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신입사원>에는 배우 한가인씨가 LK주식회사에서 계약직으로 5년간 근무하는 '미옥'으로 나온다. 그는 회장의 딸과 삼각관계가 되면서 일자리를 잃어 부당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눈물의 1인 시위를 벌인다.
이 장면이 방송된 날, 시청자 게시판에는 '나도 비정규직인데 그 아픔을 공감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단병호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도 미옥의 상황은 계약직 근론자들이 겪는 부당행위의 전형적 모습이라며 미옥을 복직시켜야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13년 전 미옥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진행형인 현실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매년 늘어만 가고 있다. 2015년 3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전년 동월 대비 10만 1천 명 늘어난 601만 2천 명을 기록했다. 2016년 8월 조사에서도 전년 동월 대비 17만 3천 명 증가한 644만 4천 명이었고, 2017년 조사에서는 654만 명, 2018년 조사 661만 4천 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임시·일용직 가운데 고용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간주한 숫자다. 무기계약직도 비정규직으로 봐야한다는 노동계 주장대로 조사하면,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비정규직의 단순 증가가 아니다. 똑같은 시간과 일을 하고도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이다. 이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끊임없는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전동차에 치여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군과 지난 11일 태안화력발전소 설비 점검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씨와 같이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기며 죽어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정규직 수만큼 비극도 늘어나는 현실
비정규직 증가의 폐단은 이뿐만 아니다. 고용불안과 낮은 임금 등은 가정경제에도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면서 가정파괴의 주범이기도 하다.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전 재산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동반 자살해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도 이 범주다.
또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수 증가 추세는 소비 위축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내수 부진도 따지고 보면 고용불안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높은 비율에서 찾아야 한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절반을 겨우 넘는 형편없는 소득은 건전한 소비마저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이는 국가 경제에 좋지 못한 영향임을 직시해야 한다.
실례로 우리 회사 빌딩 미화원 아주머니 급여를 알아보니 월 147만 8천 원으로 150만 원이 채 안 된다고 했다. 비정규직 계약직이다 보니 급여 외에 별도의 보너스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마저도 세금을 떼고 나면 급여통장에 입금이 되는 돈은 고작 130여만 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기초 생활에 필요한 최저임금과 비슷한 130여만 원의 쥐꼬리만한 수익에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살얼음판의 직장생활을 하는 미화원 아주머니에게 하루 세끼 밥만 챙겨 먹고사는 것 외에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도 거기에다 쓸 돈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증가는 저출산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혼자 살기도 버거운 저임금에서 결혼하고 집 장만, 아이까지 낳아 키운다는 것은 개념상실 아니고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정부가 저출산의 심각성을 지적할 때마다 젊은이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기업은 채용 인원을 줄여만 가고 있다. 여기에 상시 구조조정을 하고 기존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있는 기업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주도하는 소득 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도 반대하면서 인건비만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 수 증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 없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인해 발생되는 경제, 사회적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우리 사회 직무 유기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점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13년 전 미옥의 눈물을 이제 멈추게 할 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