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내가 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며 보낸 시간이다. 나는 뇌졸중처럼 재활 의료비가 장기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분들을 만난다. 이분들을 만나는 기간은 개개인마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연령대는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6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내 경력이 쌓일수록 마주하는 분들의 나이도 낮아진다. 처음 일할 땐 30년대에 태어난 분들도 많이 보였는데, 요즘은 5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라 일컬어지는 58년 개띠들의 비중도 많아졌다. 전체적으로 노인성 질환 환자 숫자가 늘었다. 언론에선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고 연일 경고한다. 언론 보도가 거짓이 아님을 현장에서 느낀다. 동네 노인 분들이 전부 병원에 입원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환자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의 사생활까지 접하게 된다. 당장은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며 평생 모아둔 돈으로 병원비를 지출하는 분, 자식에게 아예 입원 사실을 알리지 않은 분, 혹은 가족 없이 홀로 살다가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분.
한때는 현직에서 열심히 일하며 한국의 경제발전을 견인했던 분들이지만, 현재 모습은 이러하다. 건강을 잃음으로 본인은 물론 자식의 삶까지 힘들어지는 상황들.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하지 않은가? 나는 앞으로 초고령사회가 불러올 돌봄 문제와 빈곤에 주목하고 있다.
점점 늙어가는 도시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2018 서울 통계 연보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65세 인구 비율이 약 60%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서울 시민의 평균 연령도 41.6세로 집계되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이면 10년 내로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 진입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린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내느라 초고령사회를 준비하지 못했다.
의료비 증가는 물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국민연금 논란도 우리의 노후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더구나 근무 여건이 좋지 않은 비정규직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비정규직 직원들의 노후준비는 먼 나라 이야기가 돼 버렸다. 또한 자녀를 낳아 키우는 걸 리스크로 인식하는 요즘 사회분위기는 암울하기까지 하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접하게 된 책 <2020 하류노인이 온다> 는 저출산 고령화를 우리보다 일찍 경험한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류노인'이라는 단어가 엄습하게 느껴지지만 그만큼 절박하게 경고하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책의 저자인 후지타 다카노리는 NPO(비영리단체) 법인 홋토플러스 대표이며, 후생노동성 사회보장심의회 특별부회위원직을 맡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사로 현장에서 활동하며 생활보호와 생활빈곤자 자원 방식에 제언을 하고 있다.
이 책은 현장에서 저자가 직접 상담하며 느낀 일본 하류노인들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았다. 그리고 하류노인이 양산되지 않도록 일본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언하는 글도 다수 담겨 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노인복지 시스템 부족을 꼬집으며 일본과 마찬가지로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고령자
그렇다면 하류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까? 단지 못 산다는 이유만으로 '하류 노인' 으로 정의되는 건 뭔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국가(일본)가 정하고 있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고령자"로 저자는 정의했다. 즉 "생활보호기준 정도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고령자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고령자"를 뜻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하류노인에겐 없는 3가지를 이 책에서 제시한다. 첫째, 수입이 거의 없는 노인. 둘째, 충분한 저축이 없는 노인. 셋째, 의지할 사람이 없는 사회적 고립. 즉 하류노인이란 모든 안전망을 상실한 상태라고 언급하며, 하류노인이 증가하는 원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하류노인이 증가하며 발생되는 악영향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의료비와 요양비 부담에 자녀세대도 상당한 부담이 되어 결국 가족이 함께 파산할 가능성. 하류 노인들이 '사회의 짐'으로 인식되어 생명이 고귀하다는 생명윤리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가능성. 젊은이들의 노후를 대비한 지출 감소와 저출산 분위기 확산 가능성. 이렇듯 하류 노인의 문제는 단순히 노령 세대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문제를 야기 시킨다.
아프면 갈 곳이 없다
노인이 되면 의료비와 요양비가 많이 든다. 특히 저소득층의 노인들에겐 이 비용들이 매우 치명적이다. 앞서 필자의 경험을 얘기했듯이,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하는 노인성 질환 환자들은 비용문제뿐만 아니라 퇴원 후 갈 곳이 없다는 문제에도 직면한다.
물론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면 좋겠지만, 자신을 케어해줄 수 있는 환경 부재가 그들을 머뭇거리게 한다. 결국 사회적 입원으로 요양병원으로 가거나 아니면 인권과는 동떨어진 어떤 시설을 택하게 된다.
이 책에선 요양시설에 입소하고 싶어도 시설 부족으로 입소할 수 없는 일본의 현실을 꼬집었다. 일본의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으로 입소할 수 있는 특별 양호 노인홈이 있지만, 3~5년 기다려야 하는 등 입소를 원하는 사람(2015년 조사 54만명)에 비해 시설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은 무신고 유료 노인홈 같은 '눕혀만 두는 아파트' 혹은 '눕혀만 두는 노인홈' 으로 향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상항을 이렇게 요약했다.
"'노후에 요양이 필요하면 노인홈에 입소해서 여생을 보낸다'는 계획은 낙관적이고 안일한 생각이 되어버렸을 만큼 현재 상황은 심각하다.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홀로 지내는 집에서 충분하지 못한 돌봄을 받으며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 그 증거다." 102P
의료 그리고 스스로 하는 자기 방어책
책에선 주로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많이 언급하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책도 여러 곳에 적혀 있다. 특히 질병과 요양 관련해선 의료제도를 잘 알아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본의 사회복지법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구축해서, 돈이 없거나 건강보험증이 없는 사람도 무료나 저가로 검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의료기관은 한정적인데, 최근에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조기발견 조기치료로 이어지도록 무료 또는 저액으로 진료하는 시설로 신고하는 병원도 늘고 있어 사전에 정보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 의료기관이 있는데 역시 많은 이들이 모르는 것 같다.
책에선 또한 지역사회의 모임이나 비영리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자기방어책 방법으로 추천했다. 최근 한국에서 커뮤니티 케어가 강조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생활이 어려워도 친구끼리 음식을 나눠먹고, 커뮤니티센터에서 대화를 나누고, 노인클럽에서 춤을 추는 등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 많은 고령자는 비교적 지원도 쉽게 이루어지며, 빈곤에 빠져도 생명이 위협받을 위험성이 낮다." P228
하류노인을 만들어내는 건 국가와 사회
마지막으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을 언급한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가난한 사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도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책에서 언급한 생활보장, 사회보장이다. 점점 빈부격차가 커진다는 건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봤지만 하류노인의 등장은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하류노인과 더불어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풀 수 있는 주체도 국가일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이웃나라 일본이고, 우리보다 더 빨리 문제의식을 가진 나라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던져주는 메시지는 강하고 견결하다.
"어러 번 반복했듯이 하류노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국가이고, 사회구조이다. 하류노인과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대책을 실행하는 주체도 당연히 국가나 정부여야 한다."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