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무엇보다 본문에 언급되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유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글은 사고를 분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일선에서 독감과 타미플루를 막연히 두려워해 환자 분들과 의료진이 겪을 어려움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쓴 글임을 밝힙니다.
때는 1994년 3월, 제가 중학교 1학년 초에 시골에서 도시로 전학 직후였습니다. 전학한 지 한 달도 안되어 고열 등의 독감 증상에 시달렸습니다.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던 때였지요.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한밤중에 열이 굉장히 심할 때에 제가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서 담임 선생님이 숙제로 낸 깜지를 써야 한다고 울고 소리 치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집안 여기 저기 뛰어다녔다고 합니다(참고로 그 당시는 타미플루 개발 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했던 이상행동은 독감으로 인한 섬망 증상(신체질환으로 인한 급성 정신병적 상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이 공부 좀 시켜보겠다고 도시로 왔다가 아이가 미쳐버렸다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지요. 다행히 하룻밤 소동으로 그쳤고 저는 이후 감사하게도 잘 회복하였습니다.
약과 부작용 사이 인과관계 입증 안돼
얼마 전 한 10대 학생이 독감을 앓던 중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낙상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학생은 독감을 앓는 중에 타미플루를 복용하였고 이후 환청을 호소했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였다고 합니다¹.
정신과 의사인 저는 그 때 심한 섬망 증상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합당한 원인이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타미플루의 부작용일 거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독감 환자가 타미플루를 복용 했을 때 섬망, 혼돈, 자살사고 등의 신경정신과적 부작용에 관한 우려와 이에 대한 연구는 타미플루가 개발 된 이래로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타미플루를 복용했을 때의 신경정신과적 부작용 위험 비차비(risk ratio)가 증가한다는 결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결과도 있습니다. 최근 2018년의 연구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가지 연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첫 번째 연구는 국내 연구자들이 발표한 연구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바탕으로 2009년에서 2013년 사이에 정신과적 부작용이 발생한 5천 여명의 타미플루 처방 환자가 연구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타미플루 복용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에 이 환자들에게 정신과적 부작용이 발생한 비율을 비교하였습니다. 복용 후 2일 1.90, 7일 1.32, 14일 1.28, 28일 1.25, 56일 1.13으로 부작용 발생 비율이 낮아지는 추세였습니다².
하지만 본 연구가 약과 부작용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며 이를 밝히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본 연구에서 하나 더 주목할 부분은 정신과적 부작용의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하진 않았지만 10-19세에서 가장 높았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연구는 미국 국가 자료를 활용하였으며, 2009년에서 2013년 사이에 자살 기도를 한 251명의 타미플루 처방 환자가 연구 대상자였습니다. 위의 연구와 비슷한 연구 디자인으로 타미플루 복용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에 자살 기도 발생 비율을 비교하였습니다.
본 연구에서는 자살 기도와 타미플루 복용의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타미플루를 복용했을 때의 자살 기도 발생이 약 복용을 안 했을 때에 비해 0.64배 낮게 관찰되었습니다³.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타미플루 복용과 정신과적 부작용은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
2) 타미플루 복용과 자살 기도는 연관성이 높지 않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본 연구들은 인과관계를 보는 연구가 아니므로 인과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향후 좀 더 근거가 높은 수준의 연구가 이어져야 합니다.
더 논의할 사항이 많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1) 발열과 같은 내과적 이상 상태에서도 섬망 증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약물 부작용으로도 이상행동이 생길 수 있다는 것과 2) 모든 약은 효과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효과와 부작용의 무게를 견주어 치료에 관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선정적인 보도와 처벌 중심의 문제 해결 방식, 이제 그만
독감으로 인한 고열과 그로 인한 합병증은 중증 상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약물 부작용을 조금 더 언급하자면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타이레놀도 매우 드물긴 하지만 쇼크, 천식 발작, 심근경색과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양강장음료로 알려진 박카스 또한 위식도역류질환, 신경병증, 우울증 악화와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요.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습니다. 치료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비교하고 의사와 환자가 잘 협의하여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또한 약물로 발생 가능한 부작용과 치료 경과 중에 있을 수 있는 증상에 대해 의료진과 환자 모두 잘 알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정적인 보도와 지나친 불안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위기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이에 일본후생성에서 발표한 독감에 걸렸을 때 항바이러스제 복용 중의 이상행동과 관련된 주의사항 안내자료를 번역해보았습니다⁴.
독감 환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이상행동의 예와 사고 방지 원칙을 짧은 글과 그림으로 한 장에 요약했습니다. 직관적이고 한눈에 들어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방 위주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요지는 "독감으로 열이 나면 갑자기 밖으로 나가려 하는 등의 이상증상을 보일 수 있으니 가족들이 안전사고에 잘 대비하여 돌봐주어야 한다" 입니다. 첨부하는 자료를 통해 불필요한 염려를 내려 놓으시고 안전사고에 잘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문헌
1.
타미플루 복용 10대 추락사... 유족 '부작용' 의심
2. Kang HR, Lee EK, Kim WJ et al. Risk of neuropsychiatric adverse events associated with the use of oseltamivir: a nationwide population-based case-crossover study. J Antimicrob Chemother 2018;12. [Epub ahead of print]
3. Harrington R, Adimadhyam S, Lee TA et al. The Relationship Between Oseltamivir and Suicide in Pediatric Patients. Ann Fam Med 2018;16:145-148.
4.
일본후생성 홈페이지 자료 "독감 환자에 대한 주의사항 안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의사들이 직접쓰는 정신건강 뉴스' <정신의학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