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까지, 나는 거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갔다. 누가 종교를 물어오면 주저없이 말할 수 있었고, 때로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모태신앙'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답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주 약간은, 왠지 우쭐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단 한 순간도 교회에 가는 것을 좋아한 적이 없다. 주중에 학교에 가듯 주일엔 교회에 가야 하는 것이라고 부모님께 배웠고,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을 뿐. 어느 날 부모님께서 선택의 권한을 주셨고, 그날 이후 교회는 내 삶에서 멀어졌다.
이제 내 삶에서 종교생활을 한 시간보다 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다. 종교를 찾을 생각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신앙이 없을까? 누군가에겐 고민없이 답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질문일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다. 함께할 때나 멀어졌을 때나, 종교는 내게 좀 복잡한 존재다. 그 기저엔 불안이 깔려 있다.
필 주커먼의 <종교 없는 삶>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서 탈종교화를 주목한다. 오늘날 가장 활발한 종교 활동이 바로 무종교라는 것이다. 1950년대 미국인들 가운데 종교가 없는 사람은 5%도 되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계속 많아져 지금은 30%에 달하고,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책은 무종교인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많은 이들이 종교 없는 삶은 공허하며 본질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없이 죽음을 어떻게 다루며, 삶의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할지, 도덕과 윤리는 어떻게 키울지 등을 의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답을 찾는다.
"이를 위해 나는 미국의 무종교인들이 어떻게 지내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지,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도 없이 어떻게 죽음과 대면하는지, 위안을 주는 종교적 믿음도 없이 어떻게 삶의 비극적인 면을 직면하고 고난들을 마주하는지, 교회, 회당, 절, 사원의 벽 너머에서 어떻게 공동체를 찾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는지, 요컨대 종교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삶을 헤쳐 나가는지 탐구할 것이다." (p26)
무종교라고 해서 모두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확실한 무신론자, 그저 종교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 모호한 사람 등 다양하다. 저자는 각기 다른 입장은 물론 다양한 인종, 민족 집단, 연령, 직업, 출신 계층을 대변하는 각계각층의 무종교인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하고 그 삶을 연구한다.
먼저, 저자는 종교와 도덕의 상관 관계를 고찰한다. '세속주의(secularism)'란 말을 만든 홀리요크에 따르면 세속주의의 근본원칙은 세 가지라고 한다. 하나, 물질적인 수단들로 현세의 삶을 향상시킨다, 둘, 과학은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섭리다, 셋, 현세의 선은 좋은 것이며 이 선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무엇이 '선'일까? 종교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이 답은 아주 간단하다. 선은 바로 황금률이다. 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들을 대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세속주의적 도덕의 기반이다. 타인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 타인들을 돕거나 지원해 주면 자신도 그런 지원이나 도움을 얻을 것이라는 점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중략) 무종교적 도덕성은 모두 공감에 의한 호혜라는 황금률의 기본적이고도 간단한 논리에서 직접적으로 자연스럽게 비롯된다."(p37)
이러한 황금률은 세속주의 뿐만 아니라 불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선을 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인간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공감 능력뿐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신의 존재는 도덕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종교와 도덕의 상관관계에 이어, 저자는 종교와 좋은 사회의 연관성을 조명한다. 책엔 무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나라일수록 종교적인 나라보다 더 부유하고, 평화적이며, 안전하고, 언론 자유의 수준이 높고, 위생적인 등 긍정적인 지표를 가진 실례들이 제시된다.
그러나 저자는 무종교적 성향과 좋은 나라의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성과 국가의 문제를 직결시키는 것을 끔찍할 정도로 단순하고 환원적인 시각으로 비판한다. 다만, 신을 믿어야 사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거나 무종교성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책은 이외에도 종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 종교 없는 부모들의 양육, 무신론자를 위한 공동체, 종교 없이 삶의 고난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죽음 앞에서 종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일지 고찰하고 있다.
책의 부제는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워졌다'. 저자는 무종교인들에게 신이나 신도회가 없어도 삶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나 로드맵을 제공해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종교가 없는 삶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실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종교인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저자는 행복한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무종교인인 이웃과 동료, 친지들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즉, 무종교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제거하고,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 인문주의자, 회의주의자 등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길 바라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적 삶을 비판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밝히고, 이에 벗어나지 않는다. 나로서는 무종교성이 지닌 긍정적인 시각과 비전이 실려 있어 새롭고, 반가웠다. 물론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각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독자에게는 행여 불편하게 다가가지는 않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는 종교가 있든, 없든, 모든 대화가 열려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혐오와 불신 없이 서로의 삶을 존중한다면, 그 어떤 대화도 가능할 것이다. 종교가 없는 이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혹은 종교 없는 삶이 왠지 불안하다면, <종교 없는 삶>은 좋은 독서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