토요택배 완전폐지하라'라고 적힌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단다.
이 작가에게 물었다.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는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끔 (꽃과 공개편지가 꽂힌) 우체통을 확인하러 간다. 어느 날인가 나이 지긋한 '어머니'가 내가 우체통에 꽂아둔 편지를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편지에 적힌 글씨가 작아서 읽지 못하고 계셨다. 대신 읽으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셨다. '집배원들 고생 많지. 토요일까지 일하면 안돼'라고. 그 어머니도 집배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거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우체통 위에 꽂힌 국화꽃이랑 편지가 내가 꽂아둔 대로 있지 않았다. 우체통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그걸 보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왜냐면, 사실 이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한편으론 걱정을 했다. 사람들이, 집배원들이 꽃과 편지를 버리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걱정과 달리 버리지 않고 고이 우체통 위에 국화와 편지가 놓여 있는 걸 보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이 작가가 말했다.
"집배원들의 죽음은 하나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서 소수와 약자가 처한 상황을 보라. 소수의 강자들이 약자를 괴롭히고,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있다. 이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집배원들의 죽음, 비정규직의 죽음 등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반복해 나타날 것이다. 집배원들의 말에, 소수와 약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이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10년간 집배원 166명 사망
최근 10년간(2008~2017년) 166명의 집배원이 목숨을 잃었다.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민간 전문가 등 10명으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단장 노광표, 이하 기획추진단)이 조사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근무 중 교통사고 25건, 자살 23건, 뇌심혈관계질환 29건, 암 55건 등이다. 기획추진단은 집배원이 소방관보다 직무 스트레스가 더 높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배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2052시간)보다 693시간 많았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삼으면, 87일을 더 일한 것이다. 하루 평균 출근에서 퇴근까지는 11시간 6분이 걸린 것으로 조사됐으며 휴식 시간은 34.9분이었다.
이에 기획추진단은 지난달 22일 7대 정책권고안을 채택해 발표했다. 내용은 이렇다.
▲ 과중 노동 탈피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인력 증원 ▲ 토요근무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 노력 ▲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 ▲ 집배 부하량 시스템 개선 ▲ 조직문화 혁신 ▲ 집배원 업무완화를 위한 제도 개편 ▲ 우편 공공성 유지와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재정확보
같은 날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졌다. 배달 업무를 마치고 우체국으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진주우체국의 한 집배원이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고발생 3일 만이었다.
이날 집배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기획추진단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우정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라며 "집배원 노동강도 설문조사, 신체부하량 측정, 건강영향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권고안 이외에도 개선 방안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