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진보연대 등이 주최한 '촛불 2주년, 2018 서울민중대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8.10.27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서울진보연대 등이 주최한 '촛불 2주년, 2018 서울민중대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8.10.27 ⓒ 연합뉴스
 
<교수신문>이 선정해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 기사가 신문마다 실리는 걸 보면 세밑이 가까워졌다. 한 해의 간단하지 않은 곡절을 네 글자의 한자로 줄이는 이 기획의 역사는 꽤 오래된 듯하다. 복잡다단한 정치·사회 상황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는 게 가당하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올해의 사자성어'가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 성어가 감추고 있는 함의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올해의 사자성어'로 2018년 무술년에는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선정됐다. 설문 조사에 참여한 전국 대학교수 878명 중 341명(38.8%)이 선택한 이 사자성어는 <논어>에서 왔으며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이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임중도원'을 추천한 전호근 경희대 교수(철학과)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구상과 각종 국내정책이 뜻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이 남아 있는데,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골랐다고 밝혔다. '임중도원'은 대학교수들이 판단한 현실인 동시에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성어인 셈이다.

탄탄대로를 탄 듯하다가 멈추고 있는 남북문제, 대통령 국정 지지도를 꾸준히 떨어뜨린 경제 문제, 청와대 특별감찰관 사건으로 드러난 청와대 관리 문제,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아득해만 보이는 개혁 입법, 선거제 문제 등에 막힌 문재인 정부의 '갈 길'은 멀 수밖에 없다.

'짐은 무겁고 길은 먼' 현실 인식에도 이번 설문에서 많은 응답자는 현 정권 개혁을 지지하는 의견을 쏟아냈다고 한다. 물론 정부 여당의 무능과 구태에 경종을 울리는 의견도 빠지지 않았다.
 
"정부의 개혁이 추진되고 있으나 국내외 반대세력이 많고 언론들은 실제의 성과조차 과소평가하며 부작용이나 미진한 점은 과대 포장하니 정부가 해결해야 될 짐이 무겁다."

"방해하는 기득권 세력은 집요하고 조급한 다수의 몰이해도 있겠지만 개혁 외에 우리의 미래는 없다."

"임중도원의 경구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답습하는 여당과 정부 관료들에게 던지는 바이니 숙지하고 분발하기 바란다."
     
2위는 고성빈 제주대 교수(정치외교학과)가 추천한 '구름만 가득 끼어 있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뜻의 '밀운불우'(密雲不雨)가 차지했다. 고 교수는 추천 이유를 "남북정상회담과 적대관계 종결, 북미정상회담과 비핵화 합의, 소득주도성장 등 대단히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막상 구체적인 열매가 열리지 않고 희망적 전망에만 머물러 있는 아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3위는 김선택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가 뽑은 '공재불사(功在不舍)'다. '성공은 그만두지 않음에 있다'는 뜻으로 투철한 의지를 강조하는 말이다. 김 교수는 "계속 개혁에 매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행여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다 보면 효과가 날 것이란 집단 최면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 모두를 담고 있다"고 추천 이유를 소개했다.

공재불사는 현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려워지는 경제의 원인으로 '최저임금', '노동시간' 따위를 부르대면서 소득주도성장을 저격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보수세력에 밀려 후퇴하고 있는 개혁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네 번째로 꼽은 성어인 '운무청천(雲霧靑天)'은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다"란 뜻이다. 5위는 '좌고우면(左顧右眄)'("왼쪽을 바라보고 오른쪽을 돌아다 보다")이 차지했다. 정부 여당이 한눈 팔지 말고 개혁의 길을 뚜벅뚜벅 가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 

교수들이 '임중도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것은 '무거운 짐과 먼 길' 앞에 지레 주눅 들라는 게 아니다. 다시 들메끈을 고쳐 매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특정 정당이나 권력의 성공을 넘어 이 정부를 탄생케 한 촛불 시민의 소망과 이어져 있다.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은 그래서 아닌가. 혁명의 완성을 바라며 조마조마하게 현실 정치를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에게 당정이 개혁으로 응답해야 할 이유다.

#임중도원#올해의 사자성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