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 청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임박했다. 하지만 이들과 함께 근무했던 판사들이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연이은 압수수색 영장 청구 기각으로 비판받았던 법원이 또 다시 공정성을 의심받을 분위기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다음주 초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전직 대법관의 첫 구속영장 청구 사례다. 검찰은 재판개입·법관사찰 등 혐의가 중대한데다, 이들이 수차례 진행된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기 때문에 신병 확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혐의가 상당 부분 인정돼 지난달 구속됐다.
두 전직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사이의 '중간다리'로 사법농단 의혹에 깊이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각각 2014년, 2016년 연이어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검찰은 이들이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 효력정지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재판에 개입하고 ▲ 양승태 대법원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법관들을 사찰해 탄압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맡을 수 있는 다섯 판사 가운데 3명이 두 전직 대법관 또는 사법농단 의혹에 얽힌 이들과 근무한 이력이 있다. 이언학·박범석·허경호 부장판사다.
영장판사 5명 중 3명이...
이언학 부장판사는 2009~2010년 박 전 대법관이 서울고등법원 재판장으로 근무할 당시 배석판사였고, 박범석 부장판사는 두 대법관이 대법원에서 근무할 시기에 재판연구관으로 일했다. 허경호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과 공범 의혹을 받는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2011~2012년 배석판사였다.
반면 올해 영장전담판사로 추가 보임된 명재권·임민성 부장판사는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 경력이 없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관은 재판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사건을 스스로 '회피'할 수 있다. 재판부 소속 판사와 사건 변호인의 연고가 있는 경우 법관이 종종 재배당 신청을 하기도 한다. 지난 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을 맡은 변호인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 소속 판사가 고등학교 동문이자 대학 동기인 게 확인되면서 항소심 재판부가 바뀌었다.
세 영장전담판사들이 회피하지 않고 사건을 배당받을 경우, 검찰이 재판부를 바꿔 달라고 '기피'를 신청할 수도 있다. 형사소송법 18조는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 등의 사정이 있으면 검사나 피고인이 재판 기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법원은 재판 배당을 다시 판단한다.
판사 출신 서기호 변호사는 "사법농단 압수수색 영장을 수차례 기각해 온 이언학·박범석·허경호 부장판사의 경우 (두 대법관들의 영장실질심사도) 불공정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이번 사안이 중대한 만큼 세 법관이 회피하지 않으면 검찰도 기피 신청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수사에도 집중하고 있다. 수사팀은 지난 28일 양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만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며 조만간 김 변호사를 조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