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도에 지나친 비판을 보며 우려되는 마음이 크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과연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흔히 말하는 수입과 지출의 수리적 불균형 때문이 아니다. 극도로 저하된 '사회적 연대의식'과 '제도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특히, 국회에 제출된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 대해 일부 언론과 논평자들이 쏟아내는 왜곡되고 과장된 비판들은 가뜩이나 양극화된 국민 계층 간, 세대 간 연대의식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국민들의 제도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있어 문제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사적연금과 달리 공적연금은 급여수준과 비용조달의 '사회적 적절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수지상등의 원리'가 완화되고 '사회적 연대원리'가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공적연금은 기본적으로 근로와 비근로시기 소득을 평탄하게 하는 저축기능을 수행하지만, 나아가 계층 간, 세대 간 강제 소득 재분배를 통해 구성원 전체의 노후소득을 적절한 수준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고용주 뿐 아니라 국가(일반조세)가 함께 소요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들 간 '든든한 연대의식'과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훼손되면 아무리 제도의 재정균형을 이룬다 할지라도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보장받기 어렵다.
공적연금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연대와 신뢰'
그런데 우리나라 일부 언론들이나 연금전문가들은 공적연금의 수리적 균형, 즉 내는 돈(보험료)과 받는 돈(연금)의 수지균형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사회적 연대'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간과한 주장을 반복하여 공적연금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오히려 훼손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연금이 도입된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기금고갈'과 '재정 불안정'의 공포를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심어왔다. 외양은 후세대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은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 반목을 조장하고, 국민연금의 존속 가능성에 회의를 갖게 하여 젊은이들로 하여금 제도가입을 외면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이 쓰는 용어도 '자식세대에 대한 도적질'이니 '보험료 폭탄 돌리기'니 등 자극적이고 불신에 찬 말들이다. 이제 갓 청년기를 지난 국민연금을 그런 용어를 써가면서까지 비판함으로써 얻은 것은 국민들 간의 갈등과 제도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극심한 노후빈곤 뿐이다.
과거 2004년도에 전국을 강타했던 '국민연금 폐지운동'은 국민들의 불신으로 국민연금의 장기적 유지가능성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에 정부는 대선공약과 달리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눈을 감은 채 재정안정화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국민들에 대한 적극적 의견수렴이나 논의나 설득과정은 없었다.
하지만 소득대체율 삭감과 보험료율 인상을 골자로 한 정부의 개혁안은 야당의 반발과 국민들의 반대로 국회에서 논의조차 못한 채 회기 종료로 폐기되었다. 그리고 국민연금을 상당부분 대체하게 될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었다. 연금개혁 논의가 광범위한 사각지대 및 용돈연금 등 노후빈곤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재정문제에 집착한 일방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라 할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안을 둘러싼 다양한 요구와 서로 다른 시선들
그동안 과거 정부는 각계각층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 수렴과 심도 있는 논의 과정 없이 일방적인 개혁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고 압박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적정노후소득보장'과 '재정안정화'를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하는 이중의 어려운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보험료를 올리더라도 저소득 근로자나 영세자영업자들 같은 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분들이 사각지대로 내 몰리지 않을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그 위에 보험료를 올리는 등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들의 상반된 시각과 다양한 요구들을 어떻게 수렴하여 최적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가 고민하고, 논의하고, 진지하게 타협해야 하는 이유다. 결코 결과에만 집착하거나 서둘러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보다 수십 년 이상 일찍 공적연금을 도입하고 제도가 충분히 성숙되어 소득보장 수준을 줄이는 게 시급한 선진복지국가들의 개혁 내용을 현 시점에서만 보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독일의 경우 현 소득대체율이 우리와 비슷한 48%인데 보험료율이 18.7%다. 이를 보고 "우리 정부 개혁안의 보험료 인상안(점진적으로 12~13%까지)이 매우 미흡하고 후세대에게 보험료 폭탄을 돌리는 것이다."라고 혹평(세계일보 12월 26일자 보도)하는 것은 사실을 극히 왜곡하는 것이다.
경사노위로 넘어간 국민연금 개혁안...사회적 대타협 논의도 본격화
왜냐하면, 독일은 1957년, 부과방식으로 제도를 전환할 때 소득대체율이 이미 70%나 되었고, 이에 상응하는 보험료는 11%에 불과했다. 그 후 60년이라는 긴 기간 서서히 소득대체율 인하와 보험료 인상을 해온 사실을 밝혔다면 우리 정부의 점진적 보험료 인상안을 '폭탄 돌리기'로 폄하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독일은 공적연금에 급여지급액의 25%에 달하는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노력을 병행했다는 사실도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필자는 오히려 선진국들의 연금개혁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그들이 겪은 실패와 성공의 사례라고 본다. 대부분의 개혁 실패의 사례를 보면 타협과 설득의 어려운 과정을 피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경우였다.(1995년 프랑스의 쥐페 내각, 1994년의 이태리 베를루스코니 내각 등).
하지만 성공사례들을 보면 모두 오래 인내하면서 국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다양한 타협점들을 만들고, 합의를 최대한 탈 정치화하는 등의 노력을 경주한 사실을 알 수 있다.(1998년 스웨덴, 1986년 영국, 1995년 이태리 등).
정부의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제 정부 안을 중심으로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연금특위'가 사회적대타협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입법을 위해 국회차원의 특별위원회도 구성될 것이다.
좋은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에서 보기 드문 소통의 방식으로 정부의 개혁안을 만들어 사회적 논의의 방향과 기준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회적 대타협과 입법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게 하기 위해서 앞으로 해야 할 정부의 역할이 결코 적지 않다. 정부는 논의과정에 필요한 제반 국내외 자료들을 최대한 상세하게 제시해 주고 논의가 파행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재섭 기자는 사람을 살리는 공적연금연구소장이며, 전 공무원연금공단의 연금연구소장을 지냈다.