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강제징용 재판에 관한 기밀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제공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은 이 의혹과 연관되어 있고 사법농단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7일 새벽, 서울중앙지방법은 이를 기각했지만, 이런 혐의가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충격을 줄 만하다.
김앤장은 일본 전범기업의 법률대리인이었다.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의 대리인과 은밀한 거래를 했다면,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과 불법 거래를 한 것이나 진배없게 된다. 그것도, 강제징용 재판을 놓고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게 확정적으로 드러난다면, 과연 '우리 대법원'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의혹에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건 그간 일본이 보여준 행동들 때문이다. 일본은 박정희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 같은 보수정권을 끌여들여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왔다. 그랬기 때문에 한국 내부에서도 일본의 입장을 옹호해주고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이 더욱 더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배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을 '파렴치한 나라'라고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성하고 사과하는 나라, 독일?
그런데 세계를 돌아보면 이런 나라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다. 1945년 이전에 식민지배의 가해자였던 나라들이 아직까지도 뻔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1945년 이전에 일본과 더불어 세계사를 주도했던 유럽 국가들이 바로 그런 나라들이다.
우리는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반성하고 유대인 학살 문제에 사과한 사실을 높이 평가한다. 독일의 이 같은 행동은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일본과 비교할 때 분명히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그런 독일 역시 식민지배 문제와 관련해 비판받을 것은 매한가지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독일이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을 꺾은 나라들은 미국·소련·영국·프랑스다. 이들은 1945년부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어 세계 지배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하자면 당연히 반성과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미국의 비호 때문에 굳이 반성·사과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독일은 그런 '특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허리를 굽히는 것 외에 도리가 없었을 수 있다.
거기다가 독일의 박해를 받은 유대민족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유대민족은 경제력과 두뇌를 발판으로 미국 사회의 실질적 지배층으로 활약하고 있다. 사과하지 않고서는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버텨나갈 길이 없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독일이 사과·반성을 한 것을 두고 그들의 민족성까지 칭송할 이유는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자국의 식민통치로 고통을 겪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나미비아를 들 수 있다.
나미비아는 아프리카 최남단인 남아공의 서북쪽에 붙어 있다.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다. 이 나라는 1885년부터 1915년까지 독일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독일 통일의 주역인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이곳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독일이 이 땅을 빼앗은 동기와 관련하여, 존 아일리프(John Iliffe)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집필하고 이한규·강인황이 번역한 <아프리카의 역사>는 "비스마르크는 영국의 지역적 헤게모니에 도전하기 위해 독일령 서남아프리카(나미비아)를 창설했다"고 말했다. 영국·프랑스처럼 활발하지는 않았어도 독일 역시 아프리카 지배를 목적으로 나미비아에 식민통치를 실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독일의 식민지배는 '곱게' 진행되지 않았다.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악랄한 범행이 나미비아에서도 자행됐다. 이 상황이 최진우 한양대 교수의 논문 '유럽과 아프리카의 화해의 부재'에 이렇게 설명돼 있다.
"독일은 1904년에서 1907년 사이에 수만 명(자료에 따라 약 3만 5천 명에서 11만 명)에 달하는 헤레로(Herero)족과 나마(Nama)족 주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20세기 대량학살의 최초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2013년에 한국유럽학회가 발행한 <유럽연구> 제31권에 수록.
헤레로족과 나마족은 나미비아의 11대 부족에 든다. 2008년 현재, 헤레로족은 전체 인구의 7%, 나마족은 5%를 차지했다. 2012년 현재, 나미비아 전체 인구는 217만 명이었다.
600여 만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 규모에 비하면 적지만, 나미비아 학살은 "20세기 대량학살의 최초 사례"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1904년 당시에는 상당히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독일은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배상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2004년에 유감 표명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 독일 정부는 대량학살에 대한 배상책임을 거부했다"고 위의 최진우 논문은 말한다.
2016년에 독일은 나미비아에 공식 사과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사과의 형식을 놓고 아직도 나미비아와 협상 중이다. 유대민족과의 문제는 신속히 해결한 데 반해, 나미비아와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의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침묵하는 유럽 열강... 문제 해결 더딘 이유
유대민족과 나미비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강자 앞에서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과 약자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미국을 지배하고 있는 유대민족한테 허리 숙여 사과한 것이 독일의 진심이었다면, 나미비아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 독일 역시 파렴치한 일본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독일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독일보다 앞서서, 또 독일보다 대규모로 식민지 확장을 전개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만큼도 하지 않았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이 점은 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최대 피해자인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의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최진우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유럽의 열강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고통을 가한 그들의 식민통치에 대해 반성을 하거나 사과를 했다는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식민통치와 관련해 유럽 국가가 아프리카에 사과를 한 것은 2004년 독일이 20세기 초 아프리카의 식민지 획득을 위해 제국주의 열강과 경쟁하던 과정에서 지금의 나미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자행한 대량학살에 대한 유감 표명이 전부다. 그나마 독일 정부는 대량학살에 대한 배상책임을 거부했다. 나아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식민지를 경영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사과를 한 적도, 화해를 제안한 적도 없다."
식민지배 문제에 관한 한, 일본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처럼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은, 일단은 상대방이 자기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강했다면, 나미비아가 독일보다 강했다면, 일본과 독일은 이미 예전에 허리를 숙이고 사죄의 변을 줄줄 외웠을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이 있다. 1945년 이후의 세계체제가 식민지배 청산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세 나라(미국·영국·프랑스)가 식민지배로 이익을 봤던 국가들이므로, 제2차 대전 이후의 세계에서 과거사 청산이 지연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제껏 한국에서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보수 정권의 장기집권에 있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일이다.
일본이 한국 내의 우호적 세력과 연대해 식민지배 문제 해결을 훼방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자신이 과거사를 뉘우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엔 중심의 세계체제가 과거사 청산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강제징용을 포함해 식민지배 유산을 청산하는 일은 앞으로도 하루이틀에 이뤄질 일이 아니다.
이 일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일본의 뻔뻔함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미국과 유엔 중심의 현존 세계체제가 종말에 이르러야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