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은 '국민연금의 역진성'을 지적하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고소득층일수록 국민연금 순혜택이 큰 것으로 밝혀졌다. 순혜택이란 연금총액에서 납부 보험료를 뺀 금액이다. 국민연금공단 자료 분석 결과, 가입기간이 40년일 때, 100만 원 소득자 순혜택은 1억 4천만 원이다. 최고소득자(468만 원) 순혜택은 1억 9천만 원이다. 격차가 5천만 원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혜택 차이는 최대 1억 5천만 원 까지 벌어질 수 있다. 노동시장 현실에서는 고임금 노동자일수록 장기 고용되고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단기 고용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8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
국민연금 역설, 정말 그럴까?'(http://omn.kr/1ay8s)는 윤 의원실 주장을 반박했다. 저소득층일수록 높은 수익률을 근거로 필자인 서상교씨는 국민연금이 저소득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연금 역설, 정말 그럴까?' 라고 질문한다면, 답은 여전히 '그렇다'이다.
고소득층은 원금도 못 찾는 국민연금? 개념 오류가 분석 오류로
서상교씨 글에는 중요한 개념 오류가 있었다. '순혜택'을 '수령액'으로 혼동했다. '수령액'과 '순혜택'은 서로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둘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수령액' 은 가입자가 받는 연금총액이다. '순혜택' 은 수령액에서 '납부 보험료를 뺀' 금액이다. 다시 말하면, '순혜택'은 낸 돈은 제외하고 추가로 얻는 돈의 총 규모다.
이러한 개념 오류 탓에 분석에서도 오류가 발생했다. 서상교씨 글에 인용된 <표1>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수익률은 매우 높다. 반면 고소득층의 수익률은 100% 미만이 되어 납부원금을 못 찾는 꼴이었다.
이러한 분석은 심대한 오류이다. 몇 십년간 착실히 납부하고 원금 회수도 못 하는 게 사실이라면, 국민들의 불만이 폭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다룬 기사는 여태껏 본 적 없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상교씨는 연금공단에서 일한다. 전문가도 연금 분석에서 오류를 범했다. 연금이 얼마만큼 어려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류를 바로 잡아 순혜택, 수령액, 수익률을 다시 산출하면 <표2>와 같다. 국민연금은 고소득층도 수익률이 164%~181% 사이다. 모두 100%를 초과한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운영한 제도였기 때문에 수령액이 납부한 원금보다 적을 수 없다.
순혜택? 비율 아닌 '절대금액'을 봐야
물론 <표2>에서도, 저소득자(100만 원)의 수익률은 최고 400%~423% 사이다. 동일한 조건의 최고소득자(468만 원) 수익률 181%~192% 보다 월등히 높다. 비율만 보면 저소득층이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비율'이 아닌 '절대 금액'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표3>에서 가입기간이 동일할 때, 최고소득자와 100만 원 소득자의 순혜택을 비교해보자. 어느 경우에서도 낸 보험료보다 추가로 받는 '순혜택'은 최고소득자가 많다. 수급기간 25년 기준, 가입기간 40년 일 때, 순혜택 차이는 무려 5천만 원이다.
고임금일수록 장기근속인 점 감안하면 순혜택 격차 최대 1억 5천
국민연금 가입자의 순혜택은 소득과 가입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실제 노동시장 현실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가입기간이 소득에 비례한다. 고임금 노동자일수록 장기근속 가능성이 높다. 연금 가입기간도 길다. 반면,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단기 근속 가능성이 높다. 연금 가입기간도 짧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소득에 따른 실제 순혜택 격차는 <표4>에서 굵게 표시된 대각선 형태를 띤다. 100만 원 소득자는 10년 가입하고 평생 3,236만 원을 추가로 얻는다. 반면 40년 가입한 최고소득자는 평생 1억 8,594만 원을 추가로 얻는다. 순혜택 격차는 최대 1억 5,358만 원까지 벌어질 수 있다.
왜 고소득자일수록 순혜택이 클까?... 가입기간 길수록 많아지는 균등급여
고소득자일수록 순혜택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연금의 설계구조 때문이다. 연금급여는 균등급여와 비례급여로 구성된다. 균등급여는 가입자 전체 소득 평균에 연동된다. 비례급여는 가입자 개별 소득에 연동된다. 소득이 높으면 보험료를 많이 내지만 급여도 많이 받는다. 비례급여로 보험료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원금 외에 추가로 얻는 '순혜택'은 균등급여 몫에 달려있다.
균등급여는 가입기간이 길수록 많아진다. 결국 국민연금은 가입기간이 긴 고소득자가 순혜택을 더 얻는 제도다. 더욱이 고소득층일수록 수명이 길기 때문에 연금을 받는 기간도 길어진다. 순혜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왜 이렇게 역진적일까? 두 가지 근본적 이유
첫째, 초기에 국민연금 제도가 '저부담 - 고복지'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에서 많은 금액을, 오랜 기간 내는 가입자에게는 '저부담-고복지' 효과가 증폭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윤 의원실이 밝힌 바에 따르면, 국민연금 평균수익비는 2.6배다. 누구나 100원만 내도 260원을 받을 수 있다. 160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 부분이 바로 미래세대의 부담이다. '용돈연금' 타령을 하며 국민연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미래세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떠넘기는 것으로 귀결된다.
둘째, 국민연금제도가 노동시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국민연금제도 안에 그대로 투영되어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국민연금 제도의 역진성을 증폭한다. 고임금+고용안정 노동자와 저임금+고용불안정 노동자는 국민연금제도 혜택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종합하면 국민연금은 고소득층에게 더 유리하다. 그 결과 젊었을 때의 노동시장 격차는 노후에 완화되기보다 더욱 심화된다.
역진성 완화와 세대 간 연대 실현할 연금모델은? 다층형 연금체계
국민연금만으로는 국민연금이 갖는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한편으로 미래 연금모델은 세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계층 간 형평성 확보, 미래세대에 대한 과도한 부담 완화, 원래 목적인 노후소득보장 달성이다.
이를 위해 다층형 연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국민연금 외에도 법정연금인 퇴직연금과 기초연금을 강화해 다층적으로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모델이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소득기준 하위 70% 노령층에게 지급되고 있다. 기초연금의 지급액을 늘리려면 재원확보가 필요하다. 현재 거의 모든 퇴직자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새로운 연금모델에서는 퇴직금을 정기적으로 일정한 금액을 받는 연금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미래세대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소득하위층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중상위 계층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적극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행 국민연금은 계층적으로 역진적일 뿐만 아니라, 후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다층형 연금체계로 개혁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