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에디터의 편지는 오마이뉴스 에디터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주 1회 띄우는 편지를 이메일로 받길 원하시면 기사 하단 '뉴스레터 구독하기'를 눌러주세요.[편집자말]
평양의 아침 남북정상회담 둘째날인 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주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평양의 아침남북정상회담 둘째날인 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주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상점 유리문 너머로 TV 속보를 접하고는 전쟁이 날까 겁먹었습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 소년의 이야기를 알았을 때는 어느 날 갑자기 '공비'가 쳐들어오면 어쩌나 겁먹기도 했고요. 그 시절 북한은, 북한 사람들은 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과 북이 다시 만나면서 '반공'이란 말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가깝기엔 먼 당신'도 아닌 그냥 '먼 나라' 같았습니다. 정권 교체로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뒤에도 변함없었죠.

그런데, 거기에도 '사람'이 있었습니다. 신은미 시민기자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다른 독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총 31편에 걸친 첫 번째 연재가 끝난 뒤에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글에서 만나는 북한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신 기자 본인도 북한과 그곳의 사람들을 더 알고 싶어 다시 방북했고, 또 기사를 썼습니다.

12월 20일, 다시 새로운 여행기가 시작됐습니다. 자칭타칭 '신은미 전담 편집기자' 김지현 에디터에게 새 연재 소개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사 읽기] ☞ 2년만에 찾은 신의주... 많이 달라졌구나 http://omn.kr/1fjo0

- 신은미 기자가 다시 여행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어떤 내용인가요.
"신 기자는 2012년부터 오마이뉴스에 북한 여행기를 연재해 왔습니다. 2016년 여름 북한 대홍수 피해를 돕기 위해 한국과 해외 등지에서 성금 약 4000만 원을 모아 재단을 설립하고, 쌀을 마련해 2017년 5월 중순 방문했는데요. 이번 여행기는 이 시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남북정세가 많이 풀렸다고들 하지만 북한 내부는 여전히 언론에 덜 공개됐잖아요. 2017년 기록이어도 지금의 북한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 올해는 아니었네요.
"네. 지난해 방문 이후 다시 가려고 했지만 대북제재(여행 금지 조치) 때문에 못 가고 있어요. 평창올림픽 때 방북하려고 했지만 또 무산됐고요. 여행 금지가 풀리면 바로 가겠다고 합니다."

- 김지현 에디터는 '신은미 전담 편집기자'로 불리는데, 어떤 인연인 건가요.
"어쩌다 그렇게 됐는데(웃음)... 신 기자가 자신의 북한 여행기를 남한에 공개하고 싶어서 시민기자제도를 운영하는 오마이뉴스를 택했어요. 저는 정말 어쩌다가 첫 글을 보게 됐고, 이후 6년 동안 신 기자의 거의 모든 글을 편집하게 됐습니다. 여행기만 88편이군요.

첫 글을 봤을 때는 '나 잡혀가는 것 아냐...' 했어요. 남한의 반공교육은 30대인 제게도 영향을 끼쳤죠, 지금까지도. 로동신문, 조선중앙TV 등에서 보던 북한이 아니라 일반인이 직접 보고 들은 북한 이야기라 뭔가 위험하다 싶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그때만 해도 남북 정세가 최악이었던 이명박 정부 말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연달아 글을 읽다보니 우리가 보지 못한 북 이야기라 가치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공항에서 본 풍경
공항에서 본 풍경 ⓒ 신은미
 
- 여러모로 글을 보며 놀라고 또 놀랐을 것 같은데, 가장 눈에 들어왔던 에피소드가 무엇인가요.
"첫 기사에 나오는 사진이요. '북한 사람들도 남한이랑 똑같이 근무 중에 대화하고 짝다리 짚으면서 깍지도 끼고 팔짱도 끼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북한 사람들도 사람이지만, 뭐랄까... 이곳이 공항인데 정부와 어떻게든 연관 있다면 엄청 절제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 편집하며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글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신은미 기자의 글을 바라보는 편견이 힘들었죠. 귀한 기록인데도 '기승전종북·빨갱이'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내가 본 북한은 달라', '그래도 이런 건 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가 아니라 '북이 그렇게 좋으면 북으로 가라'는 비난은 안타까웠어요. 그 편견이 축적돼 결국 '종북콘서트'란 단어가 만들어졌다고 봐요. 결국 신은미 기자는 현재까지도 한국 땅을 못 밟고 있죠."

- 미국으로 강제 출국당하는 일까지 이어진 '종북콘서트' 얘기를 안 할 수 없었는데요. 편집기자로서 어떤 심정이었는지.
"제 일 같았죠. 신 기자가 방북 경험을 소개하는 '통일콘서트'에 종북 프레임이 씌워졌잖아요. 그 콘서트의 주된 내용은 오마이뉴스 기사로 알려졌는데... 전담 편집기자로서 엄청 걱정이 컸습니다. 사제 폭탄테러까지 일어났으니 더욱 그랬죠. 다행히 수많은 사람들이 신 기자를 돕고 나섰어요.

그때 신 기자는 호텔에서 지내다가 언론 취재 열기 탓에 모처로 피해 있었는데, 겨우 만났죠. 매우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끝까지 남북 분단의 상처를 얘기하더라고요. 아,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어요(http://omn.kr/b87i)."

- 여러 일이 있었고, 남북관계가 급변하는 시기라 신은미 기자의 새 연재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듯 한데요. 신은미 기자의 기사를 많은 분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2018년 4월 27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등장은 남한사회의 대북관을 바꿔놨죠. 북미관계가 답보상태에 있긴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예전에는 모르던 북한을 보게 될 것이라고 봐요. 신은미 기자의 기사는 그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의 여행기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더 많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가 보고 온 사실만큼은 충실히 담고 있어요. 앞으로 북한이라는 더 많은 사실과 마주할 우리에게 어느 정도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omn.kr/1eovx

#에디터의편지
댓글1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