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아내의 책장에 새로운 책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페미니즘 혹은 여성을 다룬 책들이 많아졌습니다. 젠더 의식이 상당히 부족했던 제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남성으로서 탐험해야 할 새로운 세계가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내의 책장 탐험을 통해 세계를 확장해가려는 의미에서 [아내의 책장탐험]이라는 이름으로 관련 서평을 써볼까 합니다. -기자말
가슴 속 자신만의 상처와 아픔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나름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무던하게 살아온 인생을 돌아봐도 '행복한 인생'보다는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때문에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 정도야 다들 겪는 거 아닌가'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엔 보통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 인생도 있습니다.
아픔이 너무 커서 과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공감할 수 있을지, 아니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을 할 만큼 아픈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할 때조차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은 어두웠던 과거지만 힘겹게 힘겹게 <헝거>라는 책을 통해 자신을 내보인 작가 록산 게이의 삶이 그렇습니다.
"이 책은 이제까지 작업했던 그 어떤 책보다 쓰기 어려웠다. (중략) 나 자신과 내 몸이 살아온 인생을 직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그래도 꾸역꾸역 한 자씩 써 내려간 이유는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작업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내 몸에 대한 고백록을 쓰면서, 내 몸에 대한 이런 진실들을 당신들에게 털어놓으며 나의 진실, 오직 나만 아는 나의 진실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람들이 그다지 듣고 싶어하지 않는 진실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듣기 불편할 때도 있었다. (중략) 여기에서 당신에게 나의 강렬한 허기의 진실을 펼쳐 보였다. 마침내 여기에 연약하고 상처받고 지독하게 인간적인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본문 339쪽)
록산 게이는 열두 살 때 또래 남자애들에게 강간을 당한 이후 자신의 몸과 그 몸이 살아내야 했던 삶이 얼마나 엉망진창이 돼 버렸는지, 그 진창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며 살아왔는지를 진솔하게 이야기합니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겪은 저자는 그와 같은 폭력을 피하기 위해 뚱뚱해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비대해지면 남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자는 안전을 위해 거대한 몸을 갖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록산 게이를 사람 자체로 보지 않고 그녀의 몸을 먼저 보고 판단했습니다. 그녀에겐 다시금 파괴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나 인간으로서의 가치, 특히 여성으로서의 가치가 외모를 기준으로 판단되는 문화 속에선 강간과는 또 다르게 저자를 파괴해갔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후 많은 세월이 지났어도 그 과거는 여전히 록산 게이의 몸에 새겨져 있어 항상 그녀를 괴롭혔고, 현재의 몸은 항상 비만이라는 무절제와 나약함의 상징으로 비난받았습니다.
대학 2년을 마쳤을 때 록산 게이는 인터넷 채팅에서 알게된 남자를 만나러 샌프란시스코로 떠납니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을 찾아 떠났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폰섹스 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몇 달을 내키는대로 살다 또 인터넷에서 만난 여성과 함께 미네소타로 옮겨가 지내기도 합니다. 결국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상의 세계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어 나를 잊는 편이, 내 삶을 추스르려 노력하거나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는 것보다 쉬웠다. 여전히 망가진 상태였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틀어져버렸고 다시는 옳게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을 때의 그 자포자기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나 노력없이 사는 것이 좋았다."(본문 121쪽)
이처럼 스스로를 '실종'시켰던 시절들을 뒤로하고 록산 게이는 삶을 추스리기로 합니다. 대학에도 다시 가고 글쓰기도 계속합니다. 서른 살이 됐을 때는 박사 학위를 시작하게 될 정도로 회복돼 갔습니다.
하지만 피부색처럼 절대로 숨길 수 없는 뚱뚱한 몸으로 살아야 했던 록산 게이는 통제력 없는 자신의 나약함, 자신의 몸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부정적 감정으로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외적으로는 자신의 몸을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시선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거대한 록산 게이의 몸을 보며 그녀가 절제하지 못하고 나약한 의지를 가졌을 것이라 여겼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저 역시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이어트 광고, 연예인들의 몸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 외모지상주의 등은 미국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 정체성의 우선 순위에 놓여 있습니다. 록산 게이의 고백을 읽으며 한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의 사이즈만을 보고 무심코 판단해 버렸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록산 게이는 40대가 돼서야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자신을 혐오하게 됐던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길거라고 추측해왔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자기혐오에 빠져 있기 보다는 "모든 불쾌한 소음을 차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때와 20대 내내 저질렀던 실수를 용서하기로 노력하는 편이, 그 실수를 저지른 나에게 동정심을 갖는 편이 훨씬, 훨씬 더 쉽다"라는 것을.
그녀가 스스로를 추켜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중의 하나는 문신이었답니다. 자신의 몸에 자신의 선택을 표시함으로써 자기 몸의 주인이 돼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덜 수치스러워하려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몸과 화해하며 회복해 갔습니다.
또한 요리를 하면서 자신이 좋은 음식과 보살핌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쁨을 얻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록산 게이는 치유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조금씩.
"나의 슬픈 이야기 대부분은 이제 과거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참지 않는 것들이 생겼다. 혼자라는 건 짜증 나는 일이지만 나에게 끔찍한 기분을 안겨주는 사람과 같이 있느니 혼자 있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나의 가치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 사실을 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나의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이토록 슬픈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이 싫어도 이 이야기들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까지나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될 것이지만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깨달을수록, 나의 가치를 깨달을수록 그 짐은 가벼워질 것이다."(본문 280~281쪽)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자가 과거의 상처에서 말끔하게 치유돼 현재는 성공적인 삶의 궤도에 오른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빛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은 여전히 회복해가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을 어떻게 거쳐오고 있는지를 말하는 책이어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마도 록산 게이와 유사한 아픔을 겪은 여성들이 많을 것인데, 그들이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깊이 공감하며 함께 치유되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뚱뚱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왜 저 지경이 될 때까지 그냥 둔거지?' '의지가 없거나 게으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긴 것이었습니다. 록산 게이가 말한 것처럼 "뚱뚱한 사람들을 괴롭히면 살을 빼게 될 거라고, 몸 관리를 하게 될 거라고"라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몸 너머에는 록산 게이의 삶처럼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든 아픈 이야기가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외모를 보고 너무나 쉽게 그 사람과 몸을 동일시해 버리는 방식, 그 몸을 바라보는 비난의 시선에서 벗어나 먼저 그 사람의 역사를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록산 게이가 자신의 몸을 가지고 살아왔던 경험을 이야기한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이 그 몸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내 몸과 이 몸으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던 경험은 나의 페미니즘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바꾸었다. 내 몸에서 산다는 일은 다른 사람을 향한 공감과 동정의 범위를 넓혀주고 다른 사람들 몸의 진실에 대해 알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다양한 신체의 종류에 대한 (용인을 넘어) 포용과 인정의 중요성을 확실히 가르쳐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몸의 존엄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 더 신중한 단어인 사이즈란 말을 사용하는데, 나는 사이즈가 좀 되는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그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몸이 불러오는 혼란과 수치와 도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존중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 몸은 회복 탄력성이 크다. 내 몸은 모든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다. 내 몸은 존재감이라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 몸은 강력하다."(본문 332쪽)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