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이라는 표현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대법원의 입장이 갈렸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9일 보수 인사들이 배우 문성근씨를 '종북좌파'로 일컬으며 비난한 행위를 명예훼손으로 인정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 판단처럼 명예훼손 또는 모욕적 표현에 의한 인격권 침해로 인한 불법행위 성립된다"라고 판단했다.
탈북자 출신인 영화감독 정아무개씨 등 5명은 지난 2011년 2월부터 2013년 7월까지 블로그나 SNS 글을 통해 문씨와 그가 결성한 시민단체인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종북좌파', '좌익혁명 조직', '북괴문화전략' 등이라며 비난했다.
문씨는 해당 단체의 운영규약에 "대한민국이 99% 서민을 위한 민주진보정부 정치구조로 개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함을 근거로 정씨 등을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검찰로 사건을 보냈다. 그러나 검찰 시민위원회는 문씨가 공인이라는 이유로 '시각차에 따른 개인 의견'이라고 결론 지었고, 검찰은 이들을 기소하지 않았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민사소송은 1심부터 일관되게 문씨의 손을 들어줬다. 정씨 등은 검찰이 '혐의없음'으로 처분했기 때문에 손해배상 청구가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항소심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 사실만으로 이들의 행위가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볼 수 없다"며 "각 100~500만 등 총 2200만 원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했다. 우리나라의 남북 분단 현실에서 북한을 비판 없이 추종하는 '종북'으로 지목될 경우,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크게 손상돼 개인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대법원도 하급심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이정희 부부는 공인, 종북 표현 위법하지 않다"
다만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경우는 달랐다. 지난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변희재씨가 이 전 대표와 남편 심재환 변호사를 '종북', '주사파'로 표현한 행위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관련 기사:
변희재 손 들어준 대법원 "'종북'표현은 의견표명")
전원합의체는 이 전 대표가 '공인'이라는 이유로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다. 전원합의체는 "이 사건 표현행위 당시 원고 이정희는 국회의원이자 공당의 대표로서 공인이었고, 그의 남편인 원고 심재환도 사회활동 경력 등을 보면 공인이나 이에 준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원고들이 공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변씨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대법관 5명(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이동원, 노정희)은 명예훼손을 인정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종북, 주사파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돼 온 측면도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과 항소심도 변씨가 증거 없이 (이 전 대표 부부를) 종북, 주사파로 단정하는 것은 불법행위라고 봐 1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공인 범위는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미국은 공직자는 물론이고, 고위 공직자 입후보자, 운동선수, 작가 등도 공적 인물로 인정한다. 일본도 문화인, 예술인 등을 포함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뚜렷한 기준이 없다. 형법 310조에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는 정도만 규정해뒀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3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동영상을 올린 김종익씨 사건에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당시 "지나치게 개인을 비방하는 표현은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동시에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의 공정성을 해침으로써 정치적 의사형성을 저해하게 되므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