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에서 왔는데요. 사립유치원에 아이를 보낸 한 부모가 방금 전 전화로 한 말이 생각 나 토론을 못할 정도입니다. 아이들 급식을 사진으로 봤는데 삶은 계란을 2등분도 아닌 4등분을 해서 주더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치원 학부모라고 이름을 붙이는 게 부끄럽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처참합니다."
김한메 전국유치원학부모비상대책위원장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정장 재킷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찍어냈다. 그 역시 유치원에 자녀를 맡긴 학부모였다. 사립유치원 급식 개선 및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마련된 이른바 '유치원3법'이 지난 20일 마지막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조차 자유한국당의 집단 퇴장으로 결렬되자 부랴부랴 마련된 시민대토론회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관련 기사 : 한국당의 황당한 발목잡기... '유치원3법' 처리 무산).
박용진 "한국당 하는 일,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유치원3법을 대표발의한 박용진 의원(초선, 서울 강북을)은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국당의 발목 잡기 과정을 열거했다. 누리과정 지원의 보조금 전환 포기 → 원비 교육 목적 외 사용 시 벌금 2000만 원 2년 이상 징역형에서 1000만 원 벌금 1년 이상 징역형으로 완화 → 처벌 조항 1년 유예안 제시 등 총 여섯 차례의 법안심사소위에서 좌절된 중재안들도 차례로 나왔다.
박 의원은 "학부모들이 내는 원비는 원장들에게 아이를 맡긴 값으로 준 거니까 식당 주인에게 음식값을 준 것과 같으니 어디다 쓰는 게 무슨 잘못이냐는 말을 듣고도 참고 협상하려 했다"라면서 "이제는 교육부가 할 일을 했다고 (한국당이) 법안심사소위를 파행내고 당당히 나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의 말 사이사이 객석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밖에서 천 명씩 악 쓰는 집회하고 싶었다. 근데 그게 안 되더라. 엄마, 아빠들이 바쁘기 때문이다. 원장들은 벌건 대낮에 검정 옷을 입고 5만 명을 동원한다. 여러분 모이셔야 한다. 동탄에서도, 광주에서도, 대구에서도 모이셔야 한다. 학부모들이 뭉치지 않으니 우습게 본다. 그래서 한국당이 한유총의 눈치만 보고 있는 거다."
박 의원은 "더 이상 화를 참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발의한 법이 기상천외한 법인가? 교육비 함부로 쓰면 처벌하게 하자는 것 아닌가, 교육당국은 이제 장신 차렸다, 한유총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자기가 할 일을 하고 있다"라면서 "근데 한국당은 교육부가 왜 시행령으로 (국가회계시스템 포함 및 행정처분 강화를) 공표 하느냐며 논의를 못한다고 한다, 제1야당의 도리를 떠나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현장에 있는 부모들에게 직접 국회를 압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한유총 각 지부가 한국당에게만 (압력을 넣고) 그러겠나, 우리 당 의원들도 엄청 괴롭힌다,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역할을 하겠다"라면서 "부모가 움직이지 않으면 국회에서 아이들이 함부로 취급 받는다"라고 말했다.
"법안소위 통과조차 불발... 암담했다"
"아이를 자신들의 금고처럼 생각하는 원장이 없도록 안전망을 요구하는 건데, 법안심사소위에서조차 이 법안이 통과 못했다. 암담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이날 토론 발언자로 참석한 조성실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유치원3법 협상에 대한 민주당의 초반 화력이 생각보다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조 대표는 "법안소위 소속위원들이 힘써주신 것은 알지만, 소수 의원을 제외하고는 민주당에서 정기국회 내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밀어붙이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보긴 어려웠다"라고 지적했다.
저출생 문제를 국가적 위기로 언급하면서도 유치원 비리 근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국회에도 쓴소리를 보탰다. 조 대표는 "급격한 저출생을 방증하는 것은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 앞에서 국민을 실망시킨 국회의 태도다, 아이 머릿수가 돈으로 계산되는 현실에서 저출생 해결을 기대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조 대표는 다만 "임시국회에 들어서면서 민주당이 이전보다는 힘을 가지고 주력해주는 것 같아 기대가 된다"라고 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치원3법 통과에 한국당의 협조를 기대하긴 어려운 것 같다"라며 "바른미래당과 함께 패스트트랙(상임위원 3/5 이상의 찬성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제도)을 통해 처리할 길을 찾아보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박 의원은 이에 더해 패스트트랙 처리 시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되면 90일 정도 단축할 수 있다"라면서 "전 이게 묘수라고 생각했다, 합의를 하면 좋겠지만 한국당이 침대 축구를 반복한다면 국민을 보고 가는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는 오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유치원3법 논의를 한 차례 더 이어갈 예정이다. 관건은 바른미래당이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시도에 동조하느냐에 달려있다. 박 의원은 "바른미래당의 도움 없이는 안 된다, 부담을 같이 느끼고 있다"라면서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약간 갈린다고 하는데, 결단만 해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